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20-07-21 15:44

사유의 정원

영남일보[문화산책] 자물쇠 이야기
아트코리아 | 조회 332
민속품의 구수한 맛에 빠져 있는 이의 집에서 자물쇠 하나를 만났다. 나무로 대충 다듬어 'ㄷ'자형 몸통을 만들고, '―'자 나무막대를 열쇠 삼아 밀어넣기만 하면 'ㅁ'자가 되는 어설픈 자물쇠다. 크기는 내 손에 들어올 정도인데 '이것도 자물쇠 축에 들 수 있을까' 싶어 슬며시 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잠근다(閉)는 것과 연다(開)는 제 구실과 역할에는 영 거리가 멀다.

우리 옛분네들은 집을 지을 때 자연에 안기도록 지었다. 담도 단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에 지나지 않도록 했다. 농가에서는 울타리는 물론 문조차도 달지 않는 집이 많았다. 사립문(삽작문)이 있다 해도 대문을 젖혀두고 드나들었고, 닭이나 집짐승들도 이곳으로 나다녔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문이 그 자리에 있거니 여기며 드나들었다. 눈에 보이는 문 못지않게 마음의 문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가을, 팔공산 언저리에 있는 마을 조사에서 자물쇠 없는 집을 만났다. 그 마을은 팜스테이 마을의 성공 모델로 수면위로 떠올른 곳이기도 했다. 그 마을 회장을 맡고 있는 집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곳에는 대문이 없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해보니 무방비 상태가 걱정될 정도다. 뒷간을 잠그지 않은 것에 대해 주인은 무심한 듯 털어놓는다.

"입으로 들어가면 밖으로 내놓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급하면 봐야죠. 언제 일 볼지 알아요?"

뒤뜰에 감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감은 몇 개 안된단다.

"감나무는 살아 있으니까 내년에 또 열리잖아? 나무가 있어야 그늘을 만들어 주니까 방문객들이 여름엔 쉴 수도 있고…."

이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지으면 먼저 하는 것은 울타리를 치는 일. 철조망을 만들고, 철 대문 달고, 주인 아니고서는 절대로 열 수 없는 자물쇠를 채운다. '담장 허물기'를 하여 상쾌지수를 높여주는 이 도시에 '잠갔다는 표시이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말하는 무언(無言)의 저 자물쇠처럼 마음의 빗장을 풀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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