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언론.평론.보도

정 숙 시인의 작품 모음 3
관리자 | 조회 432
곶, 자가 격리 칠십일 째

       ㅡ대구빙하기 21

오늘따라 달 빛살이 너무 여리군요
달은 점점 빛을 잃어가면서
검은 띠를 두릅니다
하얀 깃털 속에 갇혀 사랑을 모른다는
그대, 가슴에 닻을 내려달라는
간절한 엽서를 받고
돛을 올리는 항해 길, 아득하군요
방향을 잘 못 잡았는지
배는 뒷걸음질하는데 가면 뒤 숨은
눈빛만 이글거립니다
밤의 긴 머리카락이 ‘신 내림 받아야한다’
밤안개에 속삭입니다
우울증은 점점 무기력해지는
어둠을 버려둔 채 다시 배를 띄웁니다
그리움의 뭍에 닿으면
꼬옥 안아주겠다는 초대의 그 연줄에
흐트러지는 마음을 꽁꽁 묶어봅니다
그러나 닻을 내릴 곶, 그곳을 찾지 못해
횡설수설, 잠꼬대만 길어집니다
 
 
 
삼정지, 새못에서
 
계정 숲, 매미가 저리
소리 지를 수 있는 건 뭔가 깨달은 걸까
탈피하면서 해탈이라도 했단 말인가
시간을 이기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젖은 날개 다 마르기도 전에 빨리
짝짓기 해야겠다고 악을 쓰는 모양이다
그 악에 떠밀려 못 둑을 걷다보니
연들이 저마다 향을 잦아 올리고 있다
 
자인초등 오후반, 혼자 못 둑을 지나가면
물밑에서 누군가 잡아당길 것 같았다
뉘 집 처녀의 혼을 건지는 굿 소리
낮은 비행기 소리들이 두려웠었는데
그 시절 그때, 새못에 빠진 혼들과
한 장군 말의 눈물까지 녹여 꽃피웠나!
연 향이 걸어놓은 무지개다리 위를 걸어서
눈만 커다란, 단발머리 시절로 돌아간다
14
 
첫 차를 기다리는 너에게
-처용여자 13
첫 차가 있으면 막 차도 있는 법
그런 것 버리고 그냥 무작정 살자
무한대를 믿고 살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겠지
서로의 마음 의지하며 앞으로 가는 거야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 묻고 확인하고
사랑아.
그냥 살아가자
오늘도 저 봉선화 꽃잎 속에서
네 사랑이 날 지키고 있다는 걸
난 믿고 있단다, 아니 믿고 싶을 뿐
이제 다 버리고 가식이라도 좋으니
웃고 살자, 아주 행복한 것처럼
내 그리움이여 !
 
 
 
누가 노 젓고 있는가
-처용여자 8

바다나 강을 보면 뛰어 들어가야
가서 헤엄을 쳐야 속이 후련했는데
이미 황혼이 다가오고 보니
내 생이 거의 거친 풍랑 속 바다에서
헤어나느라 고통에 길들여진 것 인가
내 시는 
그 바다 불구덩이 속에서 애간장 태우다가 
끝내 마음을 활활 태우다 남은
몇 알의 알갱이
부처님 사리처럼 오색 영롱하지도 않은데
짜디 짠 자색소금 침전한 내 암바다에서 
시름없이 노 젓고 있는 이
당신은, 누구인가
 
 
줄다리기
-대구 빙하기 6

발코니 창문으로 기어오르는
학쟈스민은 누구와 밀당을 하고 있을까
초록빛 가느다란 줄기로
창 바깥 햇살과 바람을 당기려 안간힘이고
그 사이에서 뿌연 먼지 덮어쓴 유리창은
차갑게 무표정하다, 모든 방관자처럼
흑과 백, 남과 여, 색깔에 상관없이 모두
누군가와 줄다리기 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심지어 코로나19와 선거, 그리고 봄바람도
마스크한 채 회색빛 하늘을 비질하고 있다
열매를 많이 달아 구린내 난다고 싹 뚝, 잘린
은행나무가 굵은 팔뚝 들고 시위하듯
흔들리는 하늘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쌓여가는 주검은 뒤로한 채
선거 화전놀이가 팥죽처럼 끓어오르고 있다며
이 아픔들이 먼 훗날 호박 속 모기  
화석으로라도 남아 있기를 기도하면서
 
 
 
