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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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 시인의 작품 모음 1
관리자 | 조회 425
4, 직관력과 사유의 깊이를 위해 삽질을
 
뿌리에도 땀방울이 있는가
-정 숙
 
 
이제사 눈이 뜨이는지
아침 산책길, 벚나무에 옹기종기 앉아
하늘 우러러 기도하는
하얀 봄들이
꽃이 아니라 새삼 뿌리의 땀방울로 보인다
봄을 꽃피우기 위해
겨우내 어둔 땅 속에서 곡선으로 서로 엉켜
다독이다가, 뾰족한 돌멩이를 끌어안거나
직선으로 무작정 바위를 뚫으면서
온갖 몸부림치며 불을 지폈을 텐데
결코 나서서 생색내지 않는 걸 보면서
이 봄, 캄캄한 내 어둠을 뭉쳐 언젠가
자잘한 풀꽃이라도 피워
속눈썹 밑
불 밝혀보리라 발가락 끝에 힘을 줘본다
이제껏 뿌리 없는 꽃이라도 피우겠다고
마른 나무 가지에 매달려 허둥거리던
내가,
 
 
10
 
참사랑 [정 숙]
 
예수의 거웃 가리려고
 
바둥바둥
 
십자가를 진
 
남루의
 
작은 천 조각, 성의 聖衣!
 
그 거룩한 옷
 
5, 시는 스토리텔링이다
 
향촌연화

옛 시인들의 막걸리 애환이
소복이 담긴 좁은 골목길
녹향에서 마리오란자의 축배로
서로의 두 눈빛에 불기둥을 세웠다
사랑채에선 가위가 
으르렁, 봄밤을 싹둑 잘라버리더니
내 풋사랑은 서럽게 가버리더라
그리움의 흔적엔 유통기한도 없이
향촌동, 내 젊음이 머물고 있는
오월의 아리랑 고개
 
11
 
지퍼를 열다

연다는 것은
갇혀있던 것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세상 사는 일이 
문이나 지퍼, 아니면 단추를  
제 때에 잘 열고 닫는 일 아니겠는가

요즘 바지 지퍼관리를 못해 하루아침에 
추락하거나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미투의 유명인들
그것은 몸의 일부분 뿐 아니라 
제 정신의 문을 조절할 줄 모르는 비극인 것을

연다는 것은 벽을 없앤다는 것인데
재울음 우는 징소리 같은
내 사유의 지퍼는 언제 열릴 것인가
내 성질의 지퍼관리를  되돌아보는 겨울밤
코비드19를 가둘 지퍼는 또 어디 없겠는가
 
 
 
 
 
12
 
 
 
수성 못 속엔 탑이 있다
-정 숙
 
고운 빛줄기들이
여름 밤하늘의 구름을 비질하는가
분수들이 선율 따라 팔을 휘저어댄다
저 물 깊이엔 수많은 탑이 세워져 있을 텐데
탑 한 귀퉁이 지키다가 지친
풍경의 젖은 소리, 소리
 
옛날 보릿고개로 허기지던 시절
물에 비친 하늘만보고 무작정
뛰어 들어간 수많은 영혼
그들의 한이 탑을 쌓아올렸을까
탑을 쌓은 한숨들이 풍경을 울리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대부분
누군가의 아픔과 한을 밟고 있다는
고지식해서 슬픈 하소연이
온 몸 적시는 줄 모르고
제 올곧은 꿈, 확인하려는 이들 모여든다
오색 분수가 팔을 펼친다
 
 
 
13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a3c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0pixel, 세로 154pixel
 
6, 시는 삶이고 상상력이다
 
연 1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
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
이슬 염주
---蓮 2
진흙 갈퀴에 발목 잡혀
오직 하늘 우러르고 있을 뿐
 
