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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

대구의 근현대기 서화(書畵)와 문(文)의 문화 ⑰ - 아양루와 석정(石亭) 변성규(1890~1962)의 ‘아양루’ 편액 2015년 5월(354호)
아트코리아 | 조회 628

대구의 근현대기 서화(書畵)와 문(文)의 문화 ⑰

 

아양루와 석정(石亭) 변성규(1890~1962)의 ‘아양루’ 편액

 

 

  금호강 동쪽 동네라 동촌(東村)이라했던 동촌 강가절벽 위에 아양루가 있다. ‘아양(峨洋)’이라는 누각이름은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열어구의 『열자』 ‘탕문’편 두 친구 이야기에서 나왔다. 한사람은 거문고 연주를 잘 했고, 한 사람은 그 소리를 잘 들었다. 두 사람은 백아와 종자기이다. 백아가 연주하면 종자기는 “우뚝우뚝한 태산 같구나(峨峨兮若泰山)”, “넘실넘실한 강물 같구나(洋洋兮若江河)”라고 감탄했다. 종자기는 잘 들을 줄 알았다. 이심전심한 두 사람의 사귐은 지음지교(知音之交),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사자성어로 남았다. 금호강은 원래 갈대가 많아 바람이 불면 거문고 소리처럼 들려 ‘금호(琴湖)’로 불리게 되었다니 아양루 라는 누대 이름은 금호강과 잘 맞는 작명이었다. 또 아양루는 구룡산 높은 절벽 위에 있어 동아시아 전통 지식인의 표상 중 한 명인 소동파의 「적벽부」를 기억하고, 적벽선유(赤壁船遊)를 재현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양루는 아아한 마음, 양양한 마음을 서로 알아듣는 시우(詩友)들의 모임인 ‘아양음사(峨洋吟社)’ 회원들이 십시일반하여 1956년 건립한 것이다. 창립사원 31명 중 운거(雲居) 강봉희, 소석(小石) 김영대, 춘곡(春谷) 이근직, 송하(松下) 서상목, 연봉(煙峯) 함승호, 주호(珠湖) 김용식, 호정(湖亭) 박채식, 나산(羅山) 김정수, 행사(幸士) 석재탁, 송곡(松谷) 신옥, 청한(靑漢) 이세호, 해정(海庭) 이희주, 만하(萬下) 임규석, 석정(石汀) 정무섭, 문파(汶坡) 최준, 남고(南皐) 최항묵, 성암(性巖) 한규용, 일헌(一軒) 허규, 홍산(鴻山) 허흡 등의 시를 비롯한 32개의 시판(詩板)이 아양루에 걸려 있다. 남구락, 도건호, 서기원, 신태문, 윤원직, 박봉희, 이원기, 이종선, 이택진, 이순희, 정뢰호, 변성규 등도 아양음사기적비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창립 멤버이다.

  ‘구름과 함께(雲居)’, ‘작은 돌(小石)’, ‘봄 골짜기(春谷)’, ‘소나무 아래(松下)’, ‘안개 낀 봉우리(煙峯)’ 등등의 호로 서로를 불렀던 이들은 아양루에 모여 시를 짓고 쓰며 시창(詩唱)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음주도 하며 한 세상을 더불어 건너갔던 것이다. 변해옥, 변성옥이라는 이름으로도 낙관을 했던 변성규도 이들 중 하나로 아양루의 강 쪽 편액 ‘아양루’를 썼다. 나무판의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큰 글씨이다.

  등고필부(登高必賦)라는 말이 있다. 옛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그 호연지기를 글로서 풀어내고자 하였다. 아양루에 앉으면 멀리 팔공산 비로봉이 눈앞에 아아하고, 누각 아래로는 금호강이 양양히 흐른다. 변성규의 ‘아양루’ 편액은 팔공산과 금호강의 아아양양한 기상을 필획에 담아낸 굳세고 힘찬 필치이다. 변성규는 73세로 작고할 때 까지 서예 뿐만 아니라 사군자, 화훼, 산수, 인물, 기명절지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생애나 활동, 작품 세계를 재구성할 자료를 찾기는 힘들다. 변성규의 손자 중에 일찍이 유럽에 유학하여 1960년대 초 파리, 런던, 뮌헨 등의 유수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았던 대구 출신 서양화가 석은(石隱) 변종하(1926~2000)가 있다.

  아양음사의 활동은 1980년대에 대구 유림의 모임인 담수회(淡水會)로 흡수되었고, 2005년 재창립 되어 현재 70여 명의 회원이 시회를 열고 있다. 2013년 9월 25일 담수회가 주최한 제11회 전국한시백일장에는 250여 명이 참여하여 170여 명이 시고를 제출했다. 이 때 시제는 ‘축담수회창립50주년’, 압운은 ‘年, 連, 筵, 全, 傳’이었다. 2014년 제12회 대회는 아양루에서 열렸다. 대구에는 한시를 짓는 시사(詩社)가 여럿 있다.

​  2013년 동구문화체육회관이 아양아트센터로 이름을 바꾸었고, 일제시대 지어진 폐철교가 금호강 위를 걷는 산책로 아양기찻길로 재탄생하며 ‘아양’은 동구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그 브랜드 히스토리는 지음(知音)을 꿈꾸며 아아하고 양양한 정서를 공유했던 대구 유지신사(有志紳士)의 근거지 아양루에서 시작되었다. 아양루는 그 로케이션의 지리(地利)를 그에 어울리는 인사(人事)로서 경영하고 향유한 대구인들이 자연 경관과 인문 경관을 결합한 아름다운 장소이다.

 

                                                                                

                                                                           글|이인숙 한국학 박사, 대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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