곡예사의 꽃밭
ㅡ대구빙하기 14

이가 부러지도록 앙다물어야 했다
내가 타야할 줄은 하나가 아니었다
꼬이고 겹쳐진 여러 줄에서 신호등은 없고
앞이 갈팡질팡, 길이 흔들리면 아무리
이를 갈아도 해결의 갈피는 어디 숨었는지
내 꽃밭엔 쟈스민 라이락이 향기롭지만
그 그늘에 숨은 꽃들의 종양세포가 
뿌리를 깊이 뻗어가고
중 환자 가족실엔 죽음이 돌개바람 돌리면
줄도, 사람도, 끝내 하늘도 뱅글뱅글
불마저 암전된다
곡예사의 첫사랑 색소폰에 몸 흔들며
뼈저린 아픔 견뎌내야만
햇살꽃이 피어 빙하를 녹인다며
그 말씀의 연줄이나 붙잡고 웃어야하는
난 대책 없는 어릿광대
삶의 현장은 외줄타기를 가르치는 곳
한 줄기 믿음은, 그 처참살벌이 결국
사랑향기 스민 꽃송이 피워낼 거라는 것
 
 
공허를 바느질하다


한 뜸 한 뜸 야무지게 내 생을 바느질한다고 했는데
살아온 나날들이 언제 이처럼 헤지고 뜯겨져 나갔는가
허공은 하늘 꽁무니에 매달려 날 조롱하고 있고
공허는 범어 캬바레 니글니글한
한 남자의 손길에서 대롱거리며 손짓한다
먹을수록 몽롱해지는 밀크 초코렛 맛으로 
유혹하는 테너 섹소폰 ‘로라’에 발 맞추다가
내 몸은 지남철이 되어 떨고 있다
갈 길이 잠시 흐려져 길을 잃었다 변명하다가
스텝을 꼭 꼭 밟는 것도
바느질이라며
공허를 바늘에 꿰어
이왕 틀바느질이 더 여물다며 
발길질 지르박으로 분답게 돌려 본다
 
 
산책길, 민낯을 보다
 
 
 
숲길은 넓고, 소나무 향 그윽하다
챙 넓은 검은 모자에 들꽃 하얗게 그려
우아하게 천천히 즐기면서 걷는다
핑크 뮬리가 구름처럼 모여들며 서로 손 내민다
포근히 감싸 안아주며
뛰는 가슴 끝까지 같이 하자며 속삭이더니
 
순식간에 찬 바람 분다
갈바람이 애잔하긴 하지만, 숲의 가을은
더 뜨겁게 타오르더라 까불대는 사이
금세 길은 좁아지고 굽어진다
탱자나무들이 가시를 세워 몸을 움츠리게 한다
 
평생 그의 가슴팍에서 산책이나 즐길 작정이었는데
이제 회오리의 눈알이 된
범어포구 향유고래의 구불텅한 초겨울 숲길
난 아무 곳에나 방황의 뿔을 꽂아대고 있다
되돌아갈 길도,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
늦었지만 내 가슴에 핑크 뮬리를 심을 수밖에
 
시간의 민낯 보러 간 가을 숲에서
사랑의 민낯까지 만나고, 돌아보니
우수수 나뭇잎들이 지고 있다
해는 서산마루 어깨 잡고 안간힘 쓰느라
낯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다
 
 그가 날 흐느끼게 한다

적막이란 왕 눈깔사탕을 살갑게 굴리는 아침
런닝셔츠 바람의 퀸이 메롱! 메롱! 하다가
각중에 나를 울린다
그것도 흑흑 흐느끼도록
참, 그것도 벗어던지고
맨살로  다가오는 저 근육질 목소리
전혀 달콤하지 않다
가끔 음 이탈도하면서
우린 고통을 잘 견뎌낸 챔피언이라는 내용이
훅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칠곡 요양병원에서 벗어나
모처럼 내 침대가 주는 푸근함 때문인지
기교도 ,언어 유희의 멋도 없지만
진정성, 그 진정성이 날 울린 걸까
노래 한 가락보다
시가 패배자인 걸 절감하는 아침
적막의 쓰디쓴 맛이 나를 음미한다



 
수성 못
 
널 생각하면
사철 떨림으로 파문이 진다
네 가슴엔 달빛이 흐르는 강을 연주하는
클라리넷 소리 같은
젊음과 그리움이 머물고 있어
날마다 아련한 바람으로 손짓하며 부른다
그 바람 속에서
내 인생, 오뉴월의 별들이 모여 속삭인다
 
흔들리지 말아요
내가 가까이 다가갈게요
오늘따라 그대 피부 따스하고 부드럽네요
그대는 늘 불그스럼한 저녁안개
해, 지면서 따스한 눈길 추억으로 파문지면
그저 바람을 안고 춤이나 추세요
달빛이 흐르는 하얀 옷자락 나부끼며
내일의 푸른 들판에 주사위를 던지며
 

 
-정 숙
 
21세기 최신형 인공지능기도 따라올 수 없는 충실한 노예, 그 충성심 눈물겨워라!
 
