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0    업데이트: 25-07-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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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진우시인께 행사용
| 조회 33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신처용가><위기의 꽃><불의 눈빛><바람다비제><유배시편>시집<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연인, 있어요><한국 서정시 100인 선>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대구시인 협회상 수상
 
 
 
 
 
첫사랑/정숙
 
모란 꽃봉오리
분홍빛입술, 열까말까
수줍은 미소 뒤 숨어 피려는
꽃 한 송이, 그 여린 가슴 속
불꽃놀이
소녀의 옷깃 여미느라
말 한 마디 못했으니
그리움이 열쇠만
꼬옥 꼭 쥐고 있었는가
일흔이 지난 손바닥 이제 펴보니
녹슨 가루만 한숨 쉬고 있었네
 
동백/정 숙
 
수성못 가는 길
삶의 미련 다 버린 듯 모가지 째
툭, 떨어진 동백 한 송이
유리병에 띄운다
꽃이었던 기억 지우고 싶지 않은지
다시 새물새물 기운 차린다
동백기름 바르고 쪽진
이봉화 여사 화안한 웃음 피워낸다
제 몸 이미 병든 줄 모르고 까불거리는
딸 꿈에 나타난
소복의 근심도 되살리고 있다
허리 질끈 맨 황금빛 양단 치마저고리와
악어 백 옆구리에 낀
어무이, 어무이예!
 
 
 
 
 
 
수성못 연가/정숙
 
널 생각하면 사철 떨림으로 파문이 진다
네 가슴엔 달빛 흐르는 강을 연주하는
클라리넷 소리 같은 젊음과 그리움이 머물고 있어
날마다 아련한 바람으로 손짓하며 부른다
그 바람 속에서
내 인생 오뉴월의 별들이 모여 속삭인다
 
흔들리지 말아요
내가 가까이 다가갈게요
오늘따라 그대 피부 따스하고 부드럽네요
그대는 늘 불그스럼한 저녁 안개
해지면 따스한 눈길 추억으로 파문지면
그저 바람을 안고 춤추세요
달빛이 흐르는 하얀 옷자락 나부끼며
내일의 푸른 들판에 주사위 던지면서
 
 
 
능소화 폭포
 
 
겉절이 같은 내 풋사랑

하얀 백합으로 피어나나 싶더니

아버지, 한 마리 용으로 날아올라

화르르, 화르르르 불을 내뿜던

첫사랑. 무너져 내리던 그 날

화들짝 피어난 저 불꽃 뒤

내 눈물폭포 숨어. 흐느끼는 소리 소리들

김광석 거리 높은 벽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네
 
 
 
 
뜨개질
 
-가설무대 16
 
대바늘은 봄바람이 자두 꽃 이파리 날리 듯
 
시나브로 시간을 씹으면서 
 
코 빠뜨리지 않으려 나의 한 생을 촘, 촘 엮어간다 

늪 속에서, 오동나무 가지 끝에서 흔들리던
 
인생살이를 무슨 색깔, 어느 꽃으로 짜 넣어야
 
무지개 색 무늬로 남을 수 있을까 
 
다 늦은 밤, 시간이명에 쫒기며 잠 못 들고 있다
 
이 가설무대 끝날 때까지
 
울림이 큰 시, 조끼 한 벌이라도 완성할 수 있을지
 
 
 
 
 
시간풀무질
-가설무대 6
 
서산이 붉게 물들도록
바람을 불어 넣느라 어질어질했었는데
 
분명, 언제부턴가 구멍이 나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어야만 했나?
 
