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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가루로 그린 문인화의 신경(新境) - 정태수
지산 정성석 | 조회 1,199

돌가루로 그린 문인화의 신경(新境)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1.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과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만남으로써 가능해진다. 우리는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미지는 우리의 의식 속에 비쳐진 대상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조형심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연대상에서 특수한 대상을 지각한 뒤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담아낸 독자적인 표현방법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감상자에게 제공한다. 즉 특별한 의미를 가지도록 이미지를 재구성하거나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지의 구성요소는 조형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예컨대 선 질감 등이 그것이다.

 

전통문인화에서는 수묵이 주재료로 사용된다. 수묵이란 재료는 조형요소 가운데 색과 질감에서 시각적인 효과가 두드러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전통문인화가 지닌 조형요소 가운데 이러한 아쉬운 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선보이려는 작가가 지산 정성석이다. 그는 30여 년 동안 수묵으로 그린 문인화로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미술협회 문인화부문 초대작가로 등단하면서 성실하게 창작에 임해왔다. 그런 결과 대구에서 손꼽는 중견작가로 성장하였고 한국문인화계에서도 독자적인 양식을 개척해 나가는 작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지산은 초대작가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면서 수묵 위주의 전통문인화에 변화를 모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묵으로 화선지 위에 매난국죽을 주로 그려왔던 전통문인화의 창작양식에서 일탈된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먹색의 모노톤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채를 화면에 등장시켜 색감이 화려해졌고, 돌가루를 화면에 붙여 입체적인 질감까지 지닌 작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작품의 주재료는 먹에서 돌가루로 바뀌었고, 검은 먹색 대신 다양한 색으로 화려해졌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주는 색감은 원색이 아닌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색상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용한 돌가루는 보도블럭 충진재인 규사, 백운석, 광물 등을 잘게 부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전까지 화선지에 작품을 그려오다 골판지를 이용해 재료의 다양성을 모색했고, 이번 작품전에서는 돌가루를 화면에 붙여 전혀 다른 작품양식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펼쳐보인다. 이렇게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지산은 누구일까.

 

 

2. 지산이 문인화를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인 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오 채희규 선생의 화실에 입문하면서 그의 문인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화실에 출근해 청소를 하고 모든 회원들이 돌아간 뒤 화실문을 닫고 퇴근하는 것을 본 청오 선생이 군대 제대 후에도 변함없이 성실한 지산을 보고 화실의 사범으로 임명해 20여 년을 청오화실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다 2000년 이론과 실기를 접목하기 위해 대구예술대 서예과에 진학해 취미로 해 오던 문인화를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전공을 하면서 깊이를 더하게 된다. 2007년 지산화실을 개원한 뒤 독자적인 화풍을 가꾸기 위해 휴일도 없이 화실로 출근하고 있다.

 

지산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작가는 청오 선생을 비롯하여 정섭, 오창석, 제백석, 반천수 등 명가들이다. 그 중에 정섭의 대나무를 특히 좋아해 부지런히 모작을 했다. 이렇게 모작을 하는 틈틈이 공모전에도 출품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사군자 가운데 매화와 대나무를 많이 그렸다. 인간이 지닌 희노애락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기에 가장 즐겨 다룬다. 일상에서 슬픈 일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붓을 잡고 매화나 대를 치고 있으면 어느새 붓 끝에 마음을 의탁하게 된다고 한다. 근자에 이르러 사군자 이외에도 다양한 화목에 문인산수화까지 화면에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재료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3. 이번 7회 개인전에 펼친 지산의 작품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과는 사뭇 다른 양식이다. 지난 2~3년 동안 다루었던 골판지작업에서 벗어나 돌가루를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돌은 원초적인 물질이다. 우리 주변에 흔한 것이 돌이다. 돌은 경질의 물질이지만 부수어 가루가 되면 무형질이 된다. 그리고 그 무형질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형상으로 환생된다. 이 촉각적인 물질은 작가에 의해 전혀 다른 촉감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게 된다.

