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8    업데이트: 24-02-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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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 시인이 시와 소금에 발표한 시 해설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시인의 침대 -문정희.
아트코리아 | 조회 310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시인의 침대 -문정희.


시인의 침대

ㅡ문정희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절벽 끝의 화산!
굳이 고독 끝의 분화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산 아래를 본다
오직 앞을 향하여 두 발로만 걷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로 보인다
 

왜 뱀처럼 온 몸으로 기어가지 않을까
왜 허공을 걸어온 저녁의 새처럼
두 발을 깃털 속에 넣고
생을 작고 동그란 돌멩이처럼 만들어
쩡쩡 내던지지 않을까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안감을 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을 선물로 받은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잿빛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 꿈꾼다

▪시 읽기
 

시는 몸이며, 몸의 길이며, 생명이라는 문정희 시인, 시인은 늘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술서를 쓰다 쓰러지는 죄수라며 자신을 닦달하더니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고 주장하는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 흠뻑 젖어 있는듯하다.

시인은 에트나 화산 위 침대에 누워 자신이 달달 볶아지는 느낌에도 어쩔 방도가 없어 우울하고 고독한 그러면서 이랴! 이랴! 성과급 채찍질에 엉덩짝 두드려 맞는 모습을 신선한 비유로 절실하게 잘 그려주고 있다. 좋은 시를 쓰지 못하면 금세 낙오자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시인의 사회, 그러면서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화려하면서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진작 시작詩作에 나른함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무능을 깨우쳐 주는 작품인 것 같다. 시가 밥도 되지 못하지만 만약 시가 없다면 세상이 삭막해서 어쩌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무 쓸모없는 것이 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가슴 아픈 사람들을 살아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을.

한창 시 공부하던 시절 문정희 시인의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읽으며 기둥 세우려는 남성들을 참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가정을 지켜야 하니 ‘기둥을 자르다니요?’ 하며 버릇없이 반박하듯 들이대기도 하지만 남자들 보다 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다하는 시인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상식에서 김종길 대시인이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 가운데 지금 처용아내와 문정희 시인 입담이 제일 거세다고 하셔서 와르르 웃었는데 어쨌거나 존경하는 시인 중 한 분의 작품 속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행운 아니겠는가?  ◐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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