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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내멋대로 그림읽기]김일환 작 '아리랑을 품다' / 매일신문 / 2021-04-27
아트코리아 | 조회 302

김일환 작 '아리랑을 품다' 200x154cm, 아크릴 온 캔버스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기자가 미술담당을 하면서 느낀 '제일소회'(第一所懷)는 나와 무관했던 미술가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취재를 위해 미술관과 전시회를 쫓아다니다 보면 처음에 '저것도 그림인가' 또는 '저 작가는 무얼 표현하기 위해 저렇듯 캔버스에 붓질을 해댔을까'하는 의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지만, 기사 작성을 위해 억지로라도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아하 그런 거 였구나'하는 영혼의 메아리를 듣게 되는 때가 있었다.

바로 이때가 설혹 그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나'와 '작가의 정신세계'가 사유의 교집합을 형성하고 비로소 소통되는 순간이 된다. 이 순간은 달리 말하면 '차이성의 드러남'과 동시에 '다름의 인정이자 범우주적 일자(一者)의 나타남'에 대한 각성이다. 또 이러한 생각들이 모이자 이제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세계와 접촉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아이의 인성은 그 누구보다도 넓은 이해의 폭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작은 교육관도 생겨났다.

김일환 작 '아리랑을 품다'를 보라.

구도와 색감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큰 나무가 그림 속 주인공이다. 나무 오른편에 수많은 이들이 지나면서 기도를 했을 돌더미가 있고, 왼쪽 지평선 멀리 서낭신을 모신 듯한 당집이 그려져 있다.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성황당(城隍堂)이나 마을 앞 오래된 나무는 예부터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厄), 질병, 재해 등을 막아주는 토템신앙적인 방패였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는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자연을 지배하는 신 또는 정령이 내려오는 통로였다. 자연히 이러한 나무를 매개로 하늘로부터 영험한 기운을 내려 받아 마을을 보호하고 나의 안전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두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시점은 오전인데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푸른색으로 보아 새벽을 갓 지나온 것처럼 보인다.

작품 제목 중 '아리랑'은 뭔가 간절한 마음이 들 때 불러 성황당을 지키는 수호신인 나무의 정령을 일깨워 그 소원을 들어달라는 호소의 노래였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또 성황당과 함께 세월을 이겨온 나무는 애절한 소원의 기도를 얼마나 많이 품고 있을까? 이 점에서 '아리랑을 품다'는 작품명은 아주 적확하다.

김일환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토템신앙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 중에는 유독 나무 그림이 많다. 호(號)마저 '어리석은 나무'란 의미의 '목우'(木愚)다. 그에게 나무는 정신과 혼이 갈구하며 기다리고 있는 형상이자 대표적인 조형언어다.

김일환은 술 한 잔이 거나하게 혈액을 돌 때마다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현실의 각박한 삶 속에 황폐해진 우리의 정신과 혼을 씻김의 형식으로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토템적인 시원문화를 되짚어 보고 싶었다"고.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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