어머니의 생이 무대 위에서
춤출 기한에 쫒기고 있다는 걸 아는
 
그녀의 타이어가 참으로 매몰차게
슬쩍슬쩍 목숨바람을 빼버리고 있는데
 
시간은 제 탱탱한 바람바퀴에
한 순간도 풀무질을 멈추지 않는다
 
커튼콜의 기회도 한번 주지 않을 기세로
마지막 잎새 흔들어대고 있다
 
 
 
 
가을, 발걸음
-가설무대  2
           
 
은행나무가 온 몸의 열 모아
제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바람은 그 곁에서 찬 입김
후후 불어 식히고 있다
떠나야할 때를 준비하는 마음 알기에
그 곁을 지키며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들은 제 잎 다 떨어뜨리고 나면
봄의 무대가 기다린다는 걸 믿기에
저리 당당한 것인가
사람은 이 무대를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어찌 아는지
허덕거리며 다가오는 시간의
계절 건너는 내 발걸음, 자꾸
멈칫, 멈칫거린다
 
 
 
 
 
 
빨래판을 깨우다
 
 
한 겨울 오목천 냇물 얼음 깨어
양잿물에 삶은 무명적삼 치대고 또 치대면서
엄마는 봉화라는 자신의 이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
친정 기억의 환한 끄트머리를
뿌리 채 뽑아 싹싹 비벼대셨는데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다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어둠의 정체 잡아 깨워야한다며
물이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아직도 그 물때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 생의 빨래판은 소리만 요란하다
 
 
 
미루나무와 담쟁이
정 숙
도난당하고 있었다
미루나무는
제 삶을
야금야금 훔쳐 먹는 담쟁이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그들이 슬쩍 발을 걸쳤을 때는
반가웠고, 외롭던 참에 당연히 손 내밀었다
얄궂게도 차츰 밟고 오르면서
그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를 지어, 수만 개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면서 머리끝까지 올라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담쟁이는
더 밟고 올라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향해 손 흔들고 있었다
여름 이파리들이 하마 노랗게 떨어지는데
한 발 양보가 백 발 양보라는 것을 미루나무는
진작 몰랐던 것이다
아매도 늦은 밤 불면의 파도에 시달리며
지금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겠지
소사스레 담쟁이는 인제 옆 나뭇가지를 향해
애처로이 손 내밀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애써
누군가를 저리도 막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어린 왕벚나무와 하늘이 대책 없이
방관자인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끔 부르르 떨며 나무를 흔들다가 갈 뿐,
그래도 나무는 덩굴이 떨어질까
지 발등에 힘줄 세우며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숟가락 섬[정 숙]
 
사람의
섬과 섬 사이
숟가락엔 어느 노가다의 탄식이 남아있는가
 
메마른 영혼의 물기 마르지 않게
기꺼이 메아리가 되어주는
범종의 파문처럼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면
삶과 죽음
몸과 몸 사이의 생존을 위해
 
평생 밥을 실어 나르는
하늘님의 고단한 노동이 보인다
 
새삼 밥 한 알의 무게 달아본다
 
안동 간고등어

-정 숙
 
맛이 있다는 것은
간이 잘 들었다는 말인가
 
간이 잘 절여졌다는 것은
간잽이가
소금은 맞갖게 잘 뿌렸다는 말이겠지만
제 고향바다를 떠나 그 골짜기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그 성깔, 생 속 다 죽이고
저절로 푸욱 절여져 나긋나긋 짭짤한
그 맛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무심히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과 터진 생채기에
덧씌워 뿌리는 사람 사이의 소금 말고는
매정스런 칼바람에다 살과 살 부딪히는 비린내와
뒷골목 썩은 냄새나는
 
삶의 현장만한
간잽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첫 남자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아버지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 반짝이고 있는가
 
 
인간 구제역이여, 시방
 
--유배시편 2 [살처분]
 
1.
 
정철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진옥에게 수작을 건다.
 
*"옥(玉)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기생 진옥은 지체 없이 수작을 받아 준다.
 
"철(鐵)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얼,시구! '굿거리장단'으로 놀고 자빠졌네
잡것이 섞이지 않은 시우쇠라고?
모조품 아닌 참옥이라고?
 
덩따다다다 꿍따다다다 덩따다다다 꿍따
지난겨울 살처분 당해 가죽도 뼈도 남기지 못한 소귀신들
내 어슬픈 장구놀림에 붙어 울분을 풀어놓는다
 
*"아으 다롱디리 어긔야 어강됴리
달하 노피곰 도다샤 머리곰 비취오시라"
 
2.
 
