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    업데이트: 22-05-10 14:34

보도자료

[내멋대로 그림읽기]김상용 작 '겨울날 수성못' mixed on paper (2020년)
아트코리아 | 조회 285
[내멋대로 그림읽기]

김상용 작 '겨울날 수성못'
mixed on paper (2020년)


김상용 작 '겨울날 수성못' mixed on paper (2020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적어도 30초 이상 쳐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밤하늘에 얽힌 얄팍한 천체물리학 지식 하나를 끄집어내면 '올베르스의 역설'이란 게 있다.

17C 중반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표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이 우주는 '정적인 우주'로 "무한하고 무한개의 별이 공간에 고르게 퍼져 서로의 중력으로 평형을 이룬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19C 무렵 독일 의사이자 천문학자인 하인리히 올베르스가 뉴턴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뉴턴의 말대로라면 밤하늘은 별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지구에 도달하는 별빛도 무한대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 즉 밤에도 어두워지지 않고 별빛으로 가득해 항상 낮처럼 밝아야 하는데 왜 밤은 반드시 어두울까?라고 한 지적을 일컬어 '올베르스의 역설'이라고 한다.

다시 시간은 흘러 1930년대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그 역설의 답을 찾았다. 우주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먼 우주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팽창하면서 먼 곳에서 날아오는 빛은 점점 변해서 붉은 빛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전파로 바뀜에 따라 밤하늘은 어둡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 밤의 계보는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 잠의 신 '히프노스'가 태어났고, '히프노스'와 휴식의 여신 '파시테아' 사이에 꿈의 신 '모르페우스'로 이어진다. '모르페우스'는 사람들의 희망을 충족해주고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올베르스의 역설'이 풀려 밤이 대지 위에 내려앉을 때, 꿈속에 나타난 '모르페우스'는 현실의 팍팍함을 녹여줄 달콤한 세상으로 인도하니, 이 모든 게 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김상용 작 '겨울날 수성못'의 배경도 밤이다. 최상의 감상 포인트는 밤풍경을 묘사한 색감이다. 차가운 색인 청색이 가득한 밤풍경은 다소 차갑게 보일 수도 있지만 깊이 있게 오랜 시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따스함이 몰려온다.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과 산 아래 건물에서 새어나온 흰 빛이 수성 못 수면위에 데칼코마니로 반사된 모습은 청(靑)과 백(白)의 조화와 함께 밤의 적막감을 어김없이 화면 밖으로 뿌려내고 있다.

김상용은 암시적 공간과 찰나적 풍경을 빛과 색, 형태로 구축하는 화가이다. 그는 밤의 색감과 빛을 표현하기 위해 수용성 아라비아고무를 교착제로 반죽한 수채물감을 쓴다. '과슈'라 불리는 이 미술재료는 색조는 선명하지만 유화와 같은 윤기는 없어 가라앉은 부드러운 맛을 낸다. 색을 섞으면 선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주로 단색으로 쓴다. 김상용의 밤 빛깔(푸른 색)이 실제 자연의 밤 빛깔보다 더 선명하고 깊은 공간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 오늘 밤 꿈에 '모르페우스'의 초대를 받고 싶다. 짙고 푸른 수성못 물속으로 어둠이 스며들면 '모르페우스'의 손을 잡고 저 멀리 심우주(深宇宙)를 향해 빛의 여행이나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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