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    업데이트: 25-08-12 13:06

연인있어요

전등사 연작, 부메랑 64
관리자 | 조회 35
나부상의 눈빛 날마다 폭발한다
-전등사 1
 
 
고통이란 금세 길들여지는 것
쪼그리고 앉아 절 추녀 받들며 끙끙대는 것도
잠시, 필요할 땐 언제라도 사랑이란 도구를
쓰는 세상의 남정네들 비웃는 벌거벗은 여인
돈 몇 푼에 마음까지 바칠 줄 믿었던 도목수의
어리석음 바람에 흘려보내고. 밤이면 부처님
신심의 높이 눈 맞추려 꿇어앉는다
발등에 입맞춤 한다
나무속에 갇힌 주모는 몸과 마음
아낌없이 천년 불공을 드리는지 그러나
눈빛만은 날마다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삼존불은 발아래 놓인 불전들 그녀에게 모두
되돌려주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가 아니다
깊은 바다 무늬 진 푸른 몸 장삼 자락이 감추며
무명삼매의 눈 뜬다
석가모니불은 흙탕물 몇 번 가라앉혀야
지장수 된다는 걸 손가락 하나 들어 말없이 보이신다
몸으로는 *간대로 꽃뱀 비늘의 독기 녹일 수 없다는 듯
 
 
*함부로
*강화도 전등사 나부상; 자신의 돈을 가지고 달아난 주모를
도편수가 나부로 조각하여 절 추녀 밑에 올려놓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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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감옥 깨뜨리며
-전등사 2
서까래 밑 주모의 나부 상에서 살 비린내 밤낮 흐느끼며 법당 안으로 흘러들어 부처님 전에 하소연하다가 돌덩이에서 깨어 제발 눈을 뜨시라고 얼어붙은 온 몸을 입김으로 뜨겁게 불어보다가 제 사특한 불심으로는 어쩔 수 없어 다시 추녀 밑으로 들어가 시지프스의 받침대가 된다
 
천년을 추녀 밑 배회하며 한 마리 늑대가 된 그 사내, 도목수 산발한 채 바람 되어 흐느끼는 소리에 부처님들 *지즈로 바위 깨트리고 나와 온 몸 돌고 있는 푸른 피톨 내보이신다 그들의 비린 인연 삭히려고 수평선 트여오는 햇살 한 줌 잡으시고 두 가슴 위 말갛게 얹어 미소 지으시며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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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蛇登仙
----전등사 3
 
사랑이란 저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것
 
천년 시간을 전등사의 서까래 들어 올리도록 발가벗겨 쪼그리고 앉혀진 몸
눈바람이 몰려와 칼끝으로 빗금 그어놓거나 꽃바람이 애무 하다가 찰싹 뺨을 떄리기도 한다
 
햇발은 그 분홍빛 살결 얼렸다가 녹였다가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어둠 속에 가둬버린다 법당의 염불 소리는 저승처럼 아스라이 들리고 생밤을 깨물며 돌아다니는 도깨비들과 어울리면서 제 몸에 박힌 가시들을 뽑는다
 
이 갈며, 알록달록 고운 무늬로 문신을 그려 시시로 풍화되는 몸 길들인다 드디어 몇 천 번의 허물벗기로 거듭 태어난다 나부상의 나무껍질에 갇힌 속 살결 되살아나고 이젠 주모의 솜털 하나하나 눈을 뜬다

추녀 밑 꽃뱀의 전생 모든 인과 벗어두고
지글거리는 지옥의 혀 끊어버리고
한 마리 저승새로 날아오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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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歌
 
-전등사 4
 
거문고 가락 눈발에 툭, 끊어진다
그 끈적끈적한 인연의 줄 어쩌지 못해
전등사 처마 밑을 떠나지 못하는
저 사내, 도편수
 
제 사랑의 깊이 재어보지 못하고 세상의 여자들을 벌레 먹은 장미라며
꽃봉오리까지 마구 짓밟더니
 
남몰래 새 한 마리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주모보다 자신이 먼저 사랑이란 주는 것이란 걸 깨닫기엔 너무 끈질긴 상처의 깊이와 집착, 달콤한 죽음의 길 찾지 못해 천년 시간은 흐르고
 
밤마다 꽃잎 질근질근 씹으며 자신이 깎아 만든 나부상의 연옥에 갇혀 너덜너덜 헤진 제 옷자락 쥐어뜯는다 언젠가 세상 한판 뒤집어 볼 바람, 미친바람을 주문으로 외면서
 
 
 
 
 
 
 
나는 날마다 빈 기차로 떠나가네
 
 

 
 
 
 
