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8    업데이트: 24-02-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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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은 왜, 시간을 꼬옥 붙잡고 있는가 [정 숙 기행문]
관리자 | 조회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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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고모역은 왜 산문.hwp]
고모역은 왜, 시간을 꼬옥 붙잡고 있는가
-정 숙 시인
 
 
수성구에 산지 근 사십년이 되어가지만 수성문화원의 배려로 올 해 구월 그 더위 한 풀꺾이긴 했지만 땀 흘려가며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산마루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못 잊어 돌아보았다고 고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모역은 경부선 철도역으로 1925년 영업을 시작해서 2004년 고모역 여객 업무 취급이 중지되고 2006년 역원 무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후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만들기’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2018년 고모역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여 개관되었다고 한다. 지금 복합문화공간이 되어 있지만 시간이 멈춘 폐 역사라서 전시한 물건들이 더욱 정겨웠다. 어릴 적 친정에서 보고 듣고 자란 LP판들과 배우, 가수들 머리 모양과 얼굴들이 너무 익숙해서 그렇겠지만 그것은 필자의 나이가 어느 정도 인지 표내는 일이라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옛날 피눈물 나는 이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대구 수성구 고모동을 지키며 시민들에게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추억의 장소로 동시대의 음악, 영화, 악극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느린 우체통이 있어 엽서도 써 넣고 소망카드도 색칠해 보았다.
 
거의 시인들로 구성된 방문객인지라 그 당시 역장의 모자와 제복을 입고 시낭송하는 사람들 아랑 곳 없이 바깥엔 고모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기차 지나가는 여운이 아스라한데 ktx인가, 새마을호인가 짐작하느라 생각이 더 깊어진다. 그러다가 옛날 부모 자식 간의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이 이별하는 슬픈 장면이 가슴 먹먹하게 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담장엔 능소화가 줄줄이 꽃을 피워 결코 쓸쓸해하지 마라며 위로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고모역엔 그냥 슬픈 역사와 향수에 젖어 있을 수만 없는 또 하나의 슬픈 현실을 만날 수 있다. 고박 해수 시인의 시비에 새겨진 ‘고모역’을 올려본다.
 
고모역顧母驛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 보다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해를 보내고
책가방에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通學車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역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시비, 고박해수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어 박 해수 시인을 만나는 듯 반가우면서 생전 대구 문인협회 회장 시절 화본 역 및 몇 개의 폐역에 혼자 독점하듯 시비를 세워 시비가 많았던 그러고 갑자기 사망한 시인의 시비가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앞으로 고모역은 폐역의 역사보다 오히려 한 인간적인 시인의 시비 시비로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본다. 시 한편 써 보려니 옛 정감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래도 경주 월성 중학교 교사 시절 필자의 후임으로 국어교사였었고 돌아가시기 전 큰 꿈이었던 한국 문인협회 회장에 출마한다면서 파트너를 해달라고 자신이 회장이 되면 정 숙은 부회장이 된다고 달콤한 제안에 거절을 했지만 친구처럼 알던 정이 남아서 인지 시비에 시비를 걸어본다. 어쨌거나 시인들이 모여 고박해수 시인을 추모한다고 얘기하면서도 결국 폐역의 시비에 대한 갑질을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급히 돌아가야 할 걸 알고 자신의 흔적을 서둘러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의 삶에 오점이 되지 않도록 이해하자는 뜻이 담긴 시를 한편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고모역에 가면/정 숙
 
‘비 내리는 고모령’ 흥얼거리며
옛 어머니들의
피눈물 나는 이별의 그림자 찾아가니
능소화 보다 먼저
한 여름 바람이 단내 뿜으며
 
'저  바다에  누워!'
푸른 꿈 펼치던 한 시인
폐역마다 자신이 누울
관을 마련해 일찍 잠들어 있다 고 하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인이
한 시대, 역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니
시비에 시비 걸지 말라고
폐역이 된 그의 묵직한 시비 건너
라임 나무가 급히 손사래 한다
 
글을 끝맺기 전 고 구상 시인과 고 문 인수 시인 조명선 시인의 고모역 시도 올려본다.
 
구상 시인(1919~2004)은 종군기자 시절 고모역을 지나면서 북에 홀로 남은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라고 하는데 얼마나 그리웠으면, 시 마지막 구절에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고 하셨겠는가? 그 애절한 마음에 젖어들며 시비에 새겨진 구상의 시를 올려본다. 문득 고모역顧母驛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 기다리신다. 는 박해수 시인의 시 구절이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고 모 역
- 구 상
고모역顧母驛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 보다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 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해를 보내고
책가방에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通學車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고모(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문인수 '고모역의 낮달’
 
 
숙이 고모 돈 벌러 눈물로 간다, 간다
코끝에 걸린 달빛 딸라 금호강 기슭을 돌아
능금꽃
파르르 떨며
발길 적시는 고모령 넘어

그렁그렁 매달린 사연 쓰윽쓱 문지르며
의심스런 눈길에 밀봉당한 간이역
배웅도
마중도 없이
꽃멍으로 내린다

한눈 팔 사이 없이 살세계 달린 철길
동대구 출발하여 고모역 통과합니다
미끈한 
안내방송이
눈시울 더듬는다

              조명선의 '고모역’
 
 
위 시들을 곱씹는다. 고문인수 시인의 '고모역의 낮달’에서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문인수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애틋한 정서의 시적처리와 이미지 그리고 고모역의 역사를 얼마나 세밀하게 형상화 했는지에 감탄하면서 조명선의 시조 '고모역'을 읽는다. 고모가 아버지의 여 형제라는 전제하에 상상력을 발휘한 시조를 음미하며 모처럼 쉬어가는 시간을 모아 고모령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필자의 시 한편이 또 눈치를 보고 있어 적어본다.
 
고모역에서 매듭을 /정숙
 
경부선 기차가 잠시 쉬어가지 않으니
고모령 넘어가는 빗소리 울다 웃다가
더 구슬픈 건가
 
어머니의 목소리 쉬다 못해 꺽 꺽
숨통 막히던 역사의 매듭
간이역, 길 막는다고 사라지겠는가?
 
그때 이별한 두 아들 총알받이 된
어머니, 닿을 역도 사라진지 오래고
내 생이 문 닫을 시간도 멀지않았으니
 
우린 언젠가 모두 폐역이 되겠지만
시간이 멈춘 뒤에도 저리
능소화 수다스레 피워 기다릴 수 있다면
 
시비에,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하리

그 사이 하늘로 오르던 능소화 꽃송이가 땅으로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시간은 자신이 잠시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악착스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모역이 아무리 시간을 붙들어도 쉬지 않고 가는 저 열차처럼 가고 있고 필자도 그 사이 또 한 걸음 더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참고 자료로 올려본다.

▣ 고모역 복합 문화 공간
1.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로 208
2. 화 – 일 : 4월~10월 10:00~18:00 / 11월~3월 10:00~17:30
3. 월요일 휴관
4. 053-791-3334
5. 무료주차 / 무료관람
6. 홈페이지 : http://gomo.or.kr/
7. 교 통 편
버스 : 수성2(고모역앞 하차)
지하철 2호선 연호역 하차 → 4번 출구 고모동입구 정류장에서 환승
지하철 2호선 고산역 하차 → 4번 출구 고산2동 주민센터 정류장에서 환승
[출처]고모역길에 핀 능소화의 지각|작성자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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