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6    업데이트: 24-05-03 14:25

신작소개

23, 시에 여름호 발표, 비상구[가설무대 33] 사리탑
관리자 | 조회 182
비상구
       ㅡ가설무대33
 
벽, 벽이다
장미 벽지 대신 온통 문짝을 붙인다
길 가에 버려진 것들 보이는 대로 주워서
각자 제 멋대로 크고 작은 문짝들
바람세월에 다 찢기어
살만 앙상한 문이 서로 몸 붙이고
관세음보살 외고 있으면
막힌 출구가 열리는 지
문살 틈새가 길을 찾아보고 있다
밤마다 소금물로 몸 씻은 해가
부처님으로 떠오르고
모란이 제 기품 무너뜨리지 않고
관음보살로 피어나면
파도로 매몰차게 망가뜨리는
생, 이란 좁아터진 무대가
바로 극락이 된다고
숨 한번 후련하게 내쉴 수 있다면
풋서리 길도, 벼룻길도 껴안으리
그 기도 탓인가
우리 집 벽이 내 손끝만 살짝 스쳐도
문을, 새하얀 문 활짝 열어 준다!
 
 
 
 
사리탑
 
범어 로터리 신호등이 세는 숫자들
흘끔거리며 궁전으로 향한다
봄 햇살 부서지는 정오, 길목에서
귀밑머리 희끗한 부부
어깨와 허리, 무릎의 추임새
온몸 춤사위로 주고받는다
집안에 뭔 경사가 있는 걸까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어깨가 나도 모르게 들썩인다
그들의 소리 없는 대화에 흘러내리는
빛은 투명한 벽이 되어
탑이 된다
부부 싸움도 해변을 밀었다 당기다가
하얀 포말처럼 춤을 출 것인가
제 삶을 거침없이 찢으며 그려나가는
恨, 비눗방울 되어 날아오른다
말 때문에 칼날을 가는 내 목을 휘감고
소리는 소리끼리 부딪혀 스스로
죽음이다, 누가 장애인인가
 
 
시인 [정 숙, ] (jungsook48@hanmail.net)
1948년생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2010, 1월 만해 ‘님’ 시인상 수상 시집<바람다비제>
2015년 12월 23일 대구시인 협회상 수상
<신처용가><위기의 꽃><불의 눈빛><영상시집><바람다비제><유배시편>제7시집<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한국대표서정시100인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연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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