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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다시 전통문화의 부흥을 꿈꾸며 / 영남일보 2017-12-20
아트코리아 | 조회 543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김용호 시 ‘눈 오는 밤에’ 일부) 

겨울이 깊어지면 정지용, 백석의 시가 조청처럼 진미를 더한다. ‘흙에서 자란 마음’은 고샅길과 정자나무, 실개천에 머문다. 잔칫날 무쇠 가마솥에서 퍼담은 국밥을 먹던 두레상과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던 시루떡. 이제 그리움은 망각의 저편으로 흘려보내야만 한다. 그 무엇도 자본의 폭력과 시간의 풍화에 사라지고 녹슬지 않을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 각자의 벽을 보며 서로 외롭다. 

AI가 세상을 지배할 시대에 과연 전통문화 담론은 유용할까? 전통의 계승은 어르신들이나 유림, 관혼상제를 고집하는 윗세대들의 과도한 집착이 낳은 것인가? 모든 전통에 맹목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전통을 들먹이면 ‘케케묵은 소리’라고 힐난하는 것도 어불성설. 상품은 시장원리에 의해서 끊임없이 생산 소비되듯이 전통문화도 생산자와 소비자에 의해 그 의미가 실천된다. 

전통문화는 넓은가 하면 깊고, 깊은가 하면 높다. 그 속에 한국인의 특수한 문화적 토양과 가치관이 녹아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 인륜을 지켜 인간답게 살도록 지침이 되어 준다. 미풍양속(美風良俗) 또한 우리의 전통문화에 녹아있다. 두레와 품앗이, 향약이 그러하다. 두레는 힘든 농사일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농사를 짓기 위해 자연적으로 생겨난 조직이고, 품앗이는 힘 드는 일을 거들어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이다. 바쁘면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봐주는, 스스로 돕고 더불어 도우며 함께 사는 ‘공동체의 연대’로 살아가기 위함이다.

단순히 옛날에 좋고, 아름다웠던 풍속을 넘어서 오늘에 되살려 주목을 받기도 한다. 두레를 모델로 한 ‘스마트 두레 공동체 일자리 창출 사업’은 도시민에게는 농촌 일자리를, 농촌 주민들에게는 농번기 일손부족 현상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일자리 순환프로그램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경북의 한 군에서는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와 독거노인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밥상공동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주민이 주도해서 숙박과 식음, 여행알선 등의 관광사업체를 창업하고 자립하는 관광두레 사업도 있다. 대구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한 문화품앗이도 훌륭한 예다. 품앗이는 물질과 재능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만남까지 이어진다. 이웃 간 마을 간 지역 간 품앗이 정신이 살아나서 우리의 분열된 마음을 봉합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전통문화는 진실로 오늘날에도 가치 있는 것, 또 전승되어야만 할 당위성이 있는 것만이 올곧게 계승, 재창조되어야만 한다. 다시 전통문화의 부흥은 가능할까? 500년 된 우물을 지자체 단체장이 나서서 메워버린다거나, 수백 년이 된 당산나무에 제(祭)를 올린다고 약을 뿌려 죽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봐야 할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고위관직을 지내면서도 마을 동제에 쓸 기부금을 단 한 해도 거르는 일 없이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어르신의 일화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전통문화는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데 방점이 있다. 뿌리 속에 생명력을 저장하고 있는 구근식물같이.
대구시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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