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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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5    업데이트: 19-05-2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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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정하해 시인 시집 『바닷가 오월』 출간
아트코리아 | 조회 1,600
대구광역시, 정하해 시인 시집
『바닷가 오월』 출간
- 욕망의 시대를 벗어나 그리움의 근원을 찾아가는 시인


해안을 잡아 맨 흉터가 여기저기 나있다
누가 아프게 치대었던 가 보다
파도는 살 다발로 그곳 가리려 애쓰고
해안은 멀리 떠나려고 애쓰고

발이 흠씬 붓도록 
독사 같은 슬픔도 여기서는 천만의 위안이다

그리움에 공소시효는 없어
그렇게 물가에 내 처질 동안
아무데나 붉은

그렇듯 슬픔은 무력해서 동해안 끝까지 
해당화 몇 몇 송이가 
둥둥 밀고 가는 오월
- 시인의 시 「바닷가 오월」 전문

바닷가를 거니는 두 연인에게 갑자기 파도가 덮친다.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진 여자를 구하고 남자는 죽는다. 까마득한 슬픔, 여자의 애통한 눈물이 떨어진 해변에 피어난 꽃, 해당화! 해당화의 꽃전설이다. 
이렇게 가슴 깊이 각인된 그리움에 공소시효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독사 같은 슬픔인가. 그러나 그리움의 깊이는 끝이 없어 이 슬픔조차 한없이 무력하다. 해당화가 피어있는, 만물이 소생하는 오월 바닷가, ‘그렇게 물가에 내 처진’ 그리움의 역설이다.

정하해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바닷가 오월』을 펴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에 대하여 황정산 문학평론가 겸 시인은 “정하해 시인의 시들에서 보이는 그리움은 벗어남을 수반한다. 도달해야 할 어떤 것으로서의 그리움이 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리움이 존재한다. 그리움은 그에게 목표나 이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정에 대한 그림자이고 음각이다” 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의 부정에 대한 그림자이자 음각’인 이 그리움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추억하는 것 또한 괴로운 낱낱이어서/ 없는 사람 문지르다/ 꽃들에 숟가락 얹는다”(이 시집의 시 「금지구역」 의 일부)라고 하여, 재개발구역 철거민들의 애환과 아픔을 위로하고 있는데서 볼 수 있다.

시인의 이러한 배려의 마음은, 집에서 싸간 빈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에서 내려 퇴근하는 가장의 모습을 둥지로 돌아가는 ‘새’에 대비시켜, “닳아빠진 저 부리로 스스로를 검문하는/ 사람의 숲에서 푸덕거리며/ 밀고 가는 저녁의”(이 시집의 시 「새」의 일부) ‘새’로 바라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시인의 관점은 추상적인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탐구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천근만근 저 몸을 돌아나가는 길을 해독하지 못하고”, “죽어라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가죽 속의 벌레 한 마리”(이 시집의 시 「만행萬行」 의 일부)라고 애틋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 그리움의 근원적인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 「난민」에 시인이 추구하는 관점이 잘 드러난다. 시인은 창문틀에 끼어 발아한 명아주를 보고 ‘풀이 (새 정착지 또는 새 생명을 위하여) 지상을 떠돈다는 사실’을 깨친다. 이같이 바람(?)에 날리는 풀씨 하나를 나라(조국)를 잃고 떠도는 ‘난민’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은 곧 인간으로 향하는 시인의 배려와 연민의 정신세계와 일치할 것이다. 풀씨(난민)는 땅(조국, 나라)을 그리워하고, 땅은 오히려 제 품에서 태어날 새 생명을 그리워한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의 상승작용이다. 이곳에서 그리움은 용해되어 사랑이라는 생명의 원천으로 녹아든다. 그리움의 원천, 실체는 바로 이곳에 있다.

이 시집은 제1부 근간에 동백, 제2부 어플리케이션, 제3부 15요일의 터널, 제4부 줄임말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황정산 문학평론가 겸 시인의 작품 해설을 실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난민」의 전문을 소개한다.


난민 

                                               정 하 해

풀이 지상을 떠돈다는 사실
창문틀에 낀 명아주 보고 알았다
참 조용한 땅따먹기, 늘 겨누는 상대가 있나보다
헌 신발에서도 전봇대 아래서도

풀물 잔뜩 밴 바지를 빨며 손가락마다 첨벙 스미는 
눈을 본다
서로의 따귀를 놓고 판가름할 때 어디든 이르고 싶은 
결말은 초원이다

풀의 화환으로 사들이는

거기는 조국
땅은 필생의 작업으로 당신을 따른다

정하해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살꽃이 피다』, 『 깜빡』, 『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서정시학 시인선 148 / 펴낸 곳 서정시학 / 값 11,000원

― 기사 제공 /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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