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10-19 12:50

시가 있는 아침

겨울 숲
강문숙 | 조회 2,049

<14>

겨울 숲

 

 

이른 새벽, 처음 가본 겨울 숲은 신비로웠다.

유리알을 품은 듯 둥근 숲은 고요했고, 숲새들의 어린 잠 위로 새벽 안개가 날숨을 쉴 때마다 푸른 보랏빛의 산등성이가 조용히 출렁거렸다. 누구의 손길인지, 한번도 펼쳐본 적이 없는 길을 가만히 열어주었다.

나는 풀잎에서 짜낸 이슬로 갈라진 입술을 적셨다. 마음이 환해졌다.

노트를 꺼낸다. 지난밤에 썼던 <내가 갇힌 텅 빈 숲에는 공복의 바람만 날을 세우며 스쳐갑니다>라는 구절을 지운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선 숲에는 처음의 빛과 소리와 고요한 말씀들로 가득 차 따뜻해졌습니다>라고 다시 고쳐 쓴다. 푸른 유리알이 잠을 깬다.

푸른 유리알이 잠을 깬다. 아침 해가 천천히 숲을 들고 떠올랐다. 나는 낡아서 챙이 딱딱해진 모자를 벗고 얼굴을 지운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발자국마다 나무들이 자라고 생각의 잎사귀들이 피어났다.

나는 숲이 되어 출렁이며 숲을 깊숙이 품는다.

 

 

 

희망은 언제나 저의 온몸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텅 빈 겨울 숲이 품고 있는 것이 작은 새들의 잠과 꺼지지 않는 생명의 기미였다는 걸 눈치챘다면, 이미 우리는 희망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를 쓰는 일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뛰어넘어 희망을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겨울 뒤에 봄이 온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진부하다고 폄하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시(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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