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20-07-21 15:44

사유의 정원

영남일보 [문화산책]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아트코리아 | 조회 372
모 대학에서 한국 전통문화·민속학에 대한 강의 청탁을 받았다. 한국어교원양성과정 과목이며, 2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고민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가장 한국적인 게 무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느닷없는 물음으로 급습을 받은 양 허둥댈 때처럼. 지식의 결핍이 큰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범주가 거시적이고 엄밀성이 없는 것이 하나의 사유이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우리문화가 온길' '한국 속의 세계'를 비롯해 '한국학 에세이'같은 읽을거리와 담론이 풍성했다. 융합 속에서 일궈낸 독창성 운운(云云)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 상용문장이다. 전통과 전승이 길을 잃은 채 얽혀 있고, 한국적인 이미지는 모자이크처럼 조합되어 있어 "그건 이렇지요"라고 거침없이 말하기엔 쉽지 않다.

인류학이 전공인 나는 물질문화(세분하면 공예문화)에 천착해왔다. 전문성을 무기로 헤게모니를 장악해야만 생존 가능한 풍토에 살고 있지만 전문가로 호명되는 순간부터 위력적이면서 위험해진다. 높이 오를수록 추락하기란 더 쉬운 법. 별은 하늘에 떠 있을 때는 찬란하지만 떨어지면 하나의 운석(隕石)일 뿐이다. 게다가 활자화된다는 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고 했거늘 그릇된 글은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글과 말로 오류의 늪을 만들었을 터. 생각해보면 죄악이 따로 없었다.

주저함을 뒤로 한 채 강의를 수락했다. 앞을 더디 나아가게 하는 뉘우침이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천 명, 만 명 중에 눈 밝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걸 새기며 현재 진행형으로 길을 갈 뿐이다. 나의 시각은 한국문화의 강렬한 애정에 기초한 것임을, 바다(인류학)로 향하는 강물(한국문화) 같은 신념이 내 핏줄에 흐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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