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경북 자인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한다. 1991년 《우리 문학》, 1993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다. 시집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바람다비제』, 『유배시편』,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연인, 있어요』, 시선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를 출간하다. 만해 님 시인상,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다.
1. 인연
몇 년 전 경산 문인협회에 참가해 활동하면서 만난 것 같다. 처음에는 그렇게 유명한 시인 인줄 모르고 그냥 회원의 한 분으로 알았는데, 소설가 김산 선생님이 자인 출신이라며 소개하여 관심 두고 찾아보니 꽤 유명한 시인임을 알았다. 직장 생활할 때는 살기에 바빠 진작 문학 쪽에 관심과 활동이 없었기에 잘 알지 못한 것이 당연하였다. 우리 세대보다 15년 선배로 67년도에 자인 시골에서 여자로 경북대를 다녔다는 자체가 뭐 대단한 집안이거나 부농이 아니면 어려운 시기였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인연으로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우연히 김산 선생님과 몇 차례 답사 겸 나들이하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당시 1남 3녀를 대학에 보낸 자인 사과밭 부농출신 딸로 교사 생활 잠깐 하시다, 시집가서 아기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로 오랫동안 글을 놓았다가 우연한 기회로 그동안 잠재된 열정과 끼가 발출되어 다시 시를 쓰면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개략적인 것만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은 하늘을 보고 자라고 숨 쉰 경산이란 울타리 속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시대의 흔적과 상황들이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생각과 삶의 가치와 방향은 다르지만, 또한 저변에 흐르는 고향과 시인들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의 공감대로 있기에 좀 더 깊이 침착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선생님이 늘 주장했던 이를 갈아라, 사유의 삽질을 많이 해라. 하듯 한 사람의 생각이나 시를 이해하기 위해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 詩 몇 편을 통해 선생님의 詩風과 깊이를 짐작하고 있지만, 진정하게 온전히 시집 한 권을 읽은 것은 처음이기에 이 시집을 통해 선생님의 시 세계를 엿보기에는 부족하지만, 一葉知秋 (일엽지추)와 같이 한 권을 통해서도 전체를 대충 할 수 있다고 본다. 요번 새로 나온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을 선물 받아 읽어보면서 그간 살아온 과정과 시를 쓰게 된 동기와 개인 가정사 및 詩의 세계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시집 뒤편 <시인의 산문>에 어느 정도 소개되어 있지만 개인 블로그 (https://artko.kr/~jungsook)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특히 내 고향 용성과 인근인 자인인데 시의 곳곳의 고향에 대한 추억과 사투리와 그 시대의 생활상에 대하여 공감해 주위 詩에 관한 관심이 없는 고향 분들에게도 소개해보고자 정리해본다.
Ⅱ. 詩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생각들
누구나 다 평범하고 온전한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진한 사랑도 한번 해보고 싶고,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윤동주의 <서시>같이 심연에서 우러나는 깊이 있는 시를 한번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호락호락한 일인가? 사랑도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詩도 개인의 사고만이 아닌 시대와 조건이 버무려져야 세기의 사랑 이야기나 독자를 울리는 감동의 시가 나오는 법이다.
시 한 편을 쓰기를 위해 곰삭은 생각들을 기록하고 축적하고 교정하는 과정인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쳐 탄생한 詩를 어찌 단번에 읽고 그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오! 시의 수준이 높을수록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더 어렵고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데, 요즘은 워낙 빠르고 짧은 형식이 유행하는 시대라 긴 호흡을 기다려주지 않기에 더욱 일반독자한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히려 높은 수준을 더 넘어 우리가 누구나 쉽게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시는 대교약졸(大巧若拙). 대변약눌(大辯若訥)과 같이 뛰어난 기술이나 말솜씨는 오히려 서투르게 보인다는 의미로 정말 높은 수준의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기에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백, 두보, 김소월, 윤동주 등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인이라고 인정되는 사람들의 시가 제일 어렵다. 초보자나 어설프게 시인이라고 똥폼 내는 사람들의 수준은 또 생각의 깊이와 압축된 정제성이 없기에 자기만의 시 수준에 그쳐 읽어도 별 감흥이나 느낌이 없다. 오히려 대가들은 大巧若拙가 같이 쉬우면서 감동과 교훈을 주기에 널리 회자(膾炙)되는 반면, 어중간한 사인들의
시가 제일 어렵다
Ⅲ. <가설극장 커튼콜> 시집을 읽고
살아온 길과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에 생각이 같고 깊이와 넓이가 비슷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 세상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에 대한 경험과 느낌들에 대한 또한 공통분모가 있고 시대의 아픔과 고향의 정서가 비슷하기에 가지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기에 남들보다 좀 더 가까이 확인되고 공감되는 요인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처음에는 훅 훑어보는 수준에서 하는 읽어보고 다시 心讀해서 한 번 읽어보며 느끼는 생각들을 대충 적어보았다.
