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    업데이트: 23-09-20 14:28

평론

최도송의 평론(評論)
관리자 | 조회 65
실경의 내면화를 통한 여백의 미

 
崔道松(美術評論家)

  일각에서는 한국화, 특히 산수화가 침체되어 있다는 논의가 드물지 않게 들리고 있다.

그러나 기실 해마다 산수화가 타 장르에 비해서 개인전을 비롯한 중소그룹전과 수십 명에서 백여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그룹전이 어렵지 않게 열리는 것을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통하여 산수화 작업을 하는 작가의 숫자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작품의 경향도 하나의 유파로 형성될 정도로 나름의 변화와 개성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먹과 모필(毛筆)에 대한 교조적인 가르침을 강요받지 않으면서 또한 전통의 하중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보다는 동시대적인 자연관의 미감과 표현방법을 통해서 보여주는 경향의 작품들을 주로 제작하고 있는데 현재는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서 산수라는 용어보다는 산수풍경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 경향의 작품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념성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현재 발표되는 산수풍경 류(類)의 작품들은 서양화가  보여주는 질료감을 갖지도 못하고 또한 수채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투명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군들의 자연관은 상당수가 객관적인 사실성에 입각한 정서적 표현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와같이 서구의 풍경화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면서 모필과 수묵으로 그려낼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형식적으로나 이념적인 모호성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지을 줄 알고(詩),쓸 줄 알고(書),그릴 줄 아는(畵)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서 시 공간적 표현정신이나 정신미를 획득했을 때 수묵과 모필을 통한 표현에 필요한 이념과 자연과 인간을 보는 표현적 방법과 함께 산수가 갖는 소재로서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성수는 첫 개인전 이후 10여 년 가까이 수많은 사조의 범람 속에서 결코 흔들림 없이 수도자와도 같이 일관된 자기 추구와 구도적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서 표출되는 회화관의 방향은 현재의 산수풍경적 경향의 작품과는 상당히 괘를 달리 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동양적 예술관에 깊이 닿아 있다.

  우선 진성수가 일상적으로 즐겨 다루는 주요 소재는 역시 산수풍경이다. 그렇다고 그가 고산준령이나 명승지 들과 같은 특별한 경관을 탐하여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을 품 삼아 삶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인간들의 삶의 자취와 정경을 주로 화폭에 담아낸다. 진성수는 쉼 없이 현장을 찾고 자연 속에서 삶을 가늠하고 또한 그런한 영감을 작가의 조형의지로 재구성하여 작품으로 표현해 낸다. 그렇다고해서 그는 그 삶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지는 않으면서 또한 멀리서만 보는 것만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원적 시각으로 관조하고 있다.이는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그러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작가 진성수가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중도적 성품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성수는 오랫동안 산수풍경 작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줄곧 보여주는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가 여백의 효과적인 운용에 의한 유현미(幽玄美)라고 하겠다. 대상을 객관적인 관점에서만 제시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서구적 방법의 영향으로 한국화가들이 많이 시도해온 방법인 발묵이나 먹의 번짐 효과를 극대화 시키면서 추상성과 겸하는 표현법이 아니라, 절제미와 여백의 운용을 통하여 시정(詩情)을 나타내주고 여운을 남기면서 화면상에 유현미를 표출한다. 원래Taoism에서는 드러난 부분보다 감추어진 부분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에서 오히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겨져 버린 공백이 아닌 이 여백(餘白)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고도로 발달된 화면 운용의 지혜로 여겨져 온 것이다. 그래서 산수화에서는 오랫동안 우주자연에 편재되어 있는 기(氣)의 표상으로써 무한한 공간을 암시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직관의 시각화 방법으로 여백을 중요시 해왔다.

  그런데 이 여백의 운용 능력은 작가의 내면적 수양과 인문학적 소양 정도를 그 척도로 삼았다. 여기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체험과 사색의 깊이가 전제되어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소동파가 상총(常聰)에게 가르침을 청했을때 "유정(有情)의 가르침만을 청할 것이 아니라 무정(無情)의 가르침을 왜 듣지 못하느냐"는 말에 대자연과 자기 자신이 둘이 아닌 물아일여(物我一如) 경지를 깨쳤다는 일화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는 진성수가 조형 체험과 사유 활동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청풍명월(淸風明月)' 을 보면 진성수의 회화관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제목만을 보면 시의(詩意) 가득한 고전적 이미지의 작품을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실제 작품은 사뭇 다르다. 화면 좌측의 거의 절반을 달을 머금은 중묵(中墨)으로 대범하게 처리하고 우측에 현대식 가드레일을 그려서 길을 통한 공간적 원근감을 설정한 다음 우측 상단에 숲에 쌓인 돌담 위로 현대식 농가가 그려져있다. 이는 그가 고전적인 시상주의를 동시대적인 소재로 표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상을 통해서 정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작화의도를 잘 살펴 볼 수가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점은 작가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역할이라고도 하겠다.

  역시 작품 '한촌(閑村)'에서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평원법(平遠法)구도로 변화가 풍부한 필세(筆勢)와 채색법으로 동시대적인 산수풍경을 여백의 효과적인 운용을 통한 시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한촌(閑村)'을 대표적으로 해서 표출되는 진성수 만의 구도의 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면에 있어서 조형적인 클라이 막스를 상단에 배치하면서 밀도 높은 표현을 보여주고 하단으로가면서 과감한 묵법의 필선과 채색을 통해 시원하게 공간을 배치 함으로 해서 기본구도가 평원법(平遠法)이면서도 그림에 따라 고원법(高遠法)으로 또는 심원법(深遠法)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적인 구도의 포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구도적 특징은 근래에 와서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바로 이러한 구도적 특징들이 소박한 자연주의적 산수풍경과 달리 일상성을 통해서 일상성을 초극해 나가는 귀의처로서의 산수풍경 작품으로 표출되는 진성수 만의 특징적 요소들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화면이 관념적으로 흐르지 않고 풍부한 사생취를 보여주는 또 다른요인은 농묵,중묵,담묵등 각각의 먹색에서도 치밀하고 다양한 필력을 보여주면서 선염에 의한 공간적인 깊이감이 여백과 함께 문인화(文人畵)적인 화격(畵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개성적인 경향의 작품은 앞으로 그의 작품이 보여줄 궁극점을 유추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산수화가 갖는 동양의 특징적인 미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정체성의 모호함을 겪고 있는 산수풍경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하나의 성공적인 제시점이 될 수도 있으며, 이는 곧 작가와 그리고자 하는 대상사이의 관계를 제시한 고개지의 '천상묘득(遷想妙得)'에 대한 내면화이며 현대적인 구현이라 할 수있다.

[출처] 최도송의 평론(評論)|작성자 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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