한 칸은 짙푸른 밤바다 밝힐 등대를 싣고
그 다음 칸은 고사목의 상처받은 겨울을 싣고
저마다 떠나가는 검은 돛배들
 
철로가 제 길의 끝을 안고 달리는 것인가
기적소리도 끌지 않고
떠나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철로를 달리고 있네
 
돌아오는 것은
폭설 속 내달리는 바람의 말갈기소리뿐
슬픔에 속 살결 베인 징채의 낮은 울음일지라도
마음설원에 기찻길 부려 놓고 눈길을 서성이네
 
겨울하늘 숲 서걱거리는
설렘의 파도까지 채워 넣으면서 기다리네
기적소리로 숲의 그림자 울리며
끝내 찾아오지 않는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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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촬영장에서

 
‘찰칵’ ‘찰칵’ 소리가 어느 전생을 불러낸다
닦달하는 저 소리 소리들
동자 귀신을 불러내는 무당의
휘파람보다 더 묵직하게 뇌리를 긁어댄다
 
렌즈는 검은 바위에 엎드린 모델의 가슴 속부터
거웃 뿌리의 근심까지 투시하면서
뭔가 꼬투리 잡으려 생몸살인데
 
그녀의 전생은 한 닢의 흰 장미 꽃잎이었던가
마른 침 삼키는 침묵의 틈새를 디밀고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햇살 따스운 풀밭 찾느라 뒤돌아보지도 않으며
 
그 속세상 눈에 보일 리 없는 카메라는
어느 칼바람이 새긴 암각화만 연신 찍어대고 있다
바람파도에 멍들고 찢긴
제 목숨꽃잎의 깊은 상처일지도 모를 그것을

 
 
 
 
 
 
 
 
 
 
 
 
한밤의 초인종을 누질러주세요
 
딩동, 딩동,

술 한 잔 거나해져야 겨우 한번 울린다 한밤중, 우리 집 초인종 그 남자는
 
아무리 동동 발 굴리며 울려도 녹슨 문은 쉬 열리지 않는데, 그 마른소리의 틈 사이 모래알만 가득 들어차 있는데 그래도 아직 눈 마주치면 안개꽃이 피어나긴 할 것인데
 
흥!, 밤물결에 뽑힌 깃털자리 먼저 보듬어야 상처 지워줄 수 있을텐데 한번 호~~~ 불어주면 모든 상처 다 아무는 입김일 텐데
 
길고도 짧은 시간, 많은 지상의 댓닢 서걱거리다가 떠난 뒤 고동껍질 속빈 바람소리만 그런 사소한 실랑이들을 일깨워주리니
 
어쩌랴! 따스한 눈길도 먼저 보내는 이가 즐거운 법이라고, 진분홍 루즈 입술로 덮쳐본다 '여봉, 오늘밤도 젖무덤 초인종 꼭꼭 누질러 주세용'
머라카노!
'니, 쥐 잡아 문 소리 할래? 고마 자라, 자!' 소리에 퍼뜩 꿈을 깬다 서걱, 서걱 창 밖 어둠 속에선 마른 낙엽들 끼리 살 비비는 소리 들리는데
 
 
64
 
 
 
 
 
아름다운 소매치기들
 

 
봄뜨락에 서 있으면
사람들의 귀를, 눈을 훔쳐가는 소리 없는 아우성 들린다
 
보도블록 틈새 밀어내며
노란 손수건 흔들어 주는 민들레꽃들이며
 
언 땅을 기어이 뚫고
당찬 힘으로 고개 드는 작은 제비꽃까지
 
네 가슴 차가운 벽과 담장은 꼭 무너뜨려야 한다며
넝쿨장미는 제 목숨가시로 진홍과 초록 색깔 덧칠하고
 
새가 되겠다며 하늘이 되겠다며
벚나무 늙은 등허리에 실뿌리 심어
허공깊이 자질하며 올라가고 있는 저 능소화의 오기

저마다 비발디의 사계절 꿈을 심고 키우느라
손발 뻗는 소리 밤새 지구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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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情
 
 
그가 보내준 분홍장미꽃다발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이 말라가면서
그 애틋한 마음 더 진하게 모여든다
 
마를수록 빛깔 더 진해지고
그 마음 한 모서리 아련한
무지개로 걸려
들릴 듯 말듯 살아야할 이유를 풀어 놓으며
 
 
 
 
 
 
 
 
 
 
 
 
 
유토피아 내 남자
 
-부메랑 64
 
강한 남자라며 애써 어깨 부풀리지 않고
같이 세상꼬리 내리고
살사 춤 그 타는 눈빛 없어도
촛불이 감춘 나이테 수 세어보지 않고
흔들리는 불빛에서 보이는 대로
발그레 상기한 볼 서로 만지며
마지막 동행을 약속하는
어둠,
달맞이 향 그윽한 검은 빛의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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