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3-05-02 19:39

연인있어요

정 숙의 시 갑질하다와 이동훈시인의 해설
아트코리아 | 조회 481
갑질하다 / 정숙

시끄럽다
내 그림 속 연꽃, 해바라기 심지어 이파리들까지
서로 조명을 받고 싶다고
그 등쌀에 일일이 반짝이까지 덧칠해 주지만
정신 사나워 곧 지우기 시작한다

그들은 날 무서워한다
언제, 누가 어둠 속에 갇힐지 모른다며
우왕좌왕 눈알 굴리다가 나와 딱 마주치면 흠칫한다

내가 갑이다

한지 앞에서 먹물을 들고
누구를 물 먹일까 생각 중이다
내 주제에 어디서 이런 유세를 떨어보겠는가

그러나 때론 어둠 속에 서 있는 것들이
더 고혹적인 눈빛인 걸 어쩌겠는가

- 『연인, 있어요』, 시산맥사, 2020.

감상-  ‘갑질’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가 아주 빈번한 것에 비해서 표준국어대사전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다. 실제 ‘갑질’이란 단어를 사용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갑질은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고, 지위나 신분 혹은 고용 관계의 위치에 따라 상대적 약자를 함부로 몰아붙이며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이른다. 짧은 기간 안에 갑질이란 말이 폭발적으로 퍼지게 된 것은 부당한 대우가 그만큼 잦고 거기에 대한 반감도 깊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위 시에서 얘기하는 갑질은 결이 사뭇 다르다. 정숙 시인이 시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능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의 갑질은 화가의 갑질이고 동시에 시인의 갑질이다. 화가의 붓에 따라 연꽃과 해바라기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도 하니, 그림 대상은 자신의 더 나은 이미지와 개성을 보여주고 싶을수록 화가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화가는 갑질의 왕이다. 
  화가만 그럴까. 시인,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선택에 따라 시어가 춤을 추거나 쓰러지고, 시상이 연결되거나 끊어진다. 소설가의 고민이 더할수록 주인공의 운명이 살판나거나 엉망 되거나, 사건이 풀리거나 꼬인다. 음악가, 조각가, 사진가도 마찬가지다. 예술 작품으로 구현되는 예술가의 정신과 몸짓이 곧 갑질이다. 갑질이 치열할수록 갑질 대상인 작품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지만 그런 혼란과 파괴를 지나온 작품만이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상의 갑질과 분명 구별된다.
  일상의 갑질을 경계하기 위해서 누구든 평등한 존재란 인식을 잊지 말아야 하듯이 예술가 역시 자신의 갑질로 주어진 작품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암만 고군분투해도 “어둠 속에 서 있는 것들”을 온전히 그려내는 일이란 불가능할 것이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일상의 갑질이 손가락질당해 마땅한 일인데 반해 예술의 그것은 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동훈)



덧글 1 개
관리자 21/04/27 11: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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