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20-07-21 15:44

사유의 정원

영남일보[문화산책] 공예를 보는 눈
아트코리아 | 조회 373
한국 미술의 무게중심은 '공예'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예는 장구한 축을 이루며 전통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미술사에 있어 남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술사의 영역이나 담론 형성에서는 비껴서 있는 느낌이다.

쓰임(기능)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공예는 우리네 삶 속에 호흡해 왔다. 옛 공예는 삼박자가 맞아야 명품이라고 말한다. 만든 이의 솜씨와 조형감각, 구매자의 안목과 경제적인 능력, 사용자의 애정이 세월 속에서 익어갈 때 셈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여기에 아름다운 마음이 녹아 있다면 금상첨화다. 사랑방 용품이 아낌을 받는 이유는 선비의 기품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용했느냐도 방점을 두어야 한다. 가령 타구(침을 뱉을 때 사용하는 기구)가 아무리 조형적으로 뛰어난들 환영받지 못하듯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현대 공예의 정체성 상실, 존립 위기를 거론한다. 여기엔 조형적 표현효과를 얻는데 주력한 현대공예가들의 탓만 할 수 없는 복잡한 요인이 내재해 있다. 일단 거대담론은 접어두고 소박하게 우리 곁으로 눈 돌려 보자. 이런 바람몰이는 어떨까. 사찰 우물에 놓인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바가지를 나무로 바꾸기, 혼례에서 상징적인 목기러기 손수 만들어 보내기(한복집에 진열된 것은 얼마나 볼품없는가), 관광지마다 지리멸렬한 기념품을 특색 있게 갖춰 놓음으로써 공예의 토양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고가(高價)임을 내세워 현시욕(顯示慾) 드러내지 않기. 한 도예가가 값이 고만고만할 땐 쳐다보지 않더니 몇 배 올리고 나서야 사려들더라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심미안을 기르고 난 뒤 거품을 걷어낸 '참'한 작품을 고를 일이다.

'인간부흥의 공예'를 쓴 이데카와 나오키는 자신 안의 조촐한 인간성의 부흥(르네상스)을 계속해가기 위해서 일상 속에서 나무가 있으면 깎고, 점토가 있으면 빚어서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고 했다. 선비들이 사랑한 수선화를 곁에 두고 나누는 소담한 찻자리. 이 자리에 내 손으로 만든 차도구 하나쯤 있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예의 나라'였던 이 나라를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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