밤새 손 벌려 무슨 간절한
발돋움하고 있으면
 
그 아침 이슬방울 모아
햇살이
백팔 염주를 꿰고 있다
 
눈물이슬
----蓮 3
 
헐벗겨진 몸, 썩은 냄새나는 뻘에 파묻혀
진종일 흐느끼며 오래 서 있어본 이가
하찮은 이슬방울 안고도
*낮결에 몸 내어줄 줄 안다
 
시린 발 견디며 별들이 어둠 속 길 내느라
밤새 빛, 굴리는 소리 들어본 이가
다른 이들의 눈물방울
햇살에 빛나도록 떠받들 줄도 안다
 
연꽃 1

이 여름 지기 전
 
그 사람의
 
우렁각시 되고 지고
 
연꽃 2

한 여름 대낮에
 
관능경을 펼치고 있는
 
저, 환희불들
 
연꽃들
-유배시편 45
 
 
1.
제 씨알들 다 여물어도 한 여름 뙤약볕 이고 밭고랑 매는 굽은 등허리, 흙발, 흙손 평생 죄수 내 어머니의 연못, 콩밭에서 연꽃은 핀다
 
2.
시난고난 그 허기와 씨받이 압박, 그리고 전쟁 중에도 은장도 칼날 서슬 하나로 배달의 씨앗 지키고 이어온 이 땅의 어머니들
 
3.
 
이 악물면서
당신 곪아터진 상처 돌아볼 겨를 없던
아흔 다섯 고사목 내 어머니
 
마지막 더 캄캄한 길도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이 땅의 아줌마이길 고집하는
 
저 산 같은 여자
 
16
 
7,시는 사랑이고 자기반성이다
 
도배장이
 
-정 숙
 
왜 벽만 보이는 걸까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설 때마다
활짝 웃는 장미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간혹 다 떼어내지 못한 가시발톱이
줄을 세우기도 하지만
무작정 그 위에 연꽃 도배지를 눌러 바른다
삶이 뿌리는 저 검은 그림자들
앞을 보나, 뒤돌아보나 벽이 길 막고 서 있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 애증과
꽃과 꽃가시 사이
해맑은 웃음과 눈물 사이
모든 틈새에 벽지를 발라 위장해야 한다며
없는 벽, 쌓기도 하는 난 허술하고도
시시한 시, 도배장이
 
 
-7시집 연인. 있어요[2020년 시산맥]
 
 
 
17
 
 
8,시는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인생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끌려가는
 
한 생애
 
-6시집 『청매화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a3c000d.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8pixel, 세로 300pixel 시와반시 녹색문화 [신나는 예술여행]에서 정 숙 시극단 중
김미선 시인 안자숙 낭송가
입맞춤 經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빼면서
붓은
듬뿍 머금은 먹물 한지에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제 몸 벼루에
갈아 새로운 생을 꿈꾸는 먹물, 걸신들린 듯 빨아
들인다 한과 꿈이 서로 스며들면서 한 몸으로 용
트림한다 숨결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 포용하며 천천히 가라앉힌
한지와 붓의 포옹
불꽃은 연기 한 점 없이 화르르 타오른다
온 세상 환해지면서
햇살 듬뿍 머금은 백련 한 송이 피어난다
 
간절한 꿈이 살아 통증과 만나야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걸
묵언으로 보여주시는가
수묵화 한 점, 새삼 거룩하게 읽는다
 
 
 
19
 
 
겉절이
-정 숙
 
대숲에서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는 듯 가버린 복사꽃 봄날
멈춰버린 듯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봄빛을 향해
 
곰팡이 꽃이 싫다며
푸욱 절여지지 않으려 앙탈부렸던
 
한 생애
허공에서 늘 헤엄만 치고 있었다
 
봄꽃이 흐드러지긴 했으나
끝내 봄은 오지 않았다
 
꿈은, 그래도
여전히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20
 
보톡스
 
엄마도 이제 맞아야 되지 않겠니?
아유, 엄마는 
주름이 없을 때 맞아야지
안돼요!
 
우야노 이미 때는 늦었다네
시든 해바라기가
무거운 얼굴 떨구는데
 
오마나!
내가 의사지?
그것도 성형외과!
시창작반에서 주사를 놓고 있지
시의 민낯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지?
 
