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2-16 09:38

언론, 평론

대구문화 2023년 2월호(447호) 이사람-화가 김봉천
관리자 | 조회 427

이사람 ::

절로 흘러오는 변화

화가 김봉천


김봉천 작가가 작업실에서 신작 작업에 한창이다.
이번에 선보일 신작 ‘은-현’은
작가 뒤에 걸린 전작 ‘은-현’과
큰 폭으로 대비된 화면으로
놀라움을 자아낸다.



변화는 늘 화제가 된다. 그 폭이 크면 클수록 흥미는 배가 된다. 그간의 작품 경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김봉천 작가가 이번에 선보인 변화는 단연 흥미로울 것이다. 40년간 한국화로 분류되는 작업을 고수해온 작가는 시리즈마다 한국적인 소재를 하나둘 탈피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작가는 ‘한국화’라는 틀마저 완전히 벗어던지고 서양화 작품을 가득 들고 나왔다. 제목은 이전 시리즈와 동일하게 ‘은현(隱-現)’으로 고수했다. 이전의 한국화 작업과 어딘가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달 환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인 새로운 시리즈를 이달 3일부터 달서아트센터에서 120호 이상의 대형 작품을 더해 대대적인 전시로 공개한다. 김봉천 작가는 “벌써 새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라며 작품 변화에 쏟아진 주변의 다양한 반응을 전했다.​

한국화가가 그린 첫 서양화 시리즈

김봉천 작가는 그의 첫 서양화 시리즈를 크게 두 갈래의 경향으로 잡았다. 한쪽은 일정한 간격의 스트라이프를 말거나 접는 등 변형한 듯한 기하학적인 형상이다. 색은 두 가지로 절제하되 3D 화면을 켜 놓은 듯 사실적인 조형미가 신비롭다. 선을 변형시켜 만든 이 형상은 대부분 두 덩이로 이 둘 사이의 관계성을 읽어내도록 구성했다. 단순한 선, 형, 색 등의 반복으로 시각적 착시를 일으키니, 옵아트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김봉천 작가의 작품은 그러한 기법에 해석할 수 있는 감정과 메시지를 넣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말하자면 ‘내용이 있는 추상’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은유가 시처럼 깊고 매우 상징적이라 보는 사람마다 달리 볼뿐 아니라 볼 때마다 다르게 보여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한쪽은 이리저리 오린 색종이 모양들을 층층이 겹쳐놓은 듯 색상과 질감이 다채롭고 화려하다. 다양한 선의 변화를 모아 중첩해놓은 회화 시리즈다. 3~5개의 면이 중첩된 이 화면은 색상마다 발리는 형식과 안료의 종류를 달리해 오묘한 층위를 이룬다. 이처럼 동양적인 소재나 형태가 단 하나도 없으나 은근한 표현으로 상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동일했다. “새로운 것은 곧 익숙해지고, 그것은 곧 권태로워져 다른 것을 찾아 나서게 되기 마련입니다. 오래 하다 보면 변화는 절로 흘러옵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처음의 것과는 영 달라졌지만, 제게는 이것이 썩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지요.”

새로운 ‘은-현’ 시리즈 작품

한국화를 탈피하여 완성한 독특한 한국화

한국화의 현대화는 어찌 보면 ‘한국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실험’으로도 보인다. 한국화라는 매체를 쓰지 않고서도 한국화의 정신이 스미게 하는, 즉 한국화이면서 한국화가 아닌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였다. 그 속에서 김 작가는 일찍이 기법적인 면을 독창적으로 개발해 자기화, 현대화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평가받았다. 특히 표현 방식과 소재 활용에서 거침이 없었다. 작업 초기부터 그는 화선지 위에 파라핀을 녹여 판화 기법을 쓰는가 하면, 종이를 뜯어내는 방식으로 형상을 그리기도 했다. 이를 장지, 하드보드지 등으로 확장하며 동양적인 미감을 드러낸 것은 한국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그 속에 누구나 공감할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화의 경쟁력을 깊은 멋이 ‘우러나오는’ 미감으로 봤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가 나는 목조건물, 시간을 들일수록 깊어지는 장맛처럼 동양의 멋과 맛을 머금고 있는 것들은 질리지 않죠. 이것을 지금 시대와 소통이 잘 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동안의 과제였습니다.”​

