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고려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와 나주 완사천 수양버들
아트코리아 | 조회 692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완사천(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유적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인 903~914년 약 10년 동안 태봉국 궁예의 휘하 장수로 이곳에 와서 견훤과 싸웠다. 완사천의 전설은 이때의 이야기이다. 왕건이 이곳에 와서 목포(지금의 나주역 뒤쪽)에 배를 정박시키고 물가 위쪽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서려 있으므로 현장을 가보니 샘가에 아리따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목이 말라 한 모금의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떠서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까닭을 물으니 급히 마시면 체할까 하여 천천히 마시도록 한 것이었다. 이에 왕건은 처녀의 총명함과 미모에 끌려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훗날 장화왕후이다. 그 후에 일대를 흥룡동이라 하였고 샘 이름을 완사천(浣紗泉)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상이 나주지방에 전해 오는 장화왕후의 전설이다. 그러나 고려사 후비전(后妃傳)은 전설과 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화왕후 오씨는 나주사람이었다. 조부는 오부돈이고, 부친은 다련군이니 대대로 이 주의 목포에서 살았다. 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의 딸 덕교에 장가들어 후(后)를 낳았다. 일찍이 후의 꿈에 포구에서 용이 와 배 안으로 들어가매, 놀라 꿈을 깨고 이 꿈을 부모에게 이야기하니 부모도 기이하게 여겼다. 얼마 후에 태조가 수군 장군으로 나주에 와서 배를 목포에 정박시키고 시냇물 위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떠 있었다. 가서 본즉 후(后)가 빨래를 하고 있으므로 태조가 그를 불러서 이성 관계를 맺었는데 그의 가문이 한미한 탓으로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피임방법을 취하여 정액을 자리에 배설하였다. 왕후는 그것을 즉시 흡수하였으므로 드디어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은 바 그가 혜종(惠宗)이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 자리 무늬가 있다 하여 세상에서는 혜종을 ‘주름살 임금’이라고 불렀다. 항상 잠자리에 물을 부어 두었으며 또 큰 병에 물을 담아두고 팔을 씻으며 놀기를 즐겼다고 하니 참으로 용(龍)의 아들이었다. 나이 일곱 살이 되자 태조는 그가 왕위를 계승할 덕성을 가졌음을 알았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해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까 염려하고 낡은 옷상자에 황포(왕이 입는 옷)를 덮어 후에게 주었다. 왕후는 이것을 대광(大匡) 박술희에게 보였더니 박술희는 태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왕위 계승자로서 정할 것을 청하였다.’  

이 다른 두 가지 이야기 중에서 앞의 이야기가 비록 역사서의 기록은 아니지만 더 정감이 간다.

왜냐하면 버드나무로 인해 한 이름 없는 소녀가 일약 왕후로 신분 상승하는 이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설의 무대인 그 샘터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장화왕후의 또 다른 면도 흥미를 자아낸다. 그녀는 단지 총명하기만 했던 처녀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 적극적인 삶을 산 여인이라는 점이다. 태조가 동침을 하면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아이 배는 것을 거절하기 위해 돗자리에 사정하자 부끄러운 것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그 정액을 흡수하여 고려 제2대 임금 혜종을 잉태하고 그를 왕위에까지 오르게 하는 등 여장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나주의 완사천을 찾았다. 이 유적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이유는 버드나무 때문이다. 버드나무에는 가지가 늘어지는 수양버들이나, 용버들이 있는가 하면 가지가 하늘로 치솟는 왕버들, 키버들 등 수십 종이 있는데 왕후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버드나무는 과연 어느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늦은 점심시간 나주에 닿았다. 친절한 주인이 정성으로 마련한 푸짐한 반찬으로 점심을 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택시를 불러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나 길을 몰라 배회하기를 두 번이나 한 끝에 겨우 완사천을 찾았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나무는 왕버들이었다. ‘어 왕버들인가?’ 했는데 샘 가까이 가보니 수양버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어 예상이 적중했다. 늘어진 가지는 잎을 따기 쉬우니까 수양버들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달랑 한 그루였고 그것도 잎이 누렇게 변해 있어 보기가 안쓰러웠다. 몇 그루 더 보식(補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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