엉뚱한 곳에 분풀이가 아니라 수작이 모두 개수작, 내 살아생전 옴짝달싹 못하게 통 속에 가두어 항생제만 처먹이더니 뱃속에서 세상 구경 한번 못해본 내 새끼들만 마구 땅에 파묻어 놓고 금세 돌아앉아 고기 살점 불태워 먹으며 '오 바 마!'소주잔 부딪히는 게
 
음메~너희 인간들이여!
사람 짐승들이여! 시방, 음메~울어라, 울어
내 뱃가죽 살가죽 찢어지도록
더덩! 더덩! 덩! 덩!
덩더꿍! 덩!
 
 
 
*정철鄭澈- 송강 선생의 성명
*정철正鐵- 시우쇠, 잡것이 섞이지 않은 쇠.
*섭철鐵)- 무쇠, 정련되기 전의 거친 쇠.
*진옥眞玉- 참옥, 기생 이름.
*반옥半玉- 사람이 만든 모조 옥
*출전 :신웅순, 「시와 시인 이야기」 , 『월간서예』 (2009,3월호)
*정읍사 부분
 
갯바위
----유배시편 65
 
바다는
산을 갉아 먹으려 쉼 없이 몸부림이고
산은 그 바다 밀어내느라 잠 한숨 못 들고
 
그 틈새 작은
돌부처 하나 가부좌 틀고 앉아
산은 산으로서
바다는 바다로서
서로의 경계선, 지켜야 한다며
 
미세기*의 시달림으로
제 온 몸 찢기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세월없이 목탁 두드리며
경전파도 뒤적인다
 
*밀물 썰물
 
배달민족
---유배 시편 28[김배달]

달려라!
너, 김 배달
오늘도 오천년 배달민족의 바톤을 들고 달려야 한다

물려받은 씨앗 잘 갈무리하여
주춧돌인 두 아들에 살림밑천인 딸도 두었고
별 볼일 없는 간판의 회사지만
명문이라 우기며
아래 위 서류전달도 어지간히 해댔지만
이제 겨우 세상맛을 알만한 나이인데
밀려나
세월 오토바이를 탄다
부릉! 부르릉!
온 몸 솜털이 곤두서서 춤을 춘다

이 나이에 배달민족의 근성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잠시 죽었던 한 남자 다시 일어선다
그 고사목에 새 잎이 돋아난다

열아흐레 달빛 옷걸이
-유배 시편 15 [지구의 어깨]
1.
저 가녀린 어깨에 얼마나 큰 무게 실려 있었던가
초가을 별빛 줍느라 잠은 밤새 돌아오지 않는다
흰 바람벽에 멱살 잡힌 옷걸이 하나
싸늘하게 눈동자 깜박이는 달밤을 입어 더 핼쓱하다
한 쪽 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지구의 어깨
낮엔 왜 보지 못했던 것일까
너덜너덜 껍질마저 벗겨진 채 깡통으로 찌그러져 있다

날마다 허영의 공깃돌 한 주먹씩 쥐었다가 흩어버리는 나의 낚시 바늘들
그 바늘이 물고 있는 그의 시간이, 돈다발이 그 살의 뼈 벗기며 끌고 다녔었지 한 때 내 배꼽열쇠가 그의 비밀금고 빗장을 열고 들어가거나 압력솥의
추 끓어오르다가, 뾰족 손톱이 그의 어깨 피 흐르도록 할퀴어대기도 했었지

2.

그 소리 요란하기 만한 난바다 산 같은 파도 헤치며 몇 사람의 밥통 지키느라 짓눌렸을 저 가장의 무너져 내리는 어깨, 소설 몇 권치 삶의 태백산맥 짊어지고 불면으로 깊어가는 밤을 헤아리며 벽 못에 물려있다

뿌리 없는 내 허망의 귀틀집에 감금당한 저, 뼈 속까지 구멍 난 남자 이제 살집 두툼한 내 어깨에 찢어진 그의 날갯죽지 뼈대가 기대어야 할 때인가 저, 열아흐레 달빛은 은근히 그것을 내게 강요하고 있는데
 
