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커튼콜/정숙 지음/만인사/128쪽/1만원
정숙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 세상 살아보니 인생이란 결국 변방의, 그것도 가설무대에서 벌인 한 마당 놀음이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이번 시집은, 시인의 진정성과 내면 고백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품집이다.
시인은 "땅속 뿌리가 어둠을 먹고 키운 고독이 죽고 싶도록 휘휘해지면, 그때 지독한 슬픔이 웃는다"고 고백한다. 항암과 요양병원 시절, 생의 덧없음과 인간 존재의 허무를 온몸으로 겪으며 써내려간 시들은 고통과 웃음, 절망과 회복이 공존하는 생의 언어들이다. "하, 하, 하 미친 듯 웃으며 커튼콜로 시의 밥상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말은, 시인의 체험에서 길어 올린 생의 통찰이자 유머다.
정숙 시인은 "시안(詩眼)이 열리면 바람의 짠맛과 빗물의 체온까지 재어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감각과 감정, 사유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병상의 절망조차 시의 재료로 승화시키며 "미, 투(美, 痛)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고백은, 시인의 숙명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대표작 '능소화 폭포' '시, 발' 등은 삶의 고통과 사랑, 세태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아우른다. 시인은 "언어유희나 서구적 묘사보다 징의 재울음 같은 한국적 정서의 한을 녹여내야 한다"고 말하며,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은 시인 본인이 직접 쓴 '신생의 시간'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고백 형식으로 풀어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인은 현재 범어커뮤니티센터 야시골문학회와 용학도서관에서 시·스토리텔링 강의를 맡고 있으며,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고문,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이자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