 
 
봄, 설해목
 
무딘 몸이 뻣뻣해진다
마음 저 밑뿌리에서 끓어오르는
이 환장할 원죄
 
그리움 휘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승무를 추는 내 그림
하얀 고깔은 꽃과 향기 옥죄는
신들의 말씀
 
죄 없는 화선지 찢기도록
욕망의 그늘에 채색을 한다
연분홍색까지 덧칠한다
 
창을 흔들며 울부짖는 바람은
살빛 꽃잎들 흔들어 날려 보낸다
날리는 꽃잎들의 시린 맨발

내 그림에도 때 아닌 사월 눈발
이 아득한 눈의 무게
마음 가지 하나 툭, 부러진다

 
서문로 2가 11번지 라일락에게


그대 향기는
어쩜 마돈나였을지도 몰라
그네의 향 간직한 수밀도 젖가슴으로
처절한 그의 한탄이
하늘에 눈 흘김만 할 수밖에 없는
숨죽인 통곡, 가슴에 껴안느라
온몸 비틀리며 낮은 걸음 천천하다
제 나라와 들을 빼앗긴 긴 세월
그 뼈저린 설움 삭히며, 삭히며
라일락 뜨락에서 꽃불을 지피는 구나
오로시 나라 찾기 위한
그의 올곧은 한, 몸부림 그리고
태극기 사랑, 사랑 읊조리면서
대대손손 전하기 위해
이백년 더 머언 먼 시절로
꿋꿋이 걸어가고 있구나!
‘아, 마리아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1.일상어를 사용하지 말 것
2.새로운 리듬 창조
3.주제의 선택을 자유롭게
4.이미지를 제시할 것
5.조각같이 확고하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시를 지을 것
6.집중을 할 것
7.막연하고 보편적인 것을 취급해서는 안된다
8.정서의 객관화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먼 곳이란 뜬구름 나무 가지를 자르면서
 
“책은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이라고 했던 고 신영복의 말을 떠올리면서 등단 후 근 삼십년 동안 발간한 내 시집 여덟 권이 누군가의 벗이 되고 있을까? 곰곰 생각 중인데 사층 발코니의 학 쟈스민 한 줄기가 샷시 창틈을 잘 이용해서 탈출에 성공한 것이 보인다. 벽 틈새로 부는 바람의 혀끝을 잡고 바깥으로 나가 눈, 비 모두 견디며 하늘을 맘껏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살결이 붉어지긴 했지만 아주 건강해 보인다. 꿈에서 깨어나라고 줄기 끝을 잘랐는데 어느 새 두 줄기를 내민다. 이젠 땅을 밟아보겠다며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는, 저 힘의 원천이 바로 먼 곳 아니겠는가? 주인이 시 쓴다며 멍 때리는 모습에서 뭔가 깨달았던 것인가?
 
내게도 먼 곳이 있었던가? 결혼하면 여자는 먼 곳을 다 지워야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집을 사는 사람이 어찌 접시꽃처럼 시선을 담장 너머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늪에 푸욱 빠져서 얼굴도 몸도 동네 아줌마들과 같이 두리뭉실해지도록 다 버려야한다.
위 아니라 아래만 바라보고 살아 멋진 맏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그 것이 나의 먼 곳이고 꿈이었다. 시할머니부터 거의 열한 식구의 가정부도 내보내고 스스로 가정부가 되어 몸빼이에 딸따리 신고 허덕이던 시절 내게 먼 곳을 보여준 이들은 결혼 십년 뒤 들어온 두 동서들이었다.
막내동서가 신행 오던 날 난 참 오랜만에 미장원에 갔었고 공단 한복을 입었었는데 삼덕동 동네 아줌마들이 새색시는 뒷전이고 맏며느리 칭찬하느라 난리가 났었단다. 난 눈치도 없었는데 나중 막내동서가 투덜거려서 겨우 알았다. ‘형님, 그 날 왜 화장을 해가지고’그 한마디 그 때 유행한 노래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였다. 이 글은 내 자랑이 아니고 얼마나 바보처럼 어리석었는지를 말하는 거다. 대학을 나오고 중학교 교사까지 지나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맏며느리로서 더 착실하게 살려고 다짐만 했으니‘아버지 죄송합니다.’아버진 딸이 큰 눈만 껌벅이는 것을 아시기에 진작 말씀하셨는데 ‘요새는 여자도 누구처럼 좀 거세게 보여야 한다.고 그래서 아버지,’첫 남자‘ 란 시에서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지녀야 한다‘란 시를 쓰기도 했었는데.
 
