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06-28 16:02

언론 평론

안동대학 학군 출신 모임 - 에서 발췌
김성규 | 조회 948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김성규 동문은 오늘도 퇴근길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
우고 정겨운 산길을 달릴 것이다. 그의 이마에는 늘 땀이 송골송골하다. 차 짐칸엔 스케치북, 카메라 같은 그림도구들도 있지만, 운동 도구들이 더 많다. 마라톤화, 수영복, 사이클, 골프백까지…! 마라톤을 넘어 철인 3종 경기, 여행 등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추구하며 나이를 잊고 기쁘고 활달하게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기만의 특별한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까까머리 학생에서 ROTC 임관 후 10년 세월을 군문에서 보내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누구보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비켜서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돌파력의 묘미를 즐기는 곡예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런 특별한 동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을 때는 휴일인데도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화실에서 곧 있을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휴일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세상의 모든 물상은 절대 예사로운 것이 없다. 요즈음도 어릴 때 뛰놀고 달리던 그 풍경이 가장 친근하고 푸근하다고 하며 아름다운 우리 자연을 찾아 캔버스에 표현하는데 그 속에는 언제나 우리들 삶의 정겨운 이야기도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재학 당시 모교에는 미술시간이 따로 없었다.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미술도장 특활반에 들어가 페인트 물감을 만지면서 색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그림에 대한 허전함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이 없는 휴일에는 혼자서 시내 모처에 있는 초상화 교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남의 좋은 그림을 연필로 따라 그리기도 했단다. 물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도 했지만, 당시 미술학원에서 다루는 석고 소묘는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부터 막연히 화가를 꿈꾸며 보았던 밀레의 ‘만종’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긴 날을 애타게 추구한 끝에 꿈을 이루었다는 말을 들을 때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동문 중에 그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화단에서 늘 외롭고 힘들게 혼자 개척해 나갔다. 고교 동기들이 모여도 자신의 이야기는 딴 나라 이야기라 잘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많이 외로웠다. 그러나 이제는 학연을 뛰어넘어 많은 화우들과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나온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모교가 더 고맙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싫어하지 않았고 군 복무 중에는 특수부대 경험이 있어 자연히 운동을 가까이 할 수 있었는데 직장을 바꾸고 나서부터도 운동을 더 하고 싶어 찾던 중 그림을 그리면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즐길 수 있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도 운동까지 할 수 있는 마라톤을 1999년부터 시작했고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결과 명인의 경지까지 올랐는데 마라톤풀코스만 뛰는 것에는 매력이 없어 100km이상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200km이상을 달리고 나니 그것도 단순한 달리기만 하는 것이 식상하다는 판단에 따라 2004년부터는 바다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이 조합된 철인 3종 경기에 다시 도전했으며 급기야 2006년에는 코리아 아이언맨코스도 완주하였다고 한다. 그의 각종 마라톤, 철인경기 완주 경력은 다양하다. 특히 황영조와 일본 이브스키 마라톤을 다녀 온 일과 2003년 제주도 일주 200km 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와 2006년 제주도 코리아 아이언맨 대회(바다수영3,9km,사이클182km,마라톤42.195km)를 완주한 일, 바다 수영을 마치고 감포에서 사이클을 타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 상에서 동료 사이클과 접촉한 사고로 어깨가 부러져 얼마 동안 병원 신세를 진 일 등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는 훈련 량을 조금씩 줄여나간다고 한다. 또한 운동 아니고도 할일이 너무 많다. 나이에 맞게 주말에는 찾아 봐야 할 대소사도 많고 가정사도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월의 중심에 들어서 버린 때문이다. 그래도 운동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중독 상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운동하고 그림 그리고 제자들을 지도하며 힘들고 바빠도 그에게는 언제나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빈한한 시절에 객지에서 고교생활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왔기 때문에 이후 남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군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고교시절에 힘들었던 ‘아베베코스’를 절대 잊을 수가 없고 틈틈이 열심히 책을 읽은 것이 오늘날 창작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고 제자들에게도 늘 독서하기를 권장한다. 그래야만 창의력도 생기고 자기 철학이 서며 앞을 보는 안목도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 교사는 미술가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조화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심성을 만드는데 일말의 조력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름지기 학창시절에 기초와 기본을 튼실하게 하도록 옹골차게 지도하여야 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고 했다.

김성규 동문은 현재 구미에 있는 개교 65주년의 명문 사학, 오상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지만 그 전엔 육군 장교로 10년을 군에 충성했다. 일선 보병사단의 주요보직인 인사장교로 나름대로 동기생들보다 앞서 나갔으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운명을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길을 찾겠다며 군문을 접고 교직의 길을 열었다. 그는 주장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과의 고독한 경주인 운동도 하지만 부단한 자기 정진의 방식으로 독서와 여행을 병행해서 즐기고 오늘도 학문에 목말라하며 지금도 배우는 일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학생으로서 젊은 선생님들과 여름, 겨울 방학에 모여서 수강하였고, 교육대학원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은 변화를 즐겨야하고 내면으로든 외양으로든 매일매일이 새로워질 때 그 삶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교직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끝없이 추구하다보면 삶의 황혼 즈음에는 하나의 명작은 만들지 않겠느냐는 겸허한 마음으로 살며 언제나 텅 빈 마음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고 말을 하며 긴 이야기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모교와 동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전하는 따뜻한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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