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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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03    업데이트: 22-04-04 16:03

정하해 시

애기동백
아트코리아 | 조회 480
애기동백
정하해

마음을 얻는 건 겨자씨만한 보은이다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손톱 깎기로 살까지 베어내는 그녀를

멈추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옛날이야기만 꺼내는 사내의 그녀

간결하고 느린 대답은 사내를

남편으로 읽는다는 것뿐이다

그녀가 몸을 비우는 여행 중이다

여행지까지 따라 갈 수 없는 사내가

말을 동동 굴리고 있다

모월모시 남편의 생일까지는 어찌 아는데

한 단어씩 잃어버리는 속도를

몇 뼘 남지 않은 생의 기록을

눈 맞잡고 밀어내는데

그녀가 몸을 다 빠져 나가기 전

한번만 불러봐 달라는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뭉개어버리는 그녀가 오늘도

햇살과 논다

손톱을 깎다말고 하얗게 뜬 반달을 파내려고

피가 나도록 긁어대는 알 수 없는 행동이

그녀만의 방언 같아서

가만히 손을 잡는 사내는 눈물 콧물 범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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