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20-07-21 15:44

사유의 정원

영남일보[문화산책] 三守亭을 찾아서
아트코리아 | 조회 439
'한국인은 솔사람이다'란 말처럼 소나무는 우리의 정신을 다스려온 하나의 코드이다.

파인토피아(pinetopia)의 슬로건이 잘 어울리는 춘양목의 고장 봉화. 이곳에서 삼수정을 찾아 나선 건 세 가지 지킬 것(三守)을 좌우명으로 삼고자 한다는 동행자 때문이었다.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양마을. 삼수정은 높직한 산을 배경으로 깊은 내력을 숨긴 채 들판에 덩그레 있었다.

'마음을 바르게 지켜 잡된 생각을 하지 말며(守心無妄念), 입을 바르게 지켜 잡된 말을 하지 말며(守口無妄言), 몸을 바르게 지켜 잡된 행동을 하지 말라(守身無妄動).' 모산(茅山) 이동완(李棟完, 1651~1726) 선생이 27세에 진사(進士)를 하고 경기도 연천으로 문정공(文正公) 허목(許穆)을 찾아뵈었을 때 문정공이 적어준 글이라고 한다. 삶에 이보다 더한 금과옥조가 어디 있으랴.

삼수정기(記)를 죽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눈이 멎는다. '그 담장을 새로 두르고 꽃나무와 돌을 꾸미는 일 따위는 한갓 여사일 뿐이다. 이에 이것으로써 받들어서 힘쓸 뿐이다.' 골을 일궈놓은 채마밭이 바투 다가서 있어도, 정자에서 탈락된 판재가 방치되어 있다 해도 정비하지 않은 건 어떤 속내로 읽어야 할까.

삼수정에서 인접한 축서사(鷲棲寺)로 가파른 길을 오른다. 주차를 하고 아래를 굽어보니 장쾌함이 실로 부챗살처럼 퍼진다.

돌계단을 오르는 사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누(樓)와 맨살을 드러낸 석탑이며 돌조각들이 생경하다. 불사의 힘은 어디까지 미칠까. 석불좌상의 불꽃무늬 나무광배는 미려하게 일렁이는데….

삼수정과 축서사의 간극을 보며 눈감아 버릴 수 없는 건 우리 모두가 문화의 향수자이자 주체자이기 때문이다. 그악스러운 소나무재선충과의 사투에서 온전히 지켜낸 소나무 위로 짧은 겨울해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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