선생님의 시도 전혀 녹녹하지 않은 시의 수준이기에 읽히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를 갈고 사유의 삽질을 많이 거친 시들이기에 깊이와 시간의 농축과 생각의 압축들이 쌓여 퍼 올린 시이기에 내가 감히 쉽게 느낌과 평을 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읽고 아무런 느낌과 감동마저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난감하고 도리가 아니기에 나의 짧은 생각과 느낌의 수준에서 감상문을 적어본다.
가설극장 커튼콜 시집을 읽고 난 전반적인 느낌은, 어릴 적 추억과 癌과 사투하면서 처절했던 아픔과 삶의 현실에서 한 인간으로서 고통과 느낌을 압축과 생략을 거쳐 표현된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고통과 아픔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표현될 수 없는 사고의 깊이와 감정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삶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고 또한 인간의 나약함과 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도 어렴풋이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순탄하게 지내온 사람은 극히 드물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세월 속에 순탄하게 산다는 자체가 기적에 가깝기에 오랜 세월 동안 경제에도 사이클이 있듯 인생에서도 라이프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겸손해지고 배우고 낮아지는 과정을 겪기에 사랑도 시도 인생도 다양한 깊이와 넓이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생님도 어쩌면 젊은 시절은 시대의 아픔은 겪었지만, 개인사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사랑과 품속에 꿈을 키우고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자양분이 되어 시인이 되고 지금도 그 순수를 찾아 끊임없이 배우고 갈구하지 않나 싶다. 시집가고 자식 키우며 살아온 시집살이의 삶도 어쩌면 개인사적으로 보면 온전히 희생으로 잃어버린 공백기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 또한 경험과 살아온 세월의 양념 래시피로 첨가되어 시와 인생에서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주었고 본다.
선생님도 밝혔듯 어느 날 문득 책 속에 먼 곳이 있음을 느끼고 시작한 <新처용가>의 시가 세상 밖으로 탈출하면서 어릴 적 그 꿈을 실현해나가는 계기가 되면서 <비로소 엄마는 50세 바다를 보았다>는 연극 제목처럼 새롭게 태어났다는 본다. 중도에 암과의 투병을 거치면서 삶과 현실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을 극복하면서 시에 대한 깊이가 더 인간 내면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비록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 권의 시집과 블로그를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해보면서 어렴풋하게 걸어온 일생과 생각과 그 과정에서 거쳐온 지난한 삶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가족들도 모를 수 있는 생각의 깊이와 詩語들을 창출해내기 위한 축적된 시간과 생각의 파편들이 시를 통해 깊이 읽고 행간의 의미들을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요즘 세대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기에 굳이 애써 가르쳐 주려고 할 열정과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은 시를 좋아하는 후배들이나 동호인들에게 강의나 낭송, 시극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동안 응축된 응어리와 恨과 정서를 해소하는 보람과 자긍심으로 살아가고 계시어 부럽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나고 보면 한 곡의 노랫말요, 한 편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 개개인의 삶이 소재가 되어 노래가 되고 연극이 되고 있다. 비록 수정될 수 없는 인생을 자연이란 공연장에 그 시대의 연극배우들과 100% 공연하며 살아가기에 자기 인생은 누구에게나 다 주인공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이란 한 편의 에피소드요, 소풍 왔다 가는 길이기에 모두에게 정형화된 고정된 극장이 아닌 임시 가설극장의 삶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가설극장인 인생에서 공연을 각자 열심히 살아온 삶에서 다시 한번 끝내고 An-Call 송이 요청되는 커튼콜의 삶을 요청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공연이 훌륭했기에 관객이 다시 요청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삶도 어쩌면 열심히 훌륭하게 살아온 가설극장이었기에 다시 커튼콜의 진한 Love Call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열정으로 그간 공백기의 삶을 채우려는 듯 왕성한 활동과 배움은 후배들에게 진정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Ⅳ. 고향 자인과 아버님의 추억
