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솥
그래! 그래, 니 속판 내 다 안다
참다못해 터뜨리는 니 기인 긴 한숨
가슴 치며 헉! 헉! 가쁜 숨 몰아쉬는, 눌리다
눌리다 터지는 니 울음 안 당해보고는 아무도
모르는 숯덩이 속,
감히 내 안다 할 수 있는 건 무너진 콘크리트
벽에 갇혀 싸늘한 맨땅에서 무명소복을 입은
어둠과 싸움해본 때 있었기 때문이다
벽은 시간을 먹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내리 누르며 압력 가했고, 차운 냉기가 숨통잡고
킬킬 웃고 있었다. 압사는 초침 문제, 끓어오르는
소가지 태우지 못해 매캐하니 연기만 피우던
숯검정, 아야라 불붙었다 한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그래도 니는 압력 추 푹! 푹! 호들갑이
한풀이하는구나! 꼬치당초보다 매운 건 참겠다만
시방 난 숨쉴 추, 조차도 없는 압력솥
아소 님하, 지렁이 씹히는 소리가 날 한번만 더
설피 건드렸다간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푹, 푹,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푹, 푹, 푹, 푸우-ㄱ
봄비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
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
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
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
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
니, 니, 그 칼래?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정 숙]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기어이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