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18-05-11 10:21

Critics

형상의 DNA 점과 선의 해부학_최병식 (미술평론가)
아트코리아 | 조회 283

형상의 DNA 점과 선의 해부학

최병식
미술평론가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뉴기니아관에서 해골로 장신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권정호. 이를 계기로 해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1980년대를 시작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그의 ‘해골’시리즈는 중년시절 그가 던져놓은 화두였다. 즉 ‘삶’과 ‘죽음’ 등 동양사상의 철학적 번민으로 이어지는 고심들이 담겨지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뉴욕 유학 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언어가 된다.
 
이와 함께 그가 줄곧 관심을 가졌던 불교와 도가사상에서는 사실상 ‘생노병사’의 문제에 대하여 밀접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중년시절까지 권정호에게 지속적인 반문을 던진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가 말하는 해골의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현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즉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박정희대통령 시절 끊이지 않은 반독재 데모와 부마사태, 광주항쟁 등은 여전히 암울한 시절에 대한 잠재적인 상징처럼 부호화된 부분 역시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해골은 다의적이다. 초기 작업에서 다양한 색채와 함께 다소 장식적인 측면으로도 등장되고 있는 점에서 단지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를 멀리 벗어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해골이 작가의 어린 시절로부터 연유되었다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롭다. 의사였던 부친이 운영하던 칠성의원에서 보았던 환자들의 모습, 역시 의대생 형의 책상에 놓여있던 해골의 의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와 함께 일면에서는 해부학적인 차원으로 각인된 이미지의 하나였던 것이다.
 
어렵고 두려운 대상으로가 아닌 ‘Pop으로서의 해골’로 이해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은 결국 죽음과 암울한 시대적 상징이자, 그냥 조형적 소재로서 등장하는 회화적 대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작업이 갖는 특징은 끊어진 짧은 선들의 집합이었다. 그의 이 독특한 선묘들은 ‘점묘화’가 아니라 ‘선묘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형태로 자신의 작업을 종횡하고 있다. 굳이 그 뿌리를 생각해 본다면 미국유학시절부터 미니멀리즘의 경향이 짙게 나타났고, 제스퍼 존스(Jasper Johns,1930~)등의 경향이 영향을 미치면서 반복되는 선묘 드로잉을 실험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선들은 짧게 잘려진 단편적 선으로 나타나면서 일면 서예의 필획개념까지 반영되는 등 자신만의 진화를 거듭한다.
 
화면은 흑백의 모노톤으로 변모하였고, 마치 붓글씨를 쓰는 것 같은 화면으로 변화된다. 굳이 회상한다면 학생시절 죽농(竹農) 서동균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1만번을 긋는 획의 연습을 강조하였던 추억이 생각난다는 권정호. 그 과정에서 무심결 수없이 그었던 먹선들이 어느새 화면의 선이 되어버렸다는 단상에서 선묘의 잠재적 배경이 유추된다.
 
분화의 분화를 거듭하는 ‘독도법’이라고나 할까? 그것을 그는 ‘DNA’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드로잉방법은 선이 아니라 무수한 ‘검정막대기’들이 분절된 해체와 조합을 이루는 것처럼 변모한다.
 
이 시점에서 그의 작업은 ‘퍼즐 맞추기’처럼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내야만 하는 시각적 운동량을 요구한다. 몇 겹의 망막을 거쳐 조합된 형태, 형태이전의 선묘, 형태이면서도 선묘 그 자체인 채로 분해된 그러한 작업표상들을 연출하고 있는 권정호의 작업은 거대한 모자익이거나 망점이 모호한 해체된 풍경들이다.
 
그의 선에는 굵기의 변화나 색채의 농담마저 생략된다. 매우 딱딱하고 무표정하다. 이러한 선들은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그믈 코’같은 ‘조합언어’로서 망막을 형성하며, 막대기들로 만들어진 세포조직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변신은 다의적 접근과 해석으로 이어지는 그만의 코드를 마련한다. 단순히 이어진 선묘방식과는 달리 그의 무표정한 선들은 선과 선이 교차되거나 형태를 암시하면서 매우 다의적인 의미를 구성한다. 즉 형태이면서도 형태가 아닌 가시광선과 같은 화면을 구사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매우 독특한 현상으로서 형태의 견고성, 선명성을 약화시키는 반면 특히 ‘오수’ ‘추모’같은 작업에서처럼 현장의 분화된 장면들을 각인시키는 데 새로운 기법으로 활용되었다.
 
2003년 192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 비극의 이 사건에 대하여 그의 분절된 선들이 집합되기 시작했다. ‘시민추모’ ‘소방관’ ‘추모’ 등 수십여 점의 시리즈들에서 짧게 잘려진 선들이 충격에 빠진 현장의 슬픔을 담아내는 기록적 의미로 분출된 것이다.
 
그의 짧은 선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인 이 시리즈를 계기로 하여 그는 다시 종이로 수를 놓는 새로운 작업에 돌입한다. 즉 믹서기에서 종이죽을 만들고 다시 그 죽을 한 점 한 점 화면에 올려붙임으로서 마치 화강석과 같은 디테일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작업과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추모제’와 같은 작업은 그 대표적인 경우로서 ‘짧은 선’과 ‘종이죽’이 동시에 시도되어 점과 선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반복’의 의미는 관류에(貫流) 이르는 체현의 과정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돈오(頓悟)에 이르려는 체득의 수업과정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던 그는 어느 작가보다도 집요한 반복과정을 즐겨한다. 즐겨 한다기보다도 마치 숙명처럼 생각하고 천착해간다. ‘다르게 작업하기’ 실험의식이 발동하면서 신호등과 같은 자신만의 부호를 해부학처럼 구성하기도 하고 영상과 설치작업을 병행하는 등 변신과정을 그치지 않지만 권정호의 작업에서 ‘반복’된 작업과정과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손의 작업’과정을 지나칠 수는 없다.
 
가득 채우기’ 역시 그의 한 키워드처럼 보이지만 최근작 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역행적 의미로도 해석된다. 오히려 풀어지고 여백을 활용하고 응축된 변신이 순리라면 순리일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작업은 반대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극단의 미니멀적 추상드로잉으로부터 구상적 현실로 이어져가는 작업진행 과정 역시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구참사와 같이 시사적 사건들을 다룬 시리즈에서 더욱 구체화되어진 이러한 경향들은 그의 이와 같은 변화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점과 선의 해부학교실’을 보는듯한 그의 실험들은 적어도 권정호만의 세계를 대하게되는 생소함과 기대감이 동시에 작용한다. 제 2의 청년시절을 보내고 있는 그의 독특한 작업스타일과 과정은 순수조형의 절대세계를 상실해가는 요즈음 세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최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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