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호랑이들이 출몰하는 까치들의 설 그믐밤
그 떠난 뒤 맞이할 봄, 기다린다 사꾸라, 모란
꽃송이마다 길고 가느다란 눈매 들어있다
곧기만 해서 근심 가득한 두 눈동자 바보, 그
쉬운 숨 쉴 힘도 없다니! 차마 세게 칠 수 없어
내려놓는다 살다보니 어느새 쓰리 고에 피박인가
이승과 저승, 경계선 무너뜨리기 위해 변명이
변명을 먹는 시간 분명 나비가 될 거라더니
그새 몸 버리고 훨훨 가벼워졌나 소파나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다가 또 어디에도 없다 살아
있어서 휘휘한 봄, 어디쯤 와 있는가
빨래판을 깨우다
한 겨울 오목천 냇물 얼음 깨어
양잿물이 삶은 무명적삼 치대고 또 치대면서
엄마는 봉화라는 이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
친정 기억의 환한 끄트머리
뿌리 채 뽑아 싹싹 비벼대셨는데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다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어둠의 정체 잡아 깨워야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아직도 그 물때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 생은 빨래판 소리만 요란하다
능소화 폭포
겉절이 같은 내 풋사랑
하얀 백합으로 피어나나 싶더니
아버지, 한 마리 용으로 날아올라
화르르, 화르르르 불 내뿜던
첫사랑 무너져 내리던
그 날 화들짝 피어난 저 불꽃 뒤
내 눈물폭포 숨어 흐느끼는 소리 소리들
김광석 거리 높은 벽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네
유리꽃병
올곧은 꿈의 꽃줄기만 담기 고집하고 있어 전신이 투명해 보일 수밖에 없는, 장맛비 사철
내리는 제 고집의 유리 수갑에 손목 묶인 채 불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하세월 성냥
개비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낡아가기보다 차라리 한 순간에 바싹 깨져버리고 싶은
저 시인, 가슴에 향기 꾸리한 검은 꽃송이 하나 자라고 있는 걸 알고 있는가
빙하, 혹은 커튼콜
언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일까 얼음에 꽁꽁 갇혀있던 연민이 틔운 싹, 뿌리의 떨림 거부할 수 없었던가? 칼미움 다 내려놓고 싸늘한 눈빛 열쇠로 풀어 저 따스한 물결 따라가면 온갖 오물로 가꾸어진 쓰레기 더미 구경 할 수 있을텐데
세상 꽃들이 루즈 색깔 가꾸다 꿀벌을 말벌로 바꾸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 바닷물이 넘치거나 말거나, 매순간 꺾어버리는 저 나무젓가락 숲 태워버리거나 말거나 지구의 모든 관절 삐걱거리는 소리 시작한 애증의 논리, 그 전류들 밤낮 꿈속 뻗어나가고 있으니
사람 사이 얼음벽 무너진다는 것은 서로 간의 벽 허물어 온천지 햇살 입술 피워 향기 스며든다는 것인데 왜, 바닷물 넘치고 고래들 숨가삐 해안으로 밀려나야 하는지 여기 저기 흔들리는 지축 벌, 나비들 암수 가리기 애매한지 어디로 숨어버렸는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 닮아 녹아내리는지 사랑 천사들 피어날 순서 의심은 의심을 낳고 혼돈에 빠진 종이컵, 종이접시가 오늘도 나무 수백 그루 베어내고 있는 현장 찾아 떠내려가고 있다
설산은 하늘 잣대와 본분 잊어버린 채, 점점 뜨거워져 가는 입김으로 마음 빙 벽 무너뜨리고 있을 뿐인가! 노을은 제 거친 혓바닥 해 삼켜버리고, 바다는 핏물 넘쳐해안선 지우고 있는데, 벙어리뻐꾸기 한 마리 암전된 뱁새 둥지 안 살피고 있다
칫과에서
-가설무대 18
오늘도 혼자 당해야 하나?
별난 용품이 카리스마 끼워 빨리 누우라고
그 목소리, 일단 나비사탕 맛이라
꼿꼿이 굳은 몸 대책 없이 눕힐 수밖에
거친 심장소리 입 열자말자
날 세운 그 물건
쇳소리 헐떡이며 전신 쑤신다
비명마저 지를 수 없어
사지 촉수 비비꼬며 꿈틀꿈틀
소심스런 물줄기, 열기 식혀 보려하지만
어느새 그와 난 한 몸 되어 힘겨루기다
드디어 피범벅 비명 맘껏 지르는
절정의 순간 !
