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20-07-21 15:44

사유의 정원

영남일보 [문화산책] 야나기의 이중주
아트코리아 | 조회 334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이 열리는 일민미술관으로 향하면서 내밀한 흥분으로 일렁거렸다. 공예에 관한 그의 글이 달무리같은 아우라를 지닌 데다, 보도자료에 소개된 계란형 곱돌주전자며 석조기름주전자 등속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조선과 그 예술'에서 그는 말했다. "국가는 짧고 예술은 길다. 승리하는 것은 그들(한국)의 아름다움이지 우리(일본)의 칼은 아니다."

박쥐문돌그릇, 석조물주전자는 실용의 경계를 넘어선 차라리 하나의 오브제로 다가온다. 한손에 쏙 들어올 크기인 진사복자문합, 청화산수문연적은 그 어떤 화려한 수사도 군더더기일 뿐. 에도시대에 제작됐다는 삼층목탑과 망태기, 지게바구니, 칠피주머니 등속의 일본 민예도 넉넉히 아름다웠다. 두 나라의 공예가 들려주는 이중주. 저울질 할 수 없다. 미(美)는 국경을 초월한다고, 미는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일본 민예관은 창설 이후 '이조의 방(李朝の部屋)'을 설치하고 조선의 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에서 명쾌히 밝히고 있듯 이조는 식민지 지배자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로 '이씨 조선'의 준말이 아니다. 조(朝)는 나라명칭인 조선이 아닌 왕조(Dynasty)를 가리키는 말로, 그 배경에는 일본이 빼앗은 것은 부덕했던 전주이씨들의 왕권일 뿐, 옛 조선 백성은 오히려 그들 통치 아래서 더 잘 살고 있다는 간교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야나기가 발견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공예품의 한시적인 귀환 앞에 서니 감정은 미묘하다.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위해 조선을 방문, 기금마련 독창회를 연 그의 아내 가네코, 조선의 민족의상을 입고 조선인들의 공동묘지에 매장된 아사카와 다쿠미에게 빚진 기분이 든다. 지금도 한국미를 '발견'한 외국인들에 의해 우리 옛 공예품들은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줄까 하는 진부한 명제는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한 채. 그럴수록 자꾸만 빚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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