감히 시 안에 보톡스 넣어주려는
난, 시건방 삼류 성형외과의
 
 
 
 
 
21
 
 
정 숙의 모자  속에는
 
 
십 삼인의 아해 중 두 아이와
북치는 소년
그리고 늙은 비애인 하나님이
한 자리에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다
그 뒷자리에서
풋울음 잡아야한다며
징을 치고 있던 한 여자
끝내 설해목이 되어
부러진 가슴 두드리다가 
꺼이꺼이 흐느끼고 있다
화투판에선
소년이 쓰리고!를 외치고
 
 
 
 
 
 
 
 
 
22
 
 
 
백지, 흰 비명을 받쳐 들다
 
잠 못 드는 밤
A포 용지 한 장에 동공 빛을 모으면
희디 흰 뼈와 뼈 틈서리가 차츰 열리며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져 고단한 한 비명의 생이
어둠 속 어둠을 밟고 다가온다
젖은 그 무게 때문에 세상 그림자 하늘이
저리도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저 흰 그림자의 뼈마디가
어둔 눈빛 위에서
 
백석을 나타샤와 눈 내리는 산골로 들어가게 하는가?
히스크맆이 폭풍의 언덕에서 밤 내내 케시를 부르고,
노라가 인형의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는
그 비명의 빛!
 
 
 
 
 
23
 
 
 
9, 시는 만남이고 기다림이다
 
화투치는 밤
-정 숙
 
검은 호랑이들이 출몰하는
까치들의 설 그믐밤
그가 떠난 뒤 맞이할 봄, 기다린다
사꾸라, 모란 꽃송이마다
길고 가느다란 눈매가 들어있다
곧기만 해서 근심 가득한 두 눈동자
바보, 그 쉬운 숨 쉴 힘도 없다니!
차마 세게 칠 수 없어 내려놓는다
살다보니 어느새 쓰리 고에 피박인가
이승과 저승, 경계선 무너뜨리기 위해
변명이 변명을 먹는 시간
분명 나비가 될 거라더니
그새 몸 버리고 훨훨 가벼워졌나
소파나 침대모서리에 앉아 있다가
또 어디에도 없다
살아있어서 참 휘휘한 한 판
봄은 어디쯤 와 있는가
 
소모품

마구 깎아 내버렸다
빨리 새것을 쓰고 싶어서

몽땅 연필이 되기 전
버린다고 꾸중을 심히 들었을 때

입술이 삐죽삐죽, 엄마는 구두쇠라며
투덜거렸는데

이제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깎여나가는 연필이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소모품이라는 걸 
곧 버려지듯 사라져야 한다는 걸
 
10, 역동적이며 신선한 이미지, 묘사를 위해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 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화경花經
 
무리 지어 손잡고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벗은 몸으로 겨우내 제 몸 채찍질하더니
무얼 깨달아 저리도 환히 세상을 밝히는지
 
꽃이라고 다 참꽃은 아니다
봄바람 남실남실
연분홍보라 화경花經을 읽는다
그 향기에 젖어
대견사 새 법당 풍경을 흔들어 깨운다
 
풍경 소리 새침하게 날아올라
하늘 운판 깨져라 두드린다
정작 깨지는 건 바람 소리, 그 깃털들,
떨어진 그 깃털들이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이다 
 이슬
 
눈뜨자마자
아침 햇살 붙잡고 날아오른다
 
밤 내내 별빛, 달빛으로
얼마나 깊은 사유의 옷을 짜 입었기에
 
하루살이 보다 더 빠르게
날개 없이 사라지는 법 깨달았는가
 
투명이라는
그 눈물방울이 바로 날개였던가?
 
