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란 살얼음판에서 말씀으로 눈총으로
두드려 맞고 잘도 뱅글뱅글 돌아가더니
화장 짙은 시앗 아닌 횡설수설, 술각시 얻어
딴살림 회초리, 홧병에 맥 놓고 누워 있으라며
자꾸 쓰러뜨린 뒤 다시 팽이채 휘두른다
그래도 퍼뜩 일어나 눈알 빠지도록 돌면서
지친 고목 떠받들고 봄여름 지난 줄 모른 채
겨우 단풍잎 갈아입으려는데 잎은 떨어지고
찬바람이 뼛골 들쑤셔도 그 걸음 멈추지 않으려
뱅글뱅글 새빠지게 늙은 몸 돌리고 또 돌린다
팽이
-신 내방가사 19
시집이란 살얼음판에서 말씀으로 눈총으로
두드려 맞고 잘도 뱅글뱅글 돌아가더니
화장 짙은 시앗 아닌 횡설수설, 술각시 얻어
딴살림 회초리, 홧병에 맥 놓고 누워 있으라며
자꾸 쓰러뜨린 뒤 다시 팽이채 휘두른다
그래도 퍼뜩 일어나 눈알 빠지도록 돌면서
지친 고목 떠받들고 봄여름 지난 줄 모른 채
겨우 단풍잎 갈아입으려는데 잎은 떨어지고
찬바람이 뼛골 들쑤셔도 그 걸음 멈추지 않으려
뱅글뱅글 새빠지게 늙은 몸 돌리고 또 돌린다
안개 모과주
-신 내방가사 18
긴 머리의 봄날, 연분홍 꽃 가슴 열어
순정을 바치던 복사꽃 한 다발의 그 사내
가을비가 펼친 백운교 아래 안개구름 타고
샛노란 한숨 내쉬더니
이제 모과 썩어가는 향기로 다가오네
그 향으로 술이나 담아 다 늦은 겨울 밤
맘 놓고 취해보련다 봄밤이여!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체면도 시선도
다 버리고 사랑을, 그리움을 한껏 마셔서
처용아내 아닌 처용의 여자 되리니
처용아내에게
-신 내방가사 17
가랭이가 니개 아이라꼬?
역신이고 나발이고 간에
외간 사나아캉 누버 요상 떤건 사실 아잉가
인자 니 사나 간수할 자격 없구마
집구석에 늦게 들어간다고
잔소리 씨부렁거리지 마고
큰 어마시 짓 꿈도 꾸지 마세이
하고마 시상 큰 어마시 믿을 일 하나도 없으이
서방님예
인자 맘놓고 내캉 춤이나 추시데이
기게 끄지마고 맛바로
휘모리로 들어가입시데이
너무 서방이라 그렁가
처용의 기집, 와 이레 존노!
맞지예? 어얼쑤!
처용에게
ㅡ신내방가사16
장화부인은 보름 달빛으로
비단 천을 짜고 있고
니캉 내캉은 그 무덤가를 손잡고 돌미
서로의 전율을 담은 눈빛으로 주거니 받거니
사랑의 바둑판을 두미
보이소예
요새 니 서방, 내 서방이
어디 있능교?
눈 딱고 잘 보이소
인내들 손톱 칼로 손톱 갈고 비룰 때
조심해야 된다고
처용마눌이 고카디
인자 그 여자, 지가 더 신바람이 났어예
장구쟁이도 찾아가
지화자 조타! 궁디 흔들어 싸니
얼씨구!
몰랐지예?
그 카이까네예, 그러시
소리 소문 없어 지용시러분
인내의 속을 잘 디비봐야 된다 카이예
해갈
ㅡ신 내방가사 15
간밤 폭우 속 내달리던 기차
오랜 가뭄이 해결 되었던지
드르릉 코 골며
이제 바다 속으로 기찻길을 놓고 있나
온몸 뒤집어진 바퀴벌레처럼
사지 흔들어대며 웅얼웅얼
끝내 기적소리 내며
생 몸부림이다
마지막 사랑
ㅡ신 내방가사 14
또 하루가 밝아오네요
사랑해! 라고 어서 말하라 재촉하는
선물 같은 그대의 먼 눈빛
벌써 창가에 배달되어 있네요
이제라도 그 눈빛 따라
그의 발자국 찾아 사랑해도 될까요
크고 무거웠던 깃털 내려놓은
노을의 사랑
해 저문 우리들의 미친 불꽂
바람의 다정한 풍금소리에 귀 기울여도 될까요
달콤한 봄비에 젖어 콧노래 같이 부르며
스텝을 맞춰 봐도 될까요
서툴러서 서로의 발등 좀 밟은들 어쩌겠어요
더 처절하게 웃으며 끓어오르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하루가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하루, 하루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니
그냥 그 연못에 깊이 빠져보고 싶어요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오겠지요
비밀의 방
-신 내방가사6
내 바다 속에서 시계는 소용돌이치며 거꾸로 돌아가고
노랑나비. 너는 내 가슴속에서 쉼 없이 노 젓고 있고
여름바람은 파도 거세게 일으키며
물속에 잠긴 우리들의 불꽃 흔들어댄다
태풍
--신 내방가사 7
당신과 나 사이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이 바람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고
숨도 못 쉴 정도로 벅차기만 하니
저 뜨거운 회오리바람이
언제 또 서로 물고 뜯게 할 텐데
그 향기만 추억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는가요
바람아,
내 님이시여!
