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    업데이트: 22-05-10 14:34

보도자료

화가 김상용의 암시적暗示的 공간과 찰나적刹那的 풍경
아트코리아 | 조회 1,003

화가 김상용의 암시적暗示的 공간과 찰나적刹那的 풍경


화가 김상용은 신선한 대기 중의 빛과 같은 자연현상을 통해 모든 사물과 교감하면서 심리적 상상과 경외적敬畏的인 느낌을 찰나의 손놀림으로 표현해 내는 작가이다.
그가 구사하는 풍경은 눈에 들어오는 ‘자연의 모습’을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환기시켜 현재의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는 묘미妙味가 있다. 자연현상의 오묘한 섭리나 형상의 해석에서 독창적인 시각은 그의 손놀림에 의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의 렌즈와 같은 판박이 형태는 절대 아니다.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사물의 원리와 마주하며 그것을 화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현상에 대한 임의적인 선별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조형공간을 변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작가 김상용은 무시로 여행을 떠나거나 아니면 일상 어디에서도 시선을 끌어당기듯 포착된 풍경들은 놓치지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드로잉하여 화첩畵帖에 남겨두는 습성이 있다. 찰나적인 충동에 이끌려 순간 포착으로 담아둔 풍경들이지만 그 자신 만의 견고한 뎃생력과 형태의 명확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창의력創意力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는 대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 나가다가 어느 시점에 와서는 형태를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단순화 하면서 그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형상화 하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른바 현장 사생寫生을 통해 남다른 통찰력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세상의 모든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반복된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다. 특히 작업과정에서 빛을 이용한 화면 속 사물의 변형은 작가의 주관적 의미를 개입시키며 작가 스스로의 심리적 움직임에 따라 자연을 표현함으로써 그 내면을 명쾌하게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공간개념으로 밝은 낮과 같은 장소에서 밤에만 보이는 신기루처럼 표현한 야경夜景의 공간은 작가 김상용에 의해 도시의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화려하고도 높은 공중 누각樓閣의 야경을 마치 별무리 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한다. 태곳적 사람들이 살아온 억겁億劫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낮이 태양의 신 아폴로가 지배하는 전통적 질서의 시간이었다면, 밤이란 휘황 찬란한 향락과 나른한 휴식, 그리고 달콤한 퇴폐가 스며든 디오니소스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도시는 낮 동안 차갑고 복잡하고 냉정하며 덥고 습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언제나 한여름의 땡볕에 녹을 듯한 아스팔트처럼 열기를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회색빛의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는 것이 도시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글라스타워에 휘감긴 고층건물들은 강렬한 햇빛의 반사경으로 노출되지만 결코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자연이 아닌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조형된 인위적人爲的인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가로등과 고층건물과 오가는 자동차에 불이 켜지면서 도시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접어든다. 이때부터 뭔가 말하고 움직이고 시선과 정신을 집중케 하는 또 다른 현실의 시간이 작가 김상용의 화폭을 통하여 펼쳐진다. 이 시간은 그에게 있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맘껏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소중한 여유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깊어가는 도시의 밤을 관조하다 보면 어느새 한 폭의 풍경화가 완성된다.
밤의 시가지는 암흑에 갇힌 여백의 도시가 되지만 작가 김상용의 작품 속 야경은 짙은 푸르름에 깔린 신비한 감성이 배어나 어둠 속에서도 그 내부는 너무도 밝게 드러난다. 특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듯한 도시의 밤은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빛이 은하수를 이루고 현란하게 반짝이며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도시의 낮과 밤은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이렇듯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공간과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강조한다면 작가 김상용의 작품 속 도시 야경이 주는 포맷은 편안하고 따뜻한 대기 중의 산소 같은 순수한 빛의 이미지다. 인간이 눈을 통하여 모든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은 모두 빛에 의한 현상에서 비롯된다. 빛은 색과 형태를 지각知覺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하여 “색은 빛의 소산이며 빛은 색의 모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색채의 역할 또한 자연 물체의 재현성을 나타내고 지각적 자극에 의해 순수한 감정을 인간의 마음 속에 인입시켜 준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성은 이러한 색채로 인해 발생하는 연상聯想이나 기억의 상징으로 존재하며 정신적인 토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 김상용이 추구하는 색채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심점이 된다. 어쩌면 농도 짙은 수채화 기법으로 몇 차례의 덧칠이 가해져 탁해질 만도 한데, 그의 작품에서는 전반적으로 맑은 기운이 감돈다.
‘빛과 색채’는 이처럼 회화에서 사물을 재현하고 주관적 감정과 이미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그가 사용하는 ‘색’은 화면 위에서 개인적인 감성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모하고 이러한 ‘빛과 색채’를 다양한 의미와 기법으로  창작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빛에서 나온 색채가 현실 재현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그가 재현한 현실 중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상이 ‘바닷가 풍경’이었다. 바다는 표면적인 모습을 통해 동적動的인 바다와 정적靜的인 바다로 나눌 수 있으나 그의 바다는 늘 정적인 바다에 집중되어 있다. 정적인 바다의 모습은 희망이나 염원, 안락, 평화, 동경을 주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흔히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이 사후死後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용궁龍宮의 여신상女神像으로 회귀하는 샤머니즘의 대상으로 우리 생활문화권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물의 꿈』에 따르면 “바다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크고, 항구적인 모성적母性的 상징 중의 하나” 라고 했다. 바다가 물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며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체와 특히 여성에게 있어 태아 출산의 근원인 양수羊水가 말해 주듯 물은 생산력이 풍부한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 김상용에게도 정적인 바다가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로서 즐겨 다루는 작품의 주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구사한 대부분의 풍경을 보면 그것이 수채화로 다루어졌든 유화로 다루어졌든, 아니면 목탄이나 콘테 같은 드로잉화로 남겨졌든 간에 불필요한 군더더기 묘사가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경관만 묘사하고 그 외는 여백으로 두거나 아님 무한한 공간감을 부여해 주는 방식의 구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물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도 그 인물 자체가 지닌 특징만 포착해서 묘사를 하되 배경적인 묘사는 일체 생략 하고 있다. 생략된 이미지들은 결코 미완성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비록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뭔가 뒷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듯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작가 김상용에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가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복권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마련한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복권기금 문화나눔사업은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고 또한, 그 창작물들을 대중들과 함께 문화나눔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가 삶의 연속적 탐구로 화폭을 통해 펼쳐온 이야기가 앞으로도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궁금하지만 언제나 대중들 속으로 함께 걸어가는 소박한 일상의 풍경들은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미 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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