흑장미 빛 솜이 그리움 녹여내린다
사랑, 사랑 내 사랑니여, 안녕!
뜨개질
-가설무대 16
봄바람이 자두 꽃 이파리 날리 듯
시나브로 시간 씹으면서
코 빠뜨리지 않으려 한 생 촘, 촘 엮어간다
늪 속 오동나무 가지 끝 흔들던
인생살이 무슨 색, 어느 꽃 짜 넣어야
무지개 색 무늬 남길 수 있을까
다 늦은 밤, 시간이명에 쫒기며
이 가설무대 끝날 때까지
울림이 큰 시, 조끼 한 벌 완성할 수 있을지
벽
-가설무대 14
벽들이 일어서면, 집이 된다
그 아늑함 속 가족
비온 뒤 죽순 같은 저만의 벽 키우고
난 도배장이 되어 어둔 벽마다
해바라기 벽지 바르거나
담장이 덩굴로 아무 콧등이나 붙잡고
허둥대기도 한다
끝내 물리칠 수 없는 벽은, 자신
저 모르게 자라고 있던 거만의 얕은
꾀 내세워 벽 뒤에 벽 감춘다
숨 막히는 순간 나팔꽃 피우고
줄장미 까지 꽃피워 걸치기도 한다
또 벽이 서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다며
아이들 섬과 섬
부부간 벽과 벽 사이 똑, 똑 두드려
살뜰히 안부 살피는 손끝 배려가
가시철조망 녹인다는 말씀
좌우 여야 이념의 콘크리트 틈에서
끝없이 자란 막무가내 벽, 소란이
길 묻는다
재울음 기다리며
-가설무대12
코, 시국 파도 넘 거세었었지
심해 청소해야 숨 쉬기 편하다며
조상신, 너울성 파도 일으켜 세웠었지
태풍 견뎌내야만 빛 볼 자격 있다며
내 부르튼 입술 징 치면서
죽은 신 기도로 시 만지면서
호작질 버티느라
종아리 힘줄 툭툭 불거지곤 했었지
길고도 짧은 한 생
내 기둥뿌리 무대 거두려는
시간 멈춰주길 제발 기도했었지
칠순이 여직 내 풋울음 잡지 못해
두서없이 처용무 춤추면서
놋쇠 소리 징, 징 꺼이꺼이 울면서
화투장 돌리기도 했었지
고스톱이 피부터 먹어야 한다지만
인생경전에선 패배의 길
쓴 눈물 징한 울음 길이었지
뒷모습
ㅡ가설무대 11
천사 날개 속 깃털 같은
하얀 결정체
손길 닿기 전 사르르 녹아내린다
하늘이 내려주는
구원 천사의 손길 닿는 듯 서로
가슴 꽃으로 피어난다
날개 돋아난다
함께 날아오른다
그것도 한 순간
희다는 것은
온 몸 숨구멍마다
검은 눈빛 숨어있어
저 하얀 웃음이 금방 폭설로
삶, 죽음 갈림길 되기도 한다
깊은 산 속 소나무 몇 그루
설해목으로 울고 있는 줄 모르고
눈먼 사랑이 흰 눈빛 환호하고 있다
강아지 꼬리 캉, 캉 짖으며
팽이
ㅡ가설무대 9
누가 감히 날 후려치고 있는가
시시각각 변덕이 해코지하다가
사라지는 계절바람인가
게거품 물고 한풀이하는 파도인가
내 심연에 숨어있는
뿌리의 밑뿌리까지 흔들며 흐느끼게 한다
형체를 숨긴 회초리
숨 쉴 틈 주지 않고 때리면서 돌린다
그 무엇보다 가슴 마구 쑤시며 찌르는
송곳표창
혓바닥이 요괴 문신한 말, 말
눈초리 입술채찍질이 둔한 눈빛
뇌리 깨우는 삶의 경전이 되니
이 뽀드득 갈며, 웃으며 다시 일어서라는
말씀 지지대 되곤 했으니
어서 때려라! 등짝 피멍이 울면
관음보살 손길 살며시 얹어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