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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사가 되었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깡그리 비워 버렸다 / 2017-05-09 /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2,226

 

1986년 2월 안마사가 되었다. 자격증을 손에 쥐고 한참을 울었다. 짧았지만 화려했던 지난날의 모든 기억을 깡그리 머리에서 비워 버렸다.

그때 나는 강남구 삼성동에 살고 있었다. 운 좋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안마원에 일자리를 얻었다. 밤 9시에 출근해서 안마 일을 하고 새벽 3시에 호텔 문을 나서는 고된 노동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잘 견디며 열심히 일했다.

서서히 살림에 경제적 안정이 찾아왔다.

안마사 생활을 계속하는 한편 일반 사회에서 습득한 지식을 시각장애인들에게 보급해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86년 5월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한국시각장애인 환경연구소'를 개설했다.

1. 시각장애인의 환경 개선을 위한 시도로 소리로 듣는 신문인 '케인스다이알'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간지 기사를 발췌해서 녹음하고 자동응답기에 담고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전화 수화기를 이용하여 기사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과 문화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2. '약손 안마봉사대'를 발족했다. 안마사들을 중심으로 양로원, 경로당, 노인정 등 소외된 삶을 사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순회 방문하여 안마 무료시술을 실시하였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었던 시각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안마기술을 통하여 사회봉사를 할 수 있다는 긍지와 자존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1989년 3월 '국제라이온스클럽'에 '광명라이온스클럽'이라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들로만 구성된 클럽을 조직했다. 제2대와 5대 회장을 역임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눔과 베풂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계몽에 앞장섰다.

3. '약손 산악회'를 만들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업무의 특성상 밤에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산천을 주유천하하며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고,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나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당시 암흑기와도 같던 시각장애인계에 새롭고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앞을 보지 못하고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많다. 가장 힘든 것이 단독 보행이다. 당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대접이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길을 묻기 위해 인기척을 찾아 다가서면 "엄마야"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달아났다. 버스비 구걸로 오해하고 손바닥에 동전 1개를 던져주는 이도 있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 길 모서리에서 손을 들고 서 있으면 차가 멈추는 듯하다가 이내 사라진다.

재활기관에서 교육받은 보행 훈련을 복습하고 싶었다. 이웃 사람들 눈을 피해 새벽녘 가족들이 다 잠든 틈을 타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 혼자 연습을 했다. 나는 분명 똑바로 간다고 걸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갑자기 엉덩이 주변 옷깃을 스치며 경적 소리가 요란하다. 당황해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방향 감각을 잃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야! 죽고 싶어?" 고함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우악스러운 손이 내 팔을 낚아채고 내던지듯 차도 밖으로 떠밀었다. 인도의 턱에 걸려 길바닥에 쓰러졌다. "아빠 일어나세요." 울먹이는 딸아이의 작은 음성이 들렸다. 몰래 뒤따라 와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집으로 향했다. 땀에 젖은 아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이의 어깨가 들먹이고 있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을까? 혼자서 걷고 뛰고 멀리 갈 수는 없을까?' 안내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안내견을 무료로 분양해 주는 기관이 있지만 당시는 없었다. 안내견을 얻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미국에 가야 했다.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안내견을 구할 방법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수소문 끝에 '리더독스쿨'(안내견학교)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간다? 내가? 앞도 못 보면서? 혼자서? "장님은 주둥이와 작대기만 있으면 지구 끝까지도 간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나의 인생은 용기고 극복이고 도전이다.

1992년 7월 나는 미국행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비행기에 올랐다. 항공회사에서 내어준 '패밀리케어'란 글자가 새겨진 손바닥만 한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았다. 중간 경유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목적지인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다. 여승무원의 팔을 잡고 트랩을 내려왔다. 승무원들이 미리 준비한 휠체어에 들어가 앉았다. 멋진 제복으로 정장한 여승무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호위하며 검열대를 통과했다.

'리더독스쿨'은 미국 디트로이트시 인근 버밍햄이란 곳에 있었다. 이번에 입교한 교육생은 나를 제외한 26명이 모두 미국 내 거주자다.