 
 
낡은 생의 미싱을 수리하다
-유배시편1 [지하도에서]

살얼음이 칼바람을 물고 달려드는 밤
서울역 지하도에 웅크린 사람들
세상사 뭐든지 꿰매고 깁던 버릇  버리지 못해
긴장된 순간들을 모아 시간 조각보 박음질하네
가슴 속 미싱 바퀴를 돌리고 있네
침침한 바늘귀에 실을 꿰어
지쳐버린 손가락 마디 호고 감치네
끝내 바늘귀를 찾지 못하고
헛바퀴만 몇 바퀴 드르륵 돌리다가
무연히 드러눕는 사람들
찬 바닥 신문지 몇 장 깔고 누워
허공으로 둥둥 떠올라 지상의 가족들을 내려다보네
미안하다, 사랑한다, 틀바늘은
간간이 헛소리 하는 제 주인의 꿈 깨우지만
드르렁, 컹, 컹 코고는 우레 소리만
지하도의 밤을 울리며 지나가네
속절없이 무너진 가슴 속 지키며
세상을 돌리는 재봉틀
헛바퀴 돌리는 소리
그 신음 속 밤의 폐부를 가르는 바람소리
어느 누가 촘촘히 박음질해 이어줄 것인가
 
 
돛대
--유배시편 10

삶의 전쟁터에서 뒤처져버렸다
디지털 속도 따라잡지 못해
한 집안 맏이로서 마지막 보루인
양반 뼈대 지키기 위해 제 안에 담 쌓은
늙은 소나무 하나
겨우 세평짜리 안방에서
뼈만 앙상한 제 면적조차 과분하다며
허옇게 이파리 떨어뜨린다
한 때 바람의 길 찾아주는 길잡이로서
노란 송화 가루 뿌려대던 시절 말아
혓바닥에 돌돌 연기 동그라미
허공에 굴리는 저, 사내
부러진 돛대의 자존심 어루만지는가
찢어져 간간이 펄럭이는 무명 돛에 남은
생의 뽕잎을 천천히 갉아먹고 있다
흐린 술 몇 잔으로
낡은 햇볕과 바람에게 감사 편지 쓰면서
늦가을 세한도 완성해가고 있다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참나무는 지 몸을 태워서
숯이 된다
숯은 참나무의 영장이다
그 영장이 다시 자신을 활활 태우면
불은 힘이 두 배로 강해진다
주검이
주검을 지글지글 태우는
둘레에 늘어앉아서
사람들은 하루의 허기 채운다
 
번개탄, 이봉화뎐

 한 세기 봉화 불 켜들고 남편과 자식들, 아래위 이웃에 꺼진 불붙이려 동분서주하던 번개탄, 이봉화 여사
 
벚나무 환히 불 밝혀놓고 당신의 생애 불 끄느라 숨결 깊이 몰아쉬더니
 
땅 속에서 하늘로 길 닦아 세상 어둠에 불붙이려면 봉화, 다시 필요하다며 두 손에 불의 씨앗 될 묵주를 꼭 움켜쥐고 떠나가신다
 
 
 
폭설
 
 
하늘이 사라졌다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숨이 턱, 목구멍에 걸린다
달달한 그리움과 며칠 갇히고 싶다던 시는
참담한 사치
 
참사랑은 십자가에서 예수의 수치스런 부분
가리느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루, 성의聖衣라고
활짝 연꽃이 대낮에 관능경을 펼치는 환희불이다
갓 피어난 연이 누군가의 우렁각시 되고 싶어 한다
나불거린 여러 필설들 머리 조아린다
 
섬망譫妄에 갇힌 환자의 헛소리와 절규
저 핏빛 하늘, 뇌를 열어놓은 채
설벽에 갇힌 중환자의 보호자들
말문의 샛길 찾지 못해
경계선 바깥에서 꽁, 꽁 얼어가고 있다
 
 
제비캉, 꽃뱀캉
정숙 | 조회 2,562
-처용아내 65 [춤바람]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우포늪에서
정숙 | 조회 1,308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기어이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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