누가 노 젓고 있는가
-신 내방가사8
내 작은 가슴에도 바다가 있네
웃고 있어도
거친 풍랑 소용돌이 치고
고통에 길들여진 한 생애
불구덩이 바다에서
용이 되려다만 물고기들 허우적거리며
서로 할퀴다가, 끝내 애간장 활활 태우다 남은
몇 알의 알갱이들
부처님 사리처럼 오색 영롱하지도 않은데
짜디짠 붉은 소금 내려앉은
이 난바다에서
시름 잊은 듯 노 젓고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
철썩철썩 노 젓는 소리가
그 누구의 절절한
긴 연서 같아
귀 기울여 읽어보고 싶어
겨울바람의 푸른 안색을 엿보고 있네
내게도 비밀의 방이 있었어
-신 방가사10
너른 풀밭과 꽃들이 쉼 없이 피어났지
깜빡 잊고 시간이라는 열쇠를 그곳에 두고
문 앞에서만 서성거렸지
건초더미로 변해버렸는지
서걱거리는 목 쉰 바람소리 뿐
그러나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비밀의 방
말라버린 건초더미에서 태어난 나비들이
날갯짓하는 소리
말라버린 줄 알았던 비밀의 방
내 가슴 속 출렁거리는 파도소리
먼 길을 돌아온 수 만 마리의 나비 떼가 몰고 온
짙푸른 바다의 꿈
지금 비밀의 방에 놓고 온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지
그대는 내 가슴속에서 노를 젓고 있네
노랑나비에게
-신 내방가사11
너는
내 건초더미 속 비밀의 방 엿본 것인가
더위 식힐 곳 찾는다며
가만가만 날갯짓으로 기웃거리더니
내 좁은 가슴속에도
짙푸른 바다가 출렁거리고 있다는 걸
푸른 파도를 밀어 제 발등 살짝 적셔주고 가는
하얀 포말이 있다는 걸
안 것이니?
남태평양 나비들의 그 작은 날갯짓들이 모여
태풍을 일으킨다더니
그 바람을 몰고 와
서로의 메마른 가슴 바다 휘저으며 노 젓느라
나와 네 바다 속 시계바늘이
새삼 흔들리며 거꾸로 돌아가고 있네
그네
-신 내방가사12
놀이터에 앉아 바람을 잡아 치마 속에 넣는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여름 바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힘껏 하늘을 두 발 버둥거리며 차올려야
바람이 내 등을 밀어준다
온 몸 감싸며
그래, 그렇게 용기를 내는 거야
너무 올바르게 살려고 직진만 하며
구름에게 조차 널 다 보여주려 하지 마
이젠 비밀의 조직에 몸 담아봐
앙큼 떠는 것도 여자의 무기니까
첫 차를 기다리는 너에게
-신 내방가사13
첫 차가 있으면 막 차도 있는 법
그런 것 버리고 그냥 무작정 살자
무한대를 믿고 살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겠지
서로의 마음 의지하며 앞으로 가는 거야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 묻고 확인하고
사랑아.
그냥 살아가자
오늘도 저 봉선화 꽃잎 속에서
네 사랑이 날 지키고 있다는 걸
난 믿고 있단다, 아니 믿고 싶을 뿐
이제 다 버리고 가식이라도 좋으니
웃고 살자, 아주 행복한 것처럼
내 그리움이여 !
범어산 가는 길
-신 내방가사 1
머라이어 케리가 겨울 아침을 울린다
Without you
백서른 평 적산가옥 어둔 부엌의 싸늘한 기운 불러온다
바람과 파도가 서로 품다가 등 돌리기 하던 곳
그 소용돌이가
행복했던 건 순전히 저런 노래 탓이었다
일본식 컴컴한 긴 복도
식사시간이 각자 달랐던 열 한 명의
시집 식구들
하루 열다섯 장에서 스무 장의 연탄
그 불 화덕
당기고 밀어 넣던 그 시절이 흥얼거리며
출렁출렁 파문이 진다
내 청춘, 퍼진 국수에 밥 말아먹느라 걸린
삼십년이 물수제비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