교육 기간 동안 머물 내 방에 트레이너가 안내견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름은 '마이카', 나이는 16개월, 성별 수놈, 체중 42㎏, 품종 황금색 골든리트리버'라고 트레이너가 소개했다. 나는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녀석의 머리를 찾아 쓰다듬었다. 갑자기 녀석이 훅하고 입김을 뿜으며 두툼한 코로 내 입언저리를 덮쳤다. 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움찔 놀랐으나 싫지는 않았다.

안내견은 생후 2개월이면 어미 품을 떠난다. 일반 가정에 입양하고 약 6개월 동안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과의 정을 듬뿍 체험한다. 다시 돌아와 6개월 동안 안내견 훈련을 받는다. 주인 될 시각장애인 파트너를 만나 한 달 동안 서로 적응하는 교육을 받는다. 파트너와 함께 동거하며 파트너의 눈이 되어 평생 봉사한다.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 버스를 타고 멀리 교외 공원으로 갔다. 마음껏 달려 보라고 트레이너가 선언했다. 내 눈에서 빛을 잃은 지 8년 만이다. 나는 달렸다.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건너듯 휘청거리던 내 다리가 벌떡벌떡 뛰고 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마이카도 헐떡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한참을 뛰었다.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마이카의 목을 끌어안았다. '헉헉' 가쁜 숨 사이로 폭발하듯 웃으며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중략>

'마이카'는 한때 북유럽을 주름잡았던 해적 '바이킹'과 함께 살던 물 사냥개들의 후손이다. 유난히 물을 좋아한다. 어느 겨울 스키를 타러 갔다.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스키를 타느냐고 묻겠지만 그건 편견이다. 앞이 안 보인다고 못 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골프 치고. 수상스키도 즐긴다. 눈이 없으니 안마밖에 못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차별이다. 교사, 교수, 목사는 기본이고 방송 앵커맨, 변호사, 판사, 국회의원도 있고, 외국에는 장관도 있다. 오래 살면 대통령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시각장애인인 강원대 법학과 교수 길인배 박사 집에 취재차 온 기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큰 방 2개에 가득히 점자 법전이 들어차 있었다. 그는 컴퓨터 이전 세대이다. 그들은 그렇게 공부했다.

음성 지원 'PC'가 개발되고, '점자 정보 단말기'가 정부 지원으로 개인에게 보급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의 학구열에 불이 붙었다. 나도 음성 지원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쓴다. 내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문학에 등단할 수 있었던 것도 컴퓨터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눈밭을 걸을 때까지만 해도 마이카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가 리프트에 오른 후 사정이 달라졌다. 줄을 잡고 있던 도우미의 손을 뿌리치고 리프트를 힐끗힐끗 보며 쏜살같이 따라왔다.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는 옆에 바싹 붙어 내달렸다. 조마조마했다. 스키가 멎고 눈 바닥에 앉아서 녀석을 잡으려 하자 잽싸게 피해서 순식간에 눈밭을 뛰기 시작했다. 스키어들이 혼비백산하고 눈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리프트가 멈췄다. 장내 방송이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개 주인을 찾고 있었다. 마이카는 나의 좋은 반려자였고 활동 도우미였고 듬직한 보디가드였다.

어느 날 녀석이 쓰러졌다. 일으켜 세웠으나 또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폐렴이었다. 녀석은 갔다. 내가 '버밍햄 리더독스쿨'에서 녀석과 처음 만난 지 12년이 되던 해였다. 녀석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나에게 바치며 잃어버린 나의 눈이 되어 주었다.

내가 악몽에 시달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나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나를 깨워주는 녀석이 있다. 까슬까슬한 털의 감촉이 낯설지 않다. '마이카'다. 개꿈이다. 그래도 나는 꿈이 좋다. "고맙다! 마이카."

<끝>

※전국 신문사 최초로 매일신문사가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공모 부문은 논픽션, 시, 수필 등 3개 부문입니다. 대상 1명 500만원, 최우수상 3명 각 300만원, 우수상 15명 각 100만원 등 총상금 4천100만원입니다. 주제에는 제한이 없으며, 매년 5월경 공모를 시작합니다

 

조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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