갈대를 위하여
 
질기고도 약한 심줄 고르느라
지친 날개의 뼛조각들
얼마나 더 잘 말려야
비워버린 그 몸속 길이
바람이 된 영가의 흐느낌이
숨결 깊은 피리소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
 
[제 1회 만해 님 시인상 수상 작품]
 -4시집 『바람다비祭』(시학,2009)
 
 
안동 간고등어
정 숙
 
맛이 있다는 것은
간이 잘 들었다는 말이다
간이 잘 절여졌다는 것은
간잽이가
소금을 알맞게 잘 뿌렸다는 말이겠지만
 
고향을 떠나
그 곳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니
그 성깔, 생 속 다 죽이고
저절로 푸욱 절여져서
그 맛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심히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과
칼바람에다 비린내와 썩은 냄새풍기는
삶의 현장만한
간잽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3시집 [불의 눈빛]
 
 
27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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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은 날짜: 2008년 06월 11일 오후 9:21
2011년 세계 마라톤 경기 성공적 개최를 위한 시극공연 [봄날은 간다1]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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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0pixel, 세로 199pixel 만해마을 박물관 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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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a3c0003.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24pixel, 세로 569pixel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출판기념회 대구문학관에서 본리도서관 좋은 시 쓰기 시 낭송반 팀의 시극공연 [봄날은 간다1]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시극.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24pixel, 세로 76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0년 05월 20일 오후 9:48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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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96pixel, 세로 1168pixel
 
11, 시극하기 좋은 시, 서구적인 묘사와 한국적인 정서와 한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정 숙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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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29
살 처분
-유배시편 9
 
 1
 
정철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진옥에게 수작을 건다.
 
*"옥(玉)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기생 진옥은 지체 없이 수작을 받아 준다.
 
"철(鐵)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얼,시구! '굿거리장단'으로 놀고 자빠졌네
잡것이 섞이지 않은 시우쇠라고?
모조품 아닌 참옥이라고?
 
덩따다다다 꿍따다다다 덩따다다다 꿍따
지난겨울 살처분 당해 가죽도 뼈도 남기지 못한 소귀신들
내 어설픈 장구놀림에 붙어 울분을 풀어놓는다
 
*"아으 다롱디리 어긔야 어강됴리
달하 노피곰 도다샤 머리곰 비취오시라"
 
2
엉뚱한 곳에 분풀이가 아니라 수작이 모두 개수작, 내 살아생전 옴짝달싹 못하게 통 속에 가두어 항생제만 처먹이더니 뱃속에서 세상 구경 한번 못해본 내 새끼들만 마구 땅에 파묻어 놓고 금세 돌아앉아 고기살점 불태워 먹으며 '오. 바. 마!*' 소주잔 부딪히는 게
 
음메~ 너희 인간구제역이여!
사람 짐승들이여! 시방, 음메~ 울어라, 울어
내 뱃가죽 살가죽 찢어지도록
더덩! 더덩! 덩! 덩!
덩더꿍! 덩!
 
*정철正鐵- 시우쇠, 잡것이 섞이지 않은 쇠.
*섭철鐵)- 무쇠, 정련되기 전의 거친 쇠.
*진옥眞玉- 참옥, 기생 이름.
*반옥半玉- 사람이 만든 모조 옥
*정읍사 부분
*오빠 바라보지만 말고 마음대로 해
 12, 시는 감동이 없으면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봄비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
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
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
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
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
니, 니, 그 칼래?
 
 
홀아비좆; 농기구의 이음 막대
 
13, 짧은 시, 촌철 시를 위하여
 
좌와 우, 그 깊은 고랑에 노란 유채꽃 들판 펼쳐놓고 빨간 우편함 하나 심어야 하리

ㅡㅡ금을 지우려면(정 숙)
 
울타리 한순간에 무너져 귀신에 기대어야할 때 자존감 무너지다가, 미어지는 가슴에 파문지는 소리, 그 징소리
[울음, 정 숙]
 