늦게 깨달은 막막함 속에서 퍼뜩 떠오른 것은 책 속에 먼 곳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었는지 어릴 때 늘 사상계나 책을 뒤적이며 지내는 내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 ‘딸아, 넌 소설가가 되어라’ 그 말씀이 부담이 되어 대학에서 김춘수 교수님과 학보사에서의 원고청탁 등 그런 기회를 일부러 피해 다녔었으니......
마흔이 넘어 늦게사 그 한 마디가 등불이 되고 내 인생의 길잡이로 먼 곳이 되어 사십대 중반에 늦깎이 시인이 되었다. 오지랖이 넓어, 처용아내를 살린다며 처용가를 패러디한 [신처용가] 연작시를 쓰면서 감히 자신이 처용아내라고 내세우며 시극과 낭송을 하고 다녔으니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그런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이미 세상은 여성의 세상이 되었고 IMF로 남자들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남자를 위로하는 [향피리] 연작시를 쓰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결혼 후 난 먼 곳이 없었다. 앞날에 대해 아무 대책 없이 살았던 것이다. 고정관념의 늪에 빠져 살던 내가 자신을 돌아보며 모든 사물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시집이란 그 늪에 더 깊이 빠져 참을성으로 맏며느리의 길과 시인으로서의 길을 닦아나가겠다는 시 [우포늪에서]를 발표했다. 전국 시인들과 첫 여행지 우포늪에서 낙동강이 왜, 늪이 되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제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우포늪에서, 전문
 
그 늪의 영혼 속엔 왜 징소리가 들어 있었을까? 징한 그 소리 속엔 얼마나 깊은, 먼 곳이 있었던지 나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동란 등 그 와중에서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주 참봉의 요롱소리와 징 소리 듣고 자랐기 때문인가?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전문
 
어른들께서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성장했고 이 가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책임감과 함께 자연스레 세상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내게 먼 곳은 가정을 편하도록 지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려면 욕구와 유혹으로 부터 견뎌야하고 인내, 참을성이 가장 가치 있는 덕목으로 보였다. 구태의연하긴 하지만 요즘세상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인내라는 말이 더 필요한 말인 것 같다.여기서 필자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신기한 것은 2007년부터 누구의 도움 없이 무작정 시작한 호작질, 채색 한국화로 승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승무는 어머니의 춤, 모무 또는 처용무로 어쨌든 귀신세계의 징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식구들이 두려워해서 종종 놀란다는 사실이다. 가장 화려하고 밝게 하려고 고운 연못을 그렸는데 왜 무당집 벽화 같은 느낌이 나는지, 결국 내 시의 먼 곳은 징한 징소리인가?.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풋울음 잡다, 전문
 
특히 요즘 코로나 19의 창궐로 자가 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도 놀이도 혼자 해야 하는 시간이 많으므로 성격이 충동적이어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오직 참을성으로 혼자 노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어른들이 늘 입에 달고 살던 ‘참아라, 참아야하느니라’ 그 잔소리가 진정 필요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혼자 놀다보니 자꾸 옛날 일들을 소환해서 놀기도 한다.
 