선생님은 어릴 적 시절은 6.25 전쟁이 끝난 모두가 힘들과 아픈 시대에도 불구하고 사과 농사를 지었던 아버님은 당시 사냥을 즐길 만큼 낭만과 멋있는 분으로 선생님의 어릴 적 추억의 보고(寶庫)를 만들어 주신 분이자 첫사랑의 남자로 등장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셨다. 아마도 아버님이 그 당신 신여성으로 딸에게 흠모의 대상이었던 자인 출신 장덕조와 같은 소설가가 되라고 하신 이면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뜻과 미래를 내다보는 깨어있는 思考를 지내신 분이지 않나 싶다.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지지 않도록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사냥총을 멘 아버지 따라나선 아침 산책길, 들꽃 꽃잎에 앉은 이슬을 보며 생각이 참 많았던 소녀, 과수원 주위에 피난민이 모여들었던 그렇게 어려운 시기였지만 봄이면 화전놀이가 잦았다. 농사철 풍물놀이에 우리 가락이 귀에 익었고 시골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풍속에서 파생되는 소리와 추억들이 끝내 선생님의 정서에 남아 <신처용가>로 승화되고 있지 않나 싶다.
어머님에 대한 추억보다는 아버지의 딸 사랑이 곳곳에 배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님의 인생에 있어 아버님은 부모로서 보호막은 물론 추억과 정서 형성에 있어 절대적이었으며 결국 아버지를 통해 남자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남편의 뒷바라지와 시집살이의 대해서는 압축적으로 개인의 아픔과 추억으로만 담아 놓고 그 후 詩를 통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활발한 활동과 왕성한 취미활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삶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 늪의 영혼 속엔 왜 징 소리가 들려 있었을까? 징한 그 소리 속엔 얼마나 깊은, 먼 곳이 있었던지 나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6. 25동란 등 그 와중에서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주 참봉의 요롱 소리와 징 소리 듣고 자랐기 때문인가? 사라호 태풍 등 잦은 홍수로 잠자다가 밤중에 머슴 등에 업혀 피란 가던 일, 귀리들이 바람의 귀에 속삭이느라 서걱거리는 저녁 무렵 초록 풀 뜯어 먹는 소와 건너편 노을빛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곳이 조금 변형은 되었지만,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Ⅴ. 문학적 위치와 시풍
현대사에서 고향 경산의 중심으로 여성 문단에서 위치를 보면 개척기에 장덕조는 소설가·언론인, ‘경북 출신 여기자 1호’이자 6·25 종군 여기자로 문화의 고장 자인’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면, 박남옥은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미망인)이자 전직 대구매일신문 기자 출신으로 시나리오·기사·수필적 글쓰기를 통해 문예를 확장한 경산 출신 여성 창작자로 후대 여성 창작자들에게 강한 상징성을 준 개척자들이었다.
정숙 선생님은 시집 『신처용가』, 『위기의 꽃』, 『바람다비제』 등. 처용·단오굿·계정 숲 등 자인 지역의 신화·민속을 현대 시로 풀어낸 연작시로 유명한 시인으로 지역 시단 형성기로 자인 신화와 향토를 노래한 지역 여성 시인으로 자인 지역의 신화·민속·지형을 시로 재구성해, 경산을 배경으로 한 여성 서정시 세계를 구축한 선생님은 고향 자인의 신화·풍광을 시로 정리한 ‘지역 시단의 얼굴’의 위치이다.
시골이라면 시골인 자인 오목천 갱빈(江濱) 과수원집 딸로 태어나 시대적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추억과 경험을 엮어 신처용의 해학으로 기존 여성들의 생각과 활동을 좀 더 적극적 자주적 활동으로 변화를 유도한 선생님의 功은 문단에서 크게 이바지한 점이라고 보인다. 대구 여성 문단에서 큰 인물이시기도 하지만 더 크게 경산 여성 文壇史에서 장덕조의 개척기를 거쳐 지역 문단의 최고의 인물로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고 본다.
