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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농요 2017-05-31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643
‘뻐꾹 뻐꾹’. 아파트 빌딩 숲과 이웃한 공원에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농가에서는 가장 바쁜 모내기철임을 알려주는 때다. 벼농사는 논을 갈고 고르는 일을 시작으로 알곡을 거둘 때까지 태평하게 놀 날이 거의 없다. ‘여름 하루 놀면 겨울 석 달 배고픈’ 게 농사일이니 말이다.

쌀은 우리에게 목숨과 같았기에 한 톨도 아꼈다. ‘한 톨 종자 싹이 나서 만 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에 조화’(예천 통명농요 중)지만 ‘볍씨 하나에 여든 번의 손질이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다. 주야장천 고된 농사일 굽이굽이엔 농요가 있어 고단함을 덜 수 있었다. 

우리 소리 가운데 농사와 관련된 소리가 가장 많은데, 그중에서도 논농사에 집중되어 있다. 논농사를 짓는 단계에 따라 ‘논 가는 소리’, 논에 거름을 해 넣을 때 하는 ‘갈 꺾는 소리’로 시작하여 써레로 무논을 고르는 ‘논 삶는 소리’, 모판에서 모를 쪄낼 때 부르는 ‘모 찌는 소리’ ‘모 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등 수두룩하다. 심지어 ‘볏단 나르는 소리’ ‘벼 터는 소리’ ‘물 푸는 소리’ ‘새 쫓는 소리’ 등도 있다. (최상일 PD가 펴낸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첨부된 CD를 보노라면 그 많은 소리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싶다)

특히 모심기와 논매기에는 제 식구로는 엄두를 못 내는 일이라 놉을 사야 했다. 오뉴월 염천이라, 가만히 있어도 쪄 죽을 판에 그늘 하나 없는 논에 엎드려 일을 하자면 오죽하랴. 소리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한다. ‘모 심는 소리’는 모 심는 동작하고 딱 맞게끔 되어 있다. 질퍽한 논에서 모를 심을 때는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엎드리면 배에 압박이 가해지고 힘이 든다. 

모 심은 지 보름에서 20일쯤, 한여름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에 벼보다 더 빨리 자라는 가래, 올미, 피 따위의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숨이 턱턱 막혀도 살기 위해’ 논매기를 해야 한다. 논매기는 보통 세 번을 한다. 여럿이 동작을 맞추어 논을 매지 않으면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 기운을 추슬러 일을 잘 갈무리하도록 서로를 다독여 주는 것이 소리의 힘이다.

해학과 풍자가 섞인 사설과 가락은 일의 고단함이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구령의 역할을 한다. 앞소리꾼이 소리와 일을 이끌고 일꾼들은 일 정한 후렴구를 반복해 부르는 ‘메기고 받는’ 방식이다. 농요는 가다듬은 바가 거의 없이 구전되어왔기에 꾸밈없는 소박함과 음악성, 그리고 옛 정서와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농요가 농부들 사이에 널리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가슴의 밑바닥으로부터 길어 올린 참다운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요는 콘크리트 바닥에 플라스틱 모로 야외공연을 한다. 본보기로 삼을 곳도 있다. ‘구미발갱이들소리’ 단원들은 논 600평(1천980㎡)을 임차해 벼농사를 지으며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소와 써레도 등장해 옛 모내기의 현장감을 살렸다. 다채로운 소리가 펼쳐지던 초여름 들판, 도시화와 기계화에 가장 빠르게 사라진 우리의 소리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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