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23-09-20 14:32

석도화론

​14. 사시(四時)
관리자 | 조회 58
14. 사시(四時)

  무릇 그림을 그릴 때는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사시의 경치와 풍미(風味)가 같지 않게 그려야 하며 그늘지고 맑음도 각각 달라야 하고 때를 살피고 기후 변화를 헤아려야 한다.

   옛사람은 시로써 기이한 경치를 표현했는데 봄을 말하기를

 [봄에는 늘 사초가 피어나고 긴 강물은 구름과 연접하누나.(每同沙草發 長江水雲連) ]

라고 하였으며, 여름을 표현한 시에는

 [나무아래는 늘 시원한 그늘이 있고 물가의 바람은 참으로 서늘하다.(樹下地常蔭 水邊風最涼)]

라고 하였으며, 가을에 대하여는

 [싸늘한 성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넓은 평원은 창창한 숲일세.(寒城一以眺 平楚正蒼然)]

라고 하였으며, 겨울을 표현한 시에는

 [아득한 길을 그리자니 날씨는 추워 붓만 앞서고 벼룻물 차디차 둥글게 얼어붙었네.(路渺筆先到 池寒墨更圓)]

라고 하였다. 또 이와는 달리 절기와 맞지 않는 시도 있다.

즉 이와 같은 시는

 [눈이 쌓였어도 하늘은 차가운 기운을 잃고 세밑에 가까운데도 해는 도리어 길어라.(雪慳天欠冷 年近日添長)]

라고 하여 이 시는 겨울이면서도 추운 기운이 없는 듯하다.

   역시 시에 말하기를

 [겨울은 태양이 일찍이 뜨고 날씨는 자주 변해 눈 왔다 비 왔다 개었다 하네.(殘年日易曉 來雪雨天晴)]

라고 하여 두 시로 그림을 논한다면 흠랭(欠冷), 첨장(添長), 역효(易曉), 협설(來雪) 등의 네 가지 현상은 유독 겨울뿐만 아니라 춘. 하. 추 삼 계절 아무 때나 그 변화에 따라 구속없이 그릴 수가 있다.

   또 반은 개고 반은 흐린 것을 나타내는 시도 있으니

 [조각구름이 명월을 가리우니 어두워지고 햇빛은 비스듬히 빗줄기 사이로 밝게 비추네.(片雲明月暗 斜日雨邊晴)]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갠 것도 같고 흐린 것도 같다라는 시도 있는데

 [해 지는 것을 걱정 말아라. 하늘가의 한 점 그늘이로다.(未須愁日暮 天際是輕陰)]

라고 한 시가 그것이다.

  나는 고인(古人)의 시의(詩意)를 떼다가 화의(畵意)를 삼는데 내가 그린 경치가 그 계절을 따라서 그려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눈 앞에 설산(雪山)이 그득하면 때를 따라 수시로 변화하여 이것으로써 음영(吟詠)이 일어나면 내 그림 중에 시가 있고 시 중에 화의(畵意)가 있음을 알 것이니 시란 그림속의 선기(禪機)가 아니겠는가?

[출처] 14. 사시|작성자 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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