거친 숨소리/ 사층 발코니의 무더위 견디느라 /쟈스민은 정신없이 펌프질 하고 있다/
물을 끌어올리려면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삽 십 년 시집살이가 냉큼 뛰어 들어간다/
삼덕동 백서른 평 마당 씻느라/ 엉덩이 실룩이는 처용아내/
이불호청 두드려대는 다듬이 방망이가/ 사랑의 매라며 변명한다/
마당에 고인 물에 깃털 다듬는 참새들/모든 추억들 불러 모아도 소식이 없다/
곧 콸콸 쏟아질 널 기다리며/코로나 19, 자가 격리 하 세월의/
무료를 부어 다시 펌프질 한다/마스크도 버리고 참새처럼 재잘대는/ 그 날을 위해/
-펌프질하다, <대구 빙하기 22> 전문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쓴 시는 숨겨진 나의 속마음이 익어 태어난 자식 같아서 어떻게든 예쁜 옷을 입히고 가르쳐서 독자들에게 알려지고 인정을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첫 시집 [신처용가] 같은 경우는 특히 대구 경상도 사투리로 되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낭송을 하고 시극도 하여 이십년 넘게 ‘봄밤이라예, 휴화산이라예’ ‘처용아내 정 숙’ 등 정 숙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도록 살아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다른 시들도 쓸 때 여러 번 낭독하면서 이왕이면 낭송하기 좋도록 시를 쓰기도 한다. 물론 힙합의 의자춤에서 눈물 흘리며 쓴 [인생 1]처럼 아포리즘 같은 짧은 시도 많지만 낭송가들이 좋아하는 시들도 더러 있다.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제대로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끌려가는
 
나의 한 생애
-인생1 전문
 
 
낭송가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울림이 깊고 감동이 있어야 하므로. 시극 ,낭송 외에 호작질이라며 그림도 자주 그린다.
 
그냥 공허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 승무를 변형해서 처용무를 그리고 있다. 사실 처용아내의 간절한 기도 춤인데 고문인수 시인이 처용무라고 고집을 부리신다. 천 아트 [패브릭 아트]도 복지관 강의에서 시와 천 아트 강의를 같이 하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되어 심심풀이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무신, 손수건, 옷, 모자 어디 틈만 있으면 호작질하고 있다.
 
삼십년 시집살이 한 사람이라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이 불안하다. 시집 살았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지만 어느 시인이 거침없이 ‘시집이 부자니까 시집을 살았지’ 하는 말에 아연실색 하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 유일한 탈출구였던 피겨스케이트를 그만두었으니 암 투병을 핑계로 꽃구경 다니며 사진 촬영하는 것이 또 즐겁다. 암환자가 너무 씩씩하니까 보험금 받으려고 나이롱환자라는 소문까지 날 정도지만 실제로 항암주사 열네 번에 방사선 치료 스물다섯 번이라 요양병원에 있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올 해가 오년 째이니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편 할리 없다. 그리고 올해 초파일이 바보 같은 필자를 도와주려 애쓰던 남편마저 세상을 하직했으니 늘 뒤에서 누가 쫒아오는 것처럼 불안하고 조급하다. 그래서 호작질하 듯 시를 쓰고 무작정 그려야 한다.
 
2.내 시의 궁극적인 목표
 
한 이십년 동안 인터넷으로 시마을, 포엠토피아, 포엠스쿨 정 숙반, 대구문학아카데미, 여러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얻은 결론은 시는 체험을 여러 가지 형태로 묘사하면서 뭔가 깨달음을 주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시들은 체험을 재생적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안정되긴 하지만 시적인 긴장미나 신선감이 없고 어떤 시들은 너무 과다한 상상력으로 감각적이고 서구적인 묘사에만 치중해서 공감이나 감동 없이 마무리 되는 시들이 많다.
 
이런 시점에서 필자는 신선한 연상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누구와 닮지 않은 정 숙만의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늘 직관력 훈련과 이미지, 그리고 사유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깨달음이나 감동을 주려면 사유가 깊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이를 갈아라, 삽질을 더 많이 하라’ 이다. 그래야 깊이가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삼천포로 빠져라’이다. 비약을 말하는 것이다. 시가 첨부터 결과가 같으면 재미없다. 첫 구절 읽고 답을 알아버리면 더 읽을 필요도 없으니 마지막 결론은 완전히 다른 핵심이 있어야 한다. 시인도 결국 스토리 텔러 같아서 구성에 반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알맹이 있는 시를 쓰려 노력은 하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고 그래도 낭송가들이 필자의 시로 낭송하는 것을 좋아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졸 시집 신 처용가는 시극과 마당극으로,
졸 시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와 ‘풋울음 잡다’로 시극 공연을 하고 ‘우포늪에서’란 시는 많은 낭송가들이 기꺼이 낭송하고 있다는 소식에 우쭐하기보다 내 시가 징 제작에서 풋울음 잡는 참된 징수가 두드리는 재울음, 징한 울림의 징소리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내 시는 서구적인 묘사로 언어유희 같은 얕은 시가 아닌 한이 어우러진 한국적인 정서의 징한 울림이 있는 시가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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