31
가을허공
 
아들아, 저 파란 하늘엔
늘 먼 곳 찾아 헤매는
어미의 초조한 눈빛, 간곡한
기도가
가득 출렁이고 있단다
 
풋울음 잡는다며 사유의 불 망치로 담금질 당하느라 상처뿐인
마디에 낙관으로 새겨진, 시의 은은한 울림
-무늬 [정 숙]
시, 발
 
밥이 아니라, 이제 마스크가 생목숨 줄인데도 내 시의 발은 코로나 19에 떨었는지 그 흔한 영감, 하나 주워오지 못하고 빈둥거리고 있네
 
미투
한지는 아프다고 몸서리치고 난 막무가내로 꾹꾹 눌러 채색으로 붓질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처용무 추던 아낙네, 내가 피투성이 되어 쓰러져 있네
 
간이역
    ㅡ정숙
가을 엽서가 도착했다
 
산다는 건
마디 만들어가며
쉬엄쉬엄 쉬었다 가는 일이라고
 
천태산 은행나무가
몇 백 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순간
 
두 얼굴의 신, 나를 눈부시게 빛나게 하거나 캄캄한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순간, 정 숙]
 
시간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바람페달을 쉬지도 않고 밟고 있구나!
[시간, 정 숙]
 
넌 희망, 절망 두 얼굴로 인간의 웃음과 울음을 조율하고 있구나!
[시간에게, 정 숙]
 

 
21세기 최신형 인공지능기도 따라올 수 없는 충실한 노예, 그 충성심 눈물겨워라!
 

 
등뼈가 없어 흐물흐물 흐느적인다
 
힘 빼는 척 살랑거리다가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종내는 숲을 울리며 쓰러뜨리기도 한다
 
결코 척추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
 
마치 바람마구니처럼
 
화사등선花蛇登仙
-전등사 3
 
  사랑이란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것
 
  천년 시간을 전등사의 서까래 들어 올리도록 발가벗겨 쪼그리고 앉혀진 몸
  눈바람이 몰려와 칼끝으로 빗금 그어 놓거나 꽃바람이 애무하다가 찰싹 뺨을 때리기도 한다
 
  햇발은 그 분홍빛 살결 얼렸다가 녹였다가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어둠 속에 가둬 버린다 법당의 염불 소리는 처승처럼 아스라이 들리고 생밤을 깨물며 돌아다니는 도깨비들과 어울리면서 제 몸에 박ㅎ니 가시들을 뽑는다
 
  이 갈며, 알록달록 고운 무늬로 문신을 그려 시시로 풍화되는 몸을 길들인다 드디어 몇 천 번의 허물벗기로 거듭난다 나부상의 나무껍질에 갇힌 속 살결 되살아나고 이젠 주모의 솜털 하나하나 눈을 뜬다
 
  추녀 밑 꽃뱀의 전생 모든 인과 벗어두고
  지글거리는 지옥의 혀 끊어버리고
  한 마리 저승새로 날아오르려 한다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34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200407_144947(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31pixel, 세로 2586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0년 04월 07일 오후 2:59
 
13, 호작질과 시의 어울림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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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조풍으로
 
납매1

섣달의 매서움에 맞서
미색의 꽃등을 켜는 저 악다받이

입술 야무지게 깨물고
오소소 떨면 지는 거라며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며 
명주 저고리 옷고름 꼬옥 꼭 여민다
 
 
 
 
납매2

삼월 하늘 아래 결 고운 상복 다소곳 차려입은 걸보면

태극기 흔들며  독립만세 목 놓아 부르다가 숨진 

서럽던  그 시절, 어느 열사 언니들의 혼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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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는 비약과 반전, 집중이다
 
타이어에 바람 넣는 나무 [정 숙]
 
묵언이다
간간이 신음소리 내뱉으면서
손과 발만 움직인다
뼈 속 깊이 박힌 겨울을 몰아내고 전신에
봄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바람 페달을 밟아야 한다
폐타이어가 되어 버려지지 않게
밤잠도 자지 않는다
아파트 사층 창밖까지 키 키워
나의 내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다
흰 커튼 뒤 숨어 흘금거린다
연푸른 날개 자꾸 자라나면
그 넓은 품에 안기어
내 연민의 둥지 틀어도  될까
봄밤이다
어쩌나!
중국단풍 저 단단한 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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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을 깨우다
 
