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8    업데이트: 24-02-24 12:05

자유게시판

23, 정숙 의 산문-김동숙 시인의 첫시집- 생의 유적지에서 캐낸 시--시집 호수를 연주하다 해설
관리자 | 조회 156
생의 유적지에서 캐낸 시
 
정 숙(시인)
 
슬프지 않는 생이 어디 있겠는가. 존재 자체가 통점(痛點)인 것을, 사랑하기에 또한 슬프고 아픈 것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하기에 흔들리는 자신을 견딜 수 없지만 견뎌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토로한다.
시인은 새로운 길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모험가라고 했던가? 시인에게 첫 시집은 첫사랑의 설렘처럼 두려움과 떨림이 주조를 이루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동숙 시인은 2007년 《시문학》으로 등단한지 16년 만에 『호수를 연주하다』를 펴내어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필자는 김동숙 시인을 이십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터라 시인의 내면적 갈등을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김 시인은 자의식이 강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게 안타깝고 소식이 늘 궁금했는데 드디어 시집을 내겠다고, 자신의 내면을 공개하겠다고 결심을 해서 필자에게는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칼 구스타프 융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간은 여러 개의 가면, 즉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젊은 날 자신의 이중성에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히 대구문학아카데미 시절부터 알고 지낸 김동숙 시인 내면의 갈등은 필자의 젊은 날처럼 어떤 트라우마나 자의식이 너무 강했었는데 이제 마음의 문을 열고 『호수를 연주하다』의 첫 장을 열면 시인의 깍도요와 마주친다.
 
고향으로 갈 날이 멀지 않았다 실핏줄 항로를 따라 졸개들을 태어난 땅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 단단한 껍질 속살이 부드럽다 누구도 나의 언약 몰라야 한다 날갯짓 하나에 눈길 한번에 따르는 놈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항로는 시시각각 변하리라 북극성은 일 초에 수천 번 날갯짓하는 벌새인지도 몰라 난 한 마리 깍도요 깃대 잡고 콧노래 불러야지 한껏 깃털 세우고 속내 비치지 말아야지        
—「깍도요」 전문
 
울림이 좋은 징을 재작하듯 자신의 풋울음을 잡기 위해 단 한 편이라도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재울음이 될 명시 한 편을 태어나게 하려고 긴 시간 자신을 누르던 그 무언가와 사유의 늪에서 헤어나려 몸부림 친 흔적을 산뜻한 상상력으로 이미지화시키고 있어 일단 안심하고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들키기 싫은, 그래서 늘 긴장을 놓지 않던 항상 가까이 할 수 없는 시인의 벽을 <난 한 마리 깍도요 깃대 잡고 콧노래 불러야지 한껏 깃털 세우고 속내 비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는 모습에서 세상에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은 시인의 냉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김시인 대표작의 하나인 「유적지 발굴 조사 현장에서」 <수천 년 암흑과 싸우며/거듭 태어나는 그날을 기다렸을 소중한/전생, 갑자기 비명이라도 지를까봐/조바심으로 불고 달래며/어둠 속 묻혀 있던 수수께끼를 헤치고 있다>고 토로한다. 김 시인은 이렇듯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견디면서 유적지에서 발굴 조사하듯 언어를 캐내어 시 속에 차곡차곡 쟁여두는 그런 마음들을
연작시인 「호수를 연주하다 3」, 「호수를 연주하다 4」에서 알 수 있어 탁, 손뼉을 쳐본다.
 
땀 범벅된 채 한 음도 짚을 수 없었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 주례 사제의 그림자 가물거리고 귓전을 윙윙 울리는 라틴어 기도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붙잡았을까 달아났던 음표들이 돌아왔다 그래도 키는 낯설기만 하였다
—「호수를 연주하다 3」 중에서
 
주여, 잡아 주십시오
순간의 실수까지도
어쩔 수 없는 나의 흠집
예쁘게 받아주십시오
숨어 버리고 싶은 부끄러움
등 뒤의 비웃음에도
뜨거운 피 흐르지 않는 
냉혈한이게 해 주십시오
오직 하나 전 신자가
흩어지고 산란한 마음 없이
그분과 함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호수를 연주하다 4」 중에서
 
「호수를 연주하다」 연작 시편은 오르간 연주를 통해서 신에게 다가 가고자하는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다. 또한 신앙심과 순수 그 사이에 있는 자신의 페르소나에 갈등하고 방황하는 자책과 죄의식에서 사로잡히다가, 시라는 존재에 멀미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모순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 혼돈 와중에 시인은 시안이 밝아지고 사유도 깊어지는 것이다.
 
시집 속엔 대체로 그 시인의 바다와 파도가 들어있다. 그래서 시집을 해설한다는 것은 그 시인의 꽃밭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의 고독, 삶의 냉정한 현실을 극복하느라 돌탑 쌓듯 피운 꽃들이 모여 있다. 그 꽃들이 탐스럽게 아니면 다 피지도 못한 채 꺾여버린 그 표정엔 늘 고독과 슬픔이 묻어있지만 김동숙 시인은 결코 징징 우는 소리로 동정심을 구걸하지 않는다. 
 
