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23-09-20 14:32

석도화론

8. 산천 (山川)
관리자 | 조회 62
8. 산천 (山川)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산천의 본질을 알 것이요, 필과 묵의 법도를 아는자는 산천의 꾸밈을 알 것이다.

  그러나 꾸밈만 알고 이치를 모른다면 그 이치는 매우 위험하다. 또 그 본질을 알고 법도를 모른다면 그 법도는 쇠미해져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데는 반드시 일획을 터득해야 한다. 일획이 명확하지 않으면 곧 만물이 막히고, 일획이 명확하면 곧 만물이 정결하여 엄숙해진다.

  그림의 이치와 필의 법도는 천지의 본질과 꾸밈에 불과하다. 산천은 천지의 형세요 풍우(風雨)의 맑고 흐림은 산천의 기상이다. 또 성글고 조밀하고 깊고 먼 것은 산천의 대세를 이해함이요, 종횡(縱橫)과 탄토(呑吐)는 산천의 절주(節奏)요, 음양과 농담(濃淡)은 산천의 표정이요, 물과 구름이 모였다 흩어짐은 산천의 연속이요, 춤추듯 서로 등지고 있음은 산천의 숨겨진 동정(動靜)이다.

  높고 맑은 것은 하늘의 본질이요, 넓고 두터운 것은 대지의 본질이다. 바람과 구름은 하늘이 산천을 속박하려는 것이요, 수석(水石)은 땅을 심하게 흔들어 놓은 산천인 것이다. 천지의 본질이 아니면 산천의 들과 나는 변화를 헤아릴 수 없으며 비록 풍운의 속박이 없었던들 지구의 산천을 낱낱이 다른 모양으로 나누어 그릴 수 없었을 것이며 비록 수석의 흔들림이 없었다 한들 산천의 다른 형세를 붓끝에서 그려낼 수가 없을 것이다. 또 산수는 본래 광대한 것이기 때문에 광토(廣土)는 천리요, 싸인 주름은 만겹이요, 비단폭 같은 봉우리가 험준하게 둘려 있는 풍경을 한번 좁게 보는 눈으로써는 그 신선(神仙)이 나는 듯한 신경을 아마 그리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그림을 일획으로써 헤아려 보면 즉 참다운 천지변화(天地變化)의 발육을 알 것이다. 화가는 산천의 형세를 헤아리고 대지의 광활하고 원대함을 재고, 봉장의 소밀(疏密)함을 살피고 연운(烟雲)의 엄영(掩映)을 인식하여야 한다. 정면으로 앉아서는 천리를 대하고 옆눈으로는 만겹을 대하니 이것들은 모두 다 천지의 권형(權衡)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늘에는 권(權)이 있어 능히 산천의 정신과 영기(靈氣)를 변화시킬 수가 있고 땅에는 형이 있어 능히 산천의 기맥을 운행할 수가 있다. 나에게는 일획이 있으므로 능히 산천의 형태와 신기(神氣)를 꿰뚫어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내가 50년 전 아직 산수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낡은 산천의 생각에 있을 때 역시 옛 찌꺼기에 얽매여 나로 하여금 산천의 미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산천으로 하여금 나를 대신하여 말하게 하였으나 산천이 낡은 구습을 나에게서 탈피하였을 때 또 내가 산천에서 탈피하였다. 이것은 내가 참으로 기이한 형태의 산을 찾아 초고(草稿)를 하였음이요, 산천과 내가 한 덩어리로 된 신기를 만나 혼적을 변화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대척자(大滌子)의 화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출처] 8. 산천|작성자 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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