한 겨울 오목천 냇물 얼음을 깨어
양잿물에 삶은 무명적삼을 치대고 또 치대면서
엄마는
봉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을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
친정기억의 환한 끄트머리를
뿌리 채 뽑아 싹싹 비벼대셨는데
 
난 지금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다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내 어둠의 정체를 잡아 깨워야한다며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아직도 그 물때를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 생의 빨래판은 소리만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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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과에서 당하다
 
오늘도 혼자 당해야 하나?
별난 용품에 카리스마를 끼워
빨리 누우라고 
그 목소리, 일단  
왕사탕을 물고 빠는 맛이라
꼿꼿이 굳은 몸
대책 없이 눕힐 수밖에
거친 심장소리가 입을 열자말자 
날 세운 그 물건이 
쇳소리 헐떡이며
전신을 쑤신다
비명마저 지를 수 없어
사지가 촉수를 비비꼬며 꿈틀거린다
소심스런 물줄기, 열기를 식혀 보려하지만
어느새 그와 난 한 몸이 되어  힘겨루기다
드디어 피범벅이 비명을 맘껏 지르라 허락하고 
절정의 순간 !
끈적한 그리움이 될 솜사탕 녹아내린다
사랑, 사랑
내 사랑니여, 안녕!
 
줄장미
 
열사흘 달밤에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
오월 담장을 넘어가고 있는 저 처녀들
어쩌나!
 
들키면, 들키면
머리카락 싹둑 싹둑 잘려 집안에
갇혀버리고 말텐데
 
계남동 그 언니
문고리 잡고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데
 
 
외간에 중독되다

저벅저벅 발소리, 시간의 방울 달고
내 뒤를 따라온다
범어구민운동장의 오월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싶은
장미들의 짓인가, 얼른 뒤돌아본다
돌담에 기대선 찔레들이 제풀에 놀라
창백한 낯빛으로 손사래 친다
 
다시 발소리!
한가하게 운동하며 웃고 있어도 되는지
네가 웃으며 놀고 있는 사이
바구미들이 네 쌀자루 뚫거나
콩 자루를 터뜨리고 있지나 않은지
다그치며 빨리 뛰어가라 재촉한다
 
장미꽃잎들이 시든다
다급해진 발소리!
장미 가시는 더 억세게 발톱을 세운다
무작정 쫒기며 시의 바짓가랑이에,
처용무 그림 옷깃에 밤새 매달린다
 
40
화간
 
낮엔 새침하더니 요상하다
달빛 끌어당기는 꽃잎의 눈빛,
오월 담장에 기대서서 바깥을 살피는
흔하디흔한 장미꽃인데
어느 품이라도 마구 파고드는 색골
달의 끝없는 곁눈질에 그만 빨려드는지
 
따지고 보면 네 것 내 것
그 경계선이 어디 있으랴
달빛과 꽃의 은밀한 통정, 그 내연의
부적절한 관계를 엿본다
달빛은 도톰한 꽃입술을 만져본다
몇 겹의 꽃잎 헤집으며
자신을 밀어 넣는다
꽃은 더 진한 향을 내뿜으며
붉어진 눈빛으로 온몸을 부르르 떤다
밤의 내통을 은근히 즐기는 변태의 관음증
달빛도 꽃도 나무도 다 나의 외간들이니
어쩌랴, 거부할 수 없는 이 색정,
강간이 아닌 원죄를 위한 자연이니
내 시의 길이자 천형인 것을
 
