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    업데이트: 12-12-20 17:42

작가노트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해체/조덕표기자
권정호 | 조회 696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해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해체의 상태로 파악, 회화적으로 재구성하는 비구상 계열의 서양화가 권정호씨.
1944년 경북 칠곡군 동명에서 태어난 작가는 대구에서 성장했다. 7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벌이면서 82년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는 86년 뉴욕 프랜트연구소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그의 개성적인 작품세계가 열린다.
단언할 수 없는 어떤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붓질의 흔적들과 설치물들에 잠복하고 있는 도발적 리얼리티, 결코 일상적으로 감당하기가 벅찬 두려움과 낯설음, 이렇듯 작가가 기획하고 있는 조형약호들에 대한 풀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역설의 논리, 혹은 가치전환이라 할 관점의 전환이 작품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관점의 전환은 동양과 서양, 음과 양, 하늘과 땅, 삶과 죽음 등 자연의 이치가 순환적인 관계에 있듯이 서로 한 화면에서 분리되지 않고 공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작가의 작품은 어지러운가 하면 아늑하고, 따분한가 하면 감칠맛이 있으며, 암울한 분노와 권태의 정점 속에 포용의 너그러움을 담지하고 있다. 이처럼 인위적인 꾸밈 내지는, 물리적 어우러짐이라 할 중심의 해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작가의 조형언어는 수의 적정비례에 의한 미적인 조화를 강조하는 관습적인 회화관념의 독성을 송두리째 용해시키는 해독제의기능을 하면서 #의 상식적인 통념들을 괄호 속에 묶어 두는 일에 일단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 청, 황, 흑의 4가지 기조색을 중심으로 색채와 형태의 팽팽한 싸움과 공간분할이 화면 전체를 견고히 구축하면서 이미지는 스스로 그 외의 어떠한 ##도 표현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에서 그 행위가 정착시키는 자유분방한획과 비정형의 색면에 의해서스tm로 형성되어가며 동시에 어쩔수 없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작가가 현대인의 정신적 불안이라든가 심리적 위기의식, 그밖에 순간과 영원, 시간과 공간의 문제등을 경험적인 현실세계와 관련하여 상징적으로 반추시켜 온 것에 비하면, 최근 작품들은 작가가 이러한 현실적 행위로 변용함으로써 회화로 하여금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의 작품들은 부분적으로 구상적이며, 추상적이기도 하고 , 상징적인 표현을 시도하는가 하면, 표현주의에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근래에 이르러 기(氣)와 선(禪)에 깊은 관심을 쏟아 인간에 관한 내면성과 필연성을 강조하며 동양정신에 심취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용출하는 정열을 내면으로 억제하고, 조용하고 섬세한 정적인 품성으로 일관해 온 그는 내재적 표현의지를 활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강인한 선과 찬란한 색채의 조직적인 점묘로 화폭에 분출하고 있다. 즉, 담대한 기운의 기고고속에서 끊임없는 의식의 전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로움과 다양한 기법의 구사, 동양적인 정신과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힘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일련의 작품들은 정적인 아름다움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눈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오며, 독자적인 회화가 갖는 낯설음을 안겨준다. 말하자면 인간과 그 존재상황이 주는 갖가지 압박감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있는 순수 추상의 세계에 몸을 던짐으로써 좀 더 자유스러운 삶을 표상하고자하는 의도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작가가 가시적인 대상에서 비가시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독특한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반응을 요구하며,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켜주고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구상적 이미지와 추상세계의 결합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변증법적인 통합과정에 다름 아니며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볼때는 미시적 시각에서 거시적 시각으로의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좀더 밝고 추상적인 경향으로 이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상이라든가 추상으로 구분하려는 구태의연한 이분법적 사고가 뿌리깊게 남아 있는 데 작가의 회화적 발상에서는 이것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조형적 이미지, 즉 회화란 한 시대의 조형에 대한 사변적 체험의 양상을 확인시키고 보여준다. 그러나 나아가서 회화는 인간에게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내게하는 모델과 귀감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이미지의 리얼리티는 이미지 자체의 구체적 성격에 있다. 왜냐하면 말과 마찬가지로 그 이미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체적 오브제든 회화이든 미술을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는 자극적인 공동의 기반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인 것이다." (프랑카스텔)
작가의 작품이 그때 그때의 주면 상황과 환경, 작가의 정신적 편력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이와같은 기초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권정호씨의 회화는 예술의 순수성만을 추구하여 자기완결성에 빠져 결국 논리나 고정관념으로 빠지는 그러한 형식주의적 추상미술과는 분명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형식주의자는 아니다. 정신속에 형식을 만들고 형식속에 정신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배하는 사고의 나의 신앙이 곧 확신이다."(작가노트 中)
그의 작품의 특징이 어느 고정된 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해체, 재구성된 구상적 이미지와 추상세계를 오가면서 늘 변화를 보이고 진행과정에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예를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해결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들 중 '해골들'이나 '소리'시리즈는 추상세계가 이전의 해체, 재구성된 구상적 이미지와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이며 연장이라는 느끼을 갖게 한다. 또 그양상은 밝고 푸른색 계열의 추상적 이미지와 이와는 전혀 무관한 듯이 보이는 해골 형상의 이미지가 한 화면에 공존하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작가의 새로운 회화들은 또다른 차원에서는 추상과 표현주의 양식간의 통합,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권정호씨의 작품들은 동양과 서양의 사고 습성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오랫도안 미국인 화가 제스퍼 존스의 작품을 연구, 음미해온 작가는 특정한 주제를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구할 때 받게되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는 자신이 다년간에 걸쳐 몸소 경험한 뉴욕생활에서 얻은 고뇌의 결과이며 인간적인 체험이 그 토대인 것이다.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 부단한 시도와 실험이야 말로 창조적 의지의 전향이자 자기 확립의최선의 수단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친 형식 논리에 지배되는 것은 양식적(樣式的)인 완성을 기할 수 있는 반면에 개성의 상실을 초래하기 쉽다. 물론 대상의 충실한 묘사나 기법의 완성은 화가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지만 이미 권정호씨의 작품세계에서는 이런 기본 논리들이 거의 회화성 접근에는 크게 연관된다고 할 수 없다. 액션 페인팅은 어느 면에서는 항상 창조에 관한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을 치열하게 이끌어 나가는 가운데 그 덧없는 무상함까지도 여유롭게 감싸는 그의 삶에 대한 예술적 열정은 이번 전시회에 드리워져 있는 아이시스의 베일 그 너머를 감지 해 볼수 있는 좋은 가늠자리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나아가 그의 이러한 열정이 일상성에 대한 격렬한 외침이나 그것으로부터의 무조건적 탈출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이번 기획전이 끝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예비단계임을 밝히는 그의 의욕적인 탐구자세를 통하여 충분히 확인 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작품에서, 강한 표현을 위해서 원색을 사용하고 불교미의 개념을 적용하기 위하여 붓질을 한다. 교정없이 원시적이고, 아무 생각없는 상태에서 나의체험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는 일회성을 지킨다. 공포감을 자아내기 위하여 해골을 선택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암시한다. 과학적 허구의 경향은 어떠한 의미를 초월해서 내적 , 정신적 갈등을 포함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무서움, 못 견디게 생각되어지는 상태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나는 설명적이고 형식적, 표현적인 3개의 의미의 춤을 만든다..."
-조덕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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