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22-10-18 09:24

자유게시판

마음 그림 _ 김일환
아트코리아 | 조회 527
마음 그림

그림을 그리다 보면은 한 단계의 벽을 뛰어 넘으려면 많은 시간과 고뇌에 찬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을 붙들어 맬 수 있다면 한 공간속에 머물게 하여 온갖 호작질로 별의별 짓을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영역에서 자기성취를 위하여 누구나 갖는 바람 일 것이다.
청초의 화가 석도는 선종에 입문하여 중국화론에서 불후의 명작이라 하는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이란 책을 저술하였으며 이중 일획론(一劃論)은 서화일치(書畫一致)의 사상을 표현한 핵심적인 화론이다. 그는 첫째 내면의 인식을 강구한 다음 가슴 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고, 그런 다음에 다음의 팔이 움직여 붓을 부리고, 붓은 먹을 부려 만물의 형상을 그린다고 하였다. "태고에는 법이 없었다"로 '태고무법(太古無法)'에서 일획(一劃)의 법(法)을 끌어내었기에, 석도의 화론을 '일획론'이라 일컫는다.
일획이 곧 일화다. 점,선,면이 한획으로 화면속에 공간의 여백을 조화롭게 공유하여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면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업의 과정에서 생각대로 매 순간 잘 풀렸으면 좋겠고 흐르는 물같이 시간과 공간성에 잘 녹아내려 절로 모양을 갖추어 캔버스에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에, 때로는 꿈속에서도 미련스럽게 염원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그림에 역마살(驛馬煞)이 끼어 오랫동안 한 주제에 정착하지 못했음에 기인한다. 그저 그리고 싶은대로 그려 왔었다. 그리고 신병을 앓고있는 무당이 내림굿을 통해 공수하듯이 영력(靈力)으로 이어지는 그림들을 그렸는 것 같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요 강신무(降神巫)이였다.
일반적으로 강신무에서 영험함이 떨어지면 역(易)에 의존하여 명리학 위주의 세습무로 가는 것이 통상관례다. 그러나 초자연의 무한한 힘을 무시하고 영적인 기(氣)를 지속적으로 보유하지 못한다면 사이비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세습무도 영(靈)을 맑게유지 하려고 산천을 두루 찾아 다니며 치성으로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자연만물에는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다. 정령(精靈)이다. 영은 마음의 핵이다. 그림 또한 영이 맑지 않으면 속된 그림이 되기 싶다.
나는 오래전부터 목우(木愚)라는 아호를 쓰고있다. 나무를 주제로 ‘아리랑이라는 이미지’에 천착해온 ‘한’을 나만의 영감(靈感)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연유희(自然遊戲)로 즐기고자 했다.
2018년 ‘아리랑을 품다’이후 세습무(世襲巫)로 연결되어 지는 것 같다. 자연을 벗삼아 노닐며 즐기던 산중생활이 25년이나 지나고 보니, 이제는 모천회귀(母川回歸)의 본능을 지닌 연어와 같이 마음의 고향에 정착하고 싶었는 것 같다. 마음그림이다. 마음은 삼라만상이고 우주다. 고귀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품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화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림을 구상하여 작업에 들어가면 잡다하고 소소한 생각들을 끈어내어야 하고 주제에 맞는 느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지속적인 전개와 보존을 위하여 거의 두문불출하면서 그러한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상정된 그러한 생각들을 깊고 폭넓게 많이 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메이지 않고, 쫓기지 말고, 붙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 놈이 있으면 끄집어 내고, 허허하게 비워진 공간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하는 그놈도 잡아내고, 유추하여 나타나는 느낌의 이미지까지도 화면으로 불러내어 확인하여야 한다. 아니면 “에라 모르겠다”로 휘갈겨 보며는 뜻밖의 새로움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데.
단, 본 주제에 어떻게 매칭되어질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적인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는 비어진 공허한 공간속으로 집착에 의한 마귀가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원시미술의 시원으로 되집어 보자는 의도와 인간본질성에 내재된 유희충동의 원초적 표현의 재현이라는 맥락에서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한 논리로 접근 하자는데 있다. 이러한 의식의 전개가 마음그림이라는 차원에서 그냥 놀고 즐기고 싶다는 것이고 인위적인 것과 가꾸고 꾸며진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속에 그냥 존재하는 소재들에 관심을 갖고 선호하게 되었다.
우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했고, 재료 선택은 그려지는 그림에 따라 바탕천이나 물감, 도구등에 다변화를 시도하였으며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을 기본 토대로 삼아 자연의 형상을 가장 단순화 할 수 있는 골격을 찾아 주로 흑, 회, 백의 무채색으로 그렸다.
물론 여러번의 드로잉작업을 거쳐 화면의 변화과정을 유추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모아 어느날 일필로 표현되어지는 형식이다. 곧, 일획론이고 일화다.
이를 정제된 심성을 우려내는 과정으로 보고 빗자루, 수수깡,작대기,평붓등 주변의 일상적인 도구로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자연스레 물감을 찍고, 떨어뜨리고, 선을 긋고, 문질러 보는 등의 행위를 거듭하는 형태의 작업이다. 그리하여 번지고, 겹치고, 흘러내리고 하는 등 우연의 조형성을 기대하며 무심의 행위적인 노작을 거듭한다.
그렇다 마음 가는대로의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 하였고 그러한 행위가 시원예술성의 발로라 인식하여 결과론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성에 무게감을 두고자 하였다. 마음그림이다.


김일환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