비워도 너무 비웠다
 
 삼월 생기에 푸욱 젖어들고 싶은 날
경산의 남산면 반곡지에서 바람을 맞았다
까막새 옛 친정을 지나온
내 물결, 고요하였다. 바람이
속 다 비운 뚝버들 자궁 속으로 들어왔다
몇 백 년 묵은 버드나무,
나무의 큰 입술은 닳고 닳아 매끄러웠다
서로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던 중, 아뿔싸!
나무는 사방 문설주 까지 다 썩혀
하늘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거,
비워도 너무 비운 거네. 우리는 말없이,
아, 두 고요가 만났으니
저 작고 숱한 나뭇잎들까지 파도치는 걸까
바람의 색안경 속 눈부처가 반짝거렸다
이 비밀의 닻을 내릴 곳은 어디?
텅 빈 나무는 물 위에 누운 채 나룻배가 되어
바람, 바람이 날 적시며 밀고 간다
 
그리움
 
전원을 꺼두었는데
 
완전히 꺼버렸는데

폰은
 
왜 
 
왜 자꾸 혼자, 저절로 켜지는 걸까 ?
16, 저작료를 받다 [허영만의 식객에서][삼초 살삼겹살]
 

 
참나무는 지 몸을 태워서
숯이 된다
숯은 참나무의 영장이다
그 영장이 다시 자신을 활활 태우면
불은 힘이 두 배로 강해진다
주검이
주검을 지글지글 태우는
둘레에 늘어앉아서
사람들은 하루의 허기 채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140423_07244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40pixel, 세로 416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200312_165027(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792pixel, 세로 2791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0년 03월 17일 오후 5:37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200312_165043(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852pixel, 세로 1753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0년 03월 17일 오후 5:37
17.조각같이 확고하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시를 지을 것
범어동 궁전맨션은 [정 숙]
 
범어 로타리와 범어 숲 부근에 있다
집 안엔 별로 크지 않은 연못이 있어
여름이면 우렁각시 되고 싶어 하는 연
한 여름 대낮에 벌, 나비를 불러
관능경을 펼치는 환희불 같은 연
들꽃 폐차장에서 밤 내
별들이 빛 굴리는 소리 듣고 있는 연
이슬방울로 백팔염주를 꿰고 있는 연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는 보살 같은 연
빗물로 맑은 술 익혀
나그네에게 쪼르르 술 한 잔 따라 줄줄 아는
이러한 가슴 속 숨은 연꽃들과 동거하고 있으니
나도 어느 새 연이 되어
실한 연심의 연밥 몇 개는 여물고 있겠지?
조금 더 젖으면 연향이 솔솔 입김을 불어
그 사람을 불러 세워줄 수 있을까?
내 가슴 연못에서
시름없이 노 젓고 싶어 하도록

인생 2
 
먹는다, 밥을
밥이 자존심 꼿꼿 세운 나를 먹는다
밥알은 내 아버지를 먹고
또 그를 먹는다
 
먹히다, 먹히다 지쳐 뼈만 앙상한
그를 밀치고 이제 내 아들이 먹힌다
밥술을 놓아야만 비로소
한 마리 나비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가
 
허기가 눈물 밥 부르다가 기어이 피를 부른다
밥, 너는
죽음과 삶을 가르는 비열한 인생 길목에서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갑, 질이다
 
밥은
나의 생목숨 줄인데
왜, 지독히 인정머리 없는 갑인가!
 
 
 
45
 
 
 
17, 정서의 객관화. 낯설면서 신선한 묘사를 위해
 
달빛화간 1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혀끝을 깊숙이 밀어 넣어 꿀을 빨아먹기 위해서 인가
꽃 대궁이 속 타액은 원래 나비의 것인데
달은
꽃을 탐하여
그렇게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 달콤한 순간을 기다리는 달맞이는
밤마다 제 몸을 열어 서로 연민의 깊이를 음미한다
이제껏 보름달과 꽃의 표정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그런 부적절한 관계였나
그 까닭으로 달뜨는 밤이면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고
늑대울음을 우는 것이었구나!
내 시의 혓바닥은
여직 생각이 무디고 짧아서 맛을 음미할 줄 모른다
상처만 주지 내통이 잘되지 않는다
이 외사랑, 아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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