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0    업데이트: 22-08-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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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華寺事蹟(동화사사적)
관리자 | 조회 183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道鶴동 산 124 桐華寺 경내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이 碑(비)는 朝鮮佛敎禪敎兩 宗第一首刹大本山 慶商北道 達城郡 公山面  桐華寺 蹟碑銘(조선불교선교량 종제일수찰대본산)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동화사적비명이라 하여 桐華寺事蹟(동화사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493年(新羅, 신라 炤智王(소지왕) 15)에 極達尊宿(극달존숙)이 創建(창건)하여 瑜伽寺(유가사)라 부르다가 832年(新羅, 신라 興德王(흥덕왕) 7) 心地王師(심지왕사)가 重建(중건)할 때 가져온 簡子(간자) 892개를 던져 그 떨어 진 곳에 佛堂(불당)을 이룩하니 지금의 籤堂(첨당) 뒤 작은 우물이 있는 곳인데 때마침 梧桐(오동)꽃이 天雨(천우)와 어울려 아름다움에 洞華寺(동화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933年(敬順王, 경순왕 7)에 靈照禪師(영조선사)가 삼창했는데 이보다 앞서 927年 高麗太祖(고려태조)가 桐藪(동수) 大戰時(대전시), 舍利塔(사리탑)에서 放光(방광)하고 禪師(선사)를 만나서 禍(화)를 免(면)하게 됨에 이를 感謝(감사)하여 절을 크게 도왔다 한다. 

    1190年(明宗, 명종 20) 普照國師(보조국사)가 사창, 1298年(忠烈王, 충렬왕 24) 弘眞國師(홍진국사)가 오창, 1606年(宣祖, 선조 39) 泗溟大師(사명대사)가 육창, 1677年(肅宗, 숙종) 3)에 尙 大師(상은대사)가 칠창, 1732年(英祖, 영조 8)에 冠虛(관허), 雲岩(운암), 洛濱(낙빈), 晴月(청월)이 함께 팔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내력과 寺刹(사찰) 규모를 적고 있다.

    원래의 碑(비)는 마멸되어 1931年 3月 住持 黃普應(주지 황보응)이 다시 세우고 碑文(비문)은 藉堂居士(자당거사) 金鼎來(김정래)가 撰(찬)하고 肯石 金鎭萬(긍석 김진만)이 썼다.

    巨大(거대)한 화강암을 圭形(규형)으로 가운데를 파서 다듬은 壁碑(벽비)인데 碑蓋(비개)를 龍頭(용두)로 장식하여 높이 50㎝, 가로 350㎝이며 碑身(비신)의 높이는 208㎝, 가로20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