이후 현대 경산 출신 여성 작가들은 대구·수도권 문학 場과 교육·문화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화은· 손거울· 박일아· 이운경 등이 있다. 이들은 시·수필·비평·칼럼으로 장르를 다양하게 넓히며 다변화를 꾀하며 지역 문단을 이어가고 있다.
선생님이 시인으로 살게 한 버팀목을 한 마디 표현한 것은 시를 기둥서방 삼아왔다고 한 점이다. 여러 가지 고통과 풍파와 세월 속에 선생님을 지탱하게 해준 詩라는 요물을 꼭 쥐고 버티어 왔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자기 시를 징의 재울음 같은 한국적인 정서의 恨이 녹아들어 진한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풍자와 해학으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오늘도 <선처용과>를 낭송하고 시극으로 올려 징의 울림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시대는 아프고 힘든 시기였지만 고향은 선생님에게 있어 어릴 적 꿈과 낭만을 키워준 큰 공간이었고, 그때 꿈 많던 시절에 겪었던 짝사랑의 아픈 추억과 그 당시의 풍경과 환경들이 가슴속 정서에 남아 아직도 맴돌고 있는 굿과 징과 울음들이 처용의 굿판으로 이어져 깊게 울리고 있음이 엿보인다. 그만큼 어릴 적 추억과 기억들이 한 사람의 정서와 사고에 깊이 침착되어 있음을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짙어짐을 알 수 있다.
늘 먼 곳을 동경하고 꿈꾸어 오다, 책 속에 먼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어릴 때 늘 사상계나 책을 뒤적이며 지내는 내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 ‘딸아! 넌 소설가가 되어라.’ 그 말씀이 부담되어 대학에서 김춘수 교수님과 학보사에서의 원고청탁 등 그런 기회를 일부러 피해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마흔이 넘어 늦게 어릴 때 아버님의 그 한마디가 등불이 되고 인생의 길잡이로 먼 곳이 되어 사십 대 중반에 늦깎이 시인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한 최고의 지성이라고 한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아무리 뛰어나고 존경받더라도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며 首丘初心과 같이 어릴 적 추억과 어머님 품으로 돌아가고픈 것을 피력한바, 모든 동물이 가지는 기본본능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도 암과 투병을 거치면서 어릴 적 굿판에서 쳐대는 무엇인가로 귀소본능으로 자극하는 징 소리를 찾아 아득히 떠나는 여정 같은 분위기를 詩에 느껴진다.
어느 신문기자는 선생님의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녹록지 않은 삶을 긍정과 해학, 풍자라는 무기로 잘 견뎌온 깨달음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늘 함박꽃 같은 웃음을 던지시며 통상 시인들이 가질 법한 우울함이나 시집살이에 대한 원망, 지나온 인생의 후회 등의 그늘은 찾을 수 없다.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불쏘시개 삼아 열정을 불태웠고 시와 시극,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의 불씨와 온기를 가진 숯을 만들었다. 그리고 선물 같은 시집으로 다시 활활 지펴지고 있다고 했다.
Ⅵ. 향후 활동 방향과 바람
깨달음이나 감동을 주려면 사유가 깊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이를 갈아라, 삽질을 더 많이 하라’ 이다. 그래야 깊이가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삼천포로 빠져라.’이다. 비약을 말하는 것이다. 시가 처음부터 결과가 같으면 재미없다. 첫 구절 읽고 답을 알아버리면 더 읽을 필요도 없으니 마지막 결론은 완전히 다른 핵심이 있어야 한다. 시인도 결국 Storyteller 같아서 구성에 반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신문사 인터뷰에서 소개한 글로 선생님의 여생을 그려본다. 젊은 시절 고된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뜨개질했고 시를 썼으며 패브릭 아트도 했다. 그리고 승무를 변형한 처용무 그림도 그린다. 한때는 피겨 스케이팅도 배웠고, 꽃을 찾아 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시 낭송, 시극도 한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시니어 모델’이 되고 싶다며 준비하고 있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선생님은 신선한 연상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누구와 닮지 않은 자기만의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늘 직관력 훈련과 이미지, 그리고 사유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향토색 짙은 사투리로 여성과 恨의 정서를 잘 녹여 지역정서를 담아 전국으로 뻗쳐 k-culture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되길 희망해 본다. 언제나 파이팅입니다.
2025.12.25. 크리스마스 새벽에
경산 후배 어설픈 글쟁이 이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