 

지산의 근작은 돌가루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돌가루는 모든 상념과 상상력을 발현하는 소재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조형미감을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돌가루로부터 출발하는 그의 작업은 돌의 본성과 느낌,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로부터 발아되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작업 과정은 판넬 위에 광목을 입히고 아교와 본드를 이용해 적절하게 색을 입힌 돌가루를 붙여나간다. 사이사이에 수묵으로 그림을 그려 돌가루의 질감과 함께 수묵의 유현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출품된 작품을 일별해 보면, 몇 가지로 특징이 추출된다.

 

첫째, 부감시(俯瞰視)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작품류이다. 소나무 숲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형상일까.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둥근 원처럼 가운데 공간을 비워두고 공생(共生)을 지향하고 있는 솔숲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음각으로 처리된 물결과 바람은 붓으로 보여줄 수 없는 맛을 제공한다. 소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이다. 장수(長壽)를 뜻하며, 변하지 않는 푸른 솔잎은 절개의 상징이기도 하고, 신년(新年)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앞만 보지말고 가끔은 위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조형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산과 숲으로 에워싸인 강에서 호젓하게 노니는 오리가 보인다. 동양 그림에서 오리[]는 압()에서 갑()을 취하여 첫째라는 의미가 있다. 시험이나 소망하는 일에서 으뜸이 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문인화에서는 보는 것과 함께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도 중요한 감상포인트이다.

 

둘째, 전통문인화에서 느낄 수 없는 질감이다. 질감은 재질의 표면적인 구조를 손으로 만질 때 느끼는 촉감을 뜻한다. 질감은 인간의 감각적 과정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흐나 루오가 물감을 캔버스에 두껍게 칠하거나 현대추상미술의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현실감을 추가하려고 현대미술가들이 자주 활용했지만 문인화가들이 많이 추구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매화난초국화가 담긴 화병(畵甁)을 돌가루로 제작함으로써 붓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생생한 재질감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소나무의 줄기, 나뭇잎, 땅과 산 등에서 원초적인 색감을 감지하게 된다. 화병은 재질감이 들게 하고 난초와 국화 및 매화는 수묵으로 그려넣은 것도 이채롭다. 산수의 경우 근경의 나무줄기는 돌가루를 입혀서 입체감이 들게 하고 원경은 수묵으로 그려서 유현감이 들게 처리했다. 이처럼 수묵과 돌가루가 상보적으로 작용하여 풍성한 재질감과 동시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셋째, 화면의 내외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흔히 작품은 일정한 화면공간 안에 그리고 액자를 덧씌운다. 그런데 작가는 두 개의 화면을 잇대어 놓았거나 화면 밖까지 그림이 벗어나게 함으로써 안고 밖의 경계를 무너뜨려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시도 역시 문인화라는 고전적 장법에서 벗어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그만의 신선한 작업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이를 통해 지산의 조형사유를 엿볼 수 있다. 그의 발표작은 우리의 미감 속에 내재된 흙이나 돌이 주는 친연성을 바탕으로 삼고 전통문인화에 창신이란 옷을 입혀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문인화가 갖는 평면성에 입체감과 재질감을 부여하고 색채감까지 부가하여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것으로 살펴진다.

 

4. 논어 위정편(爲政篇)’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지산이 후학들을 지도할 때 늘 철칙으로 삼고 있는 글이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지어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산의 경우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겸손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 노자(老子)가 말한 물[]을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고 이를 자신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좌우명을 물처럼 순리대로 살자라고 설정하고 있다. 일찍이 노자는 인간수양의 근본을 물이 가진 일곱 가지 덕목[水有七德]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謙遜), 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包容),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융통(融通), 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忍耐),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大義)’가 그것이다. 이러한 그의 좌우명을 보더라도 그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연구하고 창작할 때는 항상 신경(新境)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이다. 작품창작에 있어서 적당하게 타협하거나 융통성을 부리지 않는다. 늘 깨어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앞으로 자신의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작가 스스로도 미지수라고 말한다. 다만, 원시반본의 정신으로 서예와 문인화의 본질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조형미감을 꾸준히 전개시키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작가로 보인다. 작가의 예술행로에 행운이 있길 기원한다.

 

 

 

201511월 팔공산 무심헌에서(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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