깊은 멋이 ‘우러나오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아래와 위가 필요하다. 그의 작품에서 한국화에 없던 ‘층’이 필연처럼 등장하게 된 이유다. 이 방식은 40년간 점차 현대적으로 나아갔지만, 그것은 모두 동양의 정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화에서 사물을 나타내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달을 예로 들자면, 그것을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 달의 배경인 어두운 하늘을 칠해 달을 표현하지요. 비움으로써 나타나게 하는 ‘홍운탁월’의 방식입니다. 배경을 칠해 복잡한 대상을 그리려니 여간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걸 손쉽게 하려고 고민하면서 나름의 기법이 생겨났습니다.”

크레파스를 칠한 뒤 물감을 얹으면 반발성으로 인해 크레파스 위는 물이 들지 않는다. 그러한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 1983년 파라핀(초) 작업의 시작이다. 이후 1993년 선보인 ‘정동(靜-動)’ 시리즈에서는 두꺼운 장지를 4겹씩 덧대 그 효과를 대신했다. 종이 층 하나하나를 서로 다른 형태로 그리고 뜯어내어 형체와 명암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겹겹이 뜯어내는 ‘은-현’ 시리즈를 거쳐 신작인 캔버스 작업으로 이어졌다. 신작은 캔버스 위에 여러 모양의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를 채색하여 층층이 쌓아 올리는데, 이 방식 역시 나타내고자 하는 효과는 같다. 한국화에서 서양화로 작업을 완전히 바꾼 듯했으나, 작가에게는 자연스런 탐구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기존 ‘은-현’ 작품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하여

한편, 외형적으로는 ‘즉물성’을 배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기존 한국화에 없던 추상적인 화면을 구사한 초기작은 물론, 1993년 풍경화로 넘어온 후로부터도 발 너머 달빛 아래 보이는 흐릿한 풍경이라던가 안개 속에 가리거나 물에 비친 모습을 그렸다. 직접적인 사물이 아닌 그것의 그림자나 반사된 간접적인 형상이 그의 그림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렇게 시처럼 은근하게 드러낸 풍경은 실제가 아닌 은유와 상상으로 그린 관념적인 심상 풍경이라는 점에서 한국화의 속성을 계승한다. 최근 선보인 캔버스 작품도 이러한 생각을 전제로 하되, 전통적인 풍경을 더 보편적이고 단순한 차원으로 변주하며 ‘선’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물성을 배제하는 것은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동양적인 세계관을 나타냅니다. 현실은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있어, 한눈에 보이지 않고 희미하고 넌지시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진실과 가까워지려면 관계든 현상이든 더 깊이 생각하고 오래 들여다보는 자세를 갖추어야겠지요. 요즘은 너무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김 작가의 작업은 한 화면에 수없이 많은 층을 겹쳐놓기에 몇 배에 달하는 노동이 수반된다. 가히 ‘중노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작가는 지금도 해가 뜨는 아침 7시부터 해가 지는 오후 8시즈음 되어야 작업을 마친다. “하루는 스승 정치환 화백께 ‘그림이 이렇게도 힘든 것이 맞나.’고 물으니, ‘프로 선수가 훈련하는 과정을 보라. 그저 즐기는 사람은 아마추어다.’라는 답이 돌아왔죠. 지금도 작업을 마치면 다리가 휘청합니다. 그런데 작업에 깊이 몰입하는 자체가 너무도 즐거워요. 답도 없는 그림이지만, 하길 정말 잘했다 싶습니다. 아마 제가 다시 아마추어가 됐나 봅니다.” ​

글·사진|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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