종가 며느리로 안살림 두량하던 머리에 이리저리 하얀 거미줄만 애처롭다 분주했던 손은 오그라지고 거룩하기까지 했던 아랫배는 깊은 고랑져 있다 붙박이별처럼 앙상한 두 젖꼭지 음부는 불 꺼진 아궁이의 부뚜막이다 말라가는 살구나무 겨울비 닿듯 물과 뼈 사이 간격이 없다
—「살구나무 요양원」 중에서
 
햇세의 데미안처럼 자신의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나기위한 그런 사치스런 여유도 없이 한 생을 새빠지게 살았을 뿐인데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처참하다. 생의 태엽은 아무도 맘대로 감거나 멈출 수 없고 이 길을 아무도 피해 갈 수 없기에 그냥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시인의 안타까움을 그냥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다 슬프다 한 마디 없이 그래서 화자의 아픔이 더 처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정서의 시적 처리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시 쓰는 방법이 어느 정도 잘 습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대가
가장 낮게 엎드려 겨울을 보냈다면
흔들의자이다
 
흔들림 아는 사람만이 와서 앉으라고
띄엄띄엄 봉무공원에 흔들의자 있다
요람에서 잠자는 아이처럼
내가 저 아이의 꿈속에 든다면
깊은 바다 어둠의 그림자 데리고
몸에서 빛이 나는 아귀들 사는 곳까지
흔들리며 달려갈 수 있겠지
 
더 내려간다면 암흑의 뿌리 끝
그곳에서 발이 닿겠다
들숨날숨도 허락되지 않음을
당신도 흔들의자에 앉아 보면 알게 되리라
   —「흔들의자」 중에서
 
시는 발견, 또는 깨달음이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 그렇게 되려면 직관력과 관찰력, 사유와 상상력으로 모든 사물의 근본을 찾거나 자신을 까발리고 욕보이고 조롱하다가 끝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고민한다.
시인이 살고 있는 불로동을 지나 단산지 봉무 공원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시인은 흔들리는 생의 모습에서 직면한다. 시인은 <수천 번 바람에 흔들리다/따사로움이라는 미명의 햇살에게도 흔들리다/중심에서 오롯이 꽃대 올리는 냉이풀>에 시선이 멎는다. 그리하여 <알고 보면 꽃들도 흔들의자>임을 깨닫는다.
 
어둠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다 
벌거벗은 몸 맡긴 채 오로지 
탯줄 하나로 꿈만 키울 수 있는 곳
 
목까지 꽉 채워진 단추 
스스럼없이 풀게 하는 힘이 있다
오월의 하늬바람이 흥얼거리며 
콧노래 부를 수 있도록
—「순수한 어둠은 악이 아니다」중에서
 
이삿짐 풀어헤치다 검은 비닐봉지에 꼭꼭 묶인채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본다 보랏빛 싹이 돋은 고구마가 썩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살점 내어줄 요량으로 통통하던 것이 군데군데 검버섯 피어 있다 서서히 죽어가는 세포들 그것이 아귀가 되고 질퍽하게 썩고 있다
—「낙관에 찍히다」 중에서
 
어떻게 하면 더 예리한 각도로 너를 찌를까 재어보며 네 심장에 꽃가지를 찌른다 꽃꽂이하는 법 따위야 잊고 살았기에 몇 번씩 뺏다 다시 꽃은 네 몸은 부스러기를 남기고 초록의 피가 낭자한 너는 돌데가에서 처녀의 심장이 태양 신전에 바쳐졌을 때 흐르는 피처럼
—「오아시스」 중에서
 
이제 시인은 사유와 직관력이 강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드디어 시인은 당당하게 모든 사물과의 외간을 사랑할 줄 알게 된 걸까? 점점 더 적극적으로 사유의 날개를 펼치고 묘사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소설가는 자기가 돼지처럼 느껴질 때 시를 읽는다고 했지만 시인들은 보통 돼지가 되기 싫어 시를 쓰는 건 아닐까? 늘 미적지근한 자신의 안을 더듬어 보며 어디를, 무엇을 찔러야 하는지 샅샅이 뒤적이며 더듬고 있는 듯하다.
 
넌 내가 주는 대로 먹어야 해 바위에 간신히 붙어 생을 이어가는 동화사 일주문 옆 단풍잎처럼 십자매 모이만큼 먹어야 해 언제나 깨어있어야 해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자는 필요 없어 구월이면 창녀의 입술로 붉게 변해야 해 영혼도 없을 너를 찢어 발겨서 매스로 도려내고 흐흐흐 염기서열을 바꾸는 거야 보이 소프라노의 미성(美聲)을 위해 중세 유럽에선 거세 했다 지 발정 난 순혈통의 개, 야합할 순 없잖아 아랫도리 거침없이 때려도 신음 못하고 갈증에 혓바닥이 갈라져도 참아야 해 오그라들거나 핏빛을 잃어버리면 불구덩이에 던져 져 살려 달라 호소할 수 없고 주저앉을 수도 없고 그저 꼿꼿이 서서 붉은 살점을 피워야 해 흐흐흐
—「린네는 독재자야」 전문
 
자신이 피운 꽃들 속에서도 늘 가슴 아파하는 사람, 김동숙 시인은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자신의 시가 더 풋풋해질 수 있도록 모든 사물과 서로의 비밀스런 정을 글로써 나누며 얘기를 주고받는, 자신을 믿고 더 화끈하게 사물과 가까워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시란 날개로 훨훨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하고 믿는다. 특히 시는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문득 녹음이 뚝뚝 듣는 햇빛 찬란한 하늘을 우러러 본다. <어느 부족국가의 쇠락을 지켜본/깨어진 기왓장 하나/먼저 손을 내민다/무엇을 말하려는지/바람이라도 붙잡으려 안간힘> 쓰는 시인은 ‘유적지 발굴 조사’하듯 생의 현장에서, 김동숙 시인만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진지한 창작의 시안(詩眼)과 열정으로 진정성 있으면서도 모호하지 않은, 언어유희라며 얄팍한 말장난에 머물지 않고 더 신선한 이미지 묘사와 비약으로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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