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늘 이혜인 회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그 색이 화면에 놓이는 방식은 매번 달랐다. <among us>에서 색은 툭툭 던져진다. 작가는 너무 묽지도, 뻑뻑하지도 않은 물감을 붓에 묻혀 툭 긋고, 평붓의 형태가 고스란히 반영된 사각형을 만든다. 그린다기보다는 붓과 캔버스를 접촉시켜 하나의 형태를 발생시키는 것에 가깝다. 이전 작업에서 붓이 주로 화면 전체에 색을 입히는 역할을 했다면, <among us>에서 붓은 색을 옮기는 동시에 형태도 만든다. 붓질이 시작되고 멈추는 두 지점과 양 가장자리에 물감이 쌓여 도톰해진 네 변, 그리고 상대적으로 편평한 안쪽으로 이루어진 붓 자국 그 자체가 작업의 회화적 정체성을 이룬다.
작품마다 색의 조합은 다르지만, 구조는 일관된다. 한 가지 색이 화면 전체를 감싸는 바탕이 되고, 그 위에 놓이는 색면들은 서로 다른 빈도로 등장해 화면에 강약을 만든다. 어떤 색은 자주 찍혀 화면 전체의 결을 만들고, 어떤 색은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타나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된다. 색면들의 배열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장면을 묘사하지 않음에도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는 화면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신화(황금의 비로 변신한 제우스)와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다>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 하늘에서 금빛 알갱이가 쏟아져 내리는 신화적 장면은 화면 가득 흩뿌려진 색면들과 겹쳐진다. 비슷한 남성의 형상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반복되며 공중에 떠 있는 <골콘다>는 유사한 형태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화면을 부유하는 <among us>와 형식적으로 닮아 있다.
작품 제목은 성서에 나오는 표현인 ‘우리 가운데’(요한복음 1:14)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종교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among us>의 ‘우리 가운데’는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하며, 서로 다른 색과 크기의 색면들이 하나의 화면에 함께 머무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각 색면은 작은 액자처럼 외부와 구분되는 경계를 갖고, 무수히 많은 색면이 각자의 색을 유지하며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색을 조합하고, 붓을 들고, 찍고, 긋고, 다시 찍는 단순한 동작이 반복된다. 하나의 형태에 한 번의 행위가 들어 있고, 수많은 행위가 화면에 축적된다. 작가는 같은 붓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색면마다 서로 다른 손의 움직임이 남는다.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이혜인의 <among us>는 그 미세한 어긋남을 하나의 회화적 가능성으로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