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8    업데이트: 24-03-26 13:3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79> 정학교(1832∼1914) '괴석난죽도'
아트코리아 | 조회 108
난죽이 지닌 지위에 반기 들다…괴석·화분 주인공으로 재배치



정학교(1832-1914), '괴석난죽도', 1911년(80세), 비단에 먹, 145.2×45.2㎝, 호림박물관 소장


'괴석난죽도'는 괴석과 대나무, 분란(盆蘭)을 그렸다. 수묵의 은은한 우아함이 정갈하면서도 냉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담묵을 맑은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은빛 색조인양 활용한 독특한 묵법이 먼저 눈에 뜨이고, 화분과 괴석의 과장된 크기와 기묘한 장식이 비현실적이다.

괴석 주위의 대나무와 난초가 앙증맞다고 할 정도로 아기자기해 낯설어 보이는 것은 돌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비상식적으로 거대한 돌 위로 다시 터무니없이 거대한 분란이 있다. 괴석은 대각선으로 솟구치는 힘찬 기세이고, 화분은 수직의 성벽 같다. 화분의 빙렬(氷裂)무늬와 꼬불꼬불한 장식, 괴석의 갈고리 같은 작은 태점은 난죽과 어울리지 않는 화사함이다.

사군자 분야에서 즐겨 그려진 죽석과 분란의 괴석, 대나무, 난초, 화분 등을 이전과 딴판으로 재배치해 난죽이 아니라 괴석과 화분이 주인공인 듯하다. 값비싼 골동품인 화분이, 장수의 상징인 돌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괴석난죽도의 기묘한 환상성은 주연과 조연의 위계가 바뀐 구성 때문인 점도 있다. 괴석은 장수와 함께 세련된 취향의 상징이고, 분란은 공곡유향(空谷幽香)의 난초를 서재로 모셔와 생활 속에서 가꾸고 향유한 청공물(淸供物)이다.

그러고 보면 한갓 식물인 매난국죽에 과도한 이념을 부여해 우월적 지위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것은 군자를 이상화하며 도덕사회를 추구한 유교 이데올로기와 연동된다. 1911년 팔십의 나이에 그린 정학교의 괴석난죽도 제화는 군자인 난초와 소인인 쑥을 대비시켰다.

계정증재수십총(磎亭曾栽數十叢)/ 시냇가 정자에 일찍이 수 십 포기 심었더니

자경녹엽영춘풍(紫莖綠葉領春風)/ 자줏빛 줄기 녹색 잎이 봄바람을 맞이하네

연래소애과삼척(秊來蕭艾過三尺)/ 한 해 사이 쑥대가 석 자 넘게 자라

백수간도사몽중(白首看圖似夢中)/ 늘그막에 난 그림을 보니 마치 꿈속인 듯하네

신해(辛亥) 유하(流夏) 몽인(夢人) 정학교(丁隺喬)

마지막 두 글자가 '몽중'이어서 이 시를 골랐을 것 같다. 정학교의 호는 '꿈꾸는 사람'인 몽인이다. 정학교는 몽인 호를 '꿈속의 사람' 몽중인(夢中人)으로,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 몽중몽인(夢中夢人)으로, 몽중몽(夢中夢), 몽우몽(夢又夢) 등으로 교묘하게 '몽'자를 중첩시켜 호로 사용했다. 몽(夢)은 인생무상을 설파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학교의 괴석은 꿈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몽환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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