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독립지사 최고 선생과 국우동 도남정사 감나무
아트코리아 | 조회 655

1981년 대구에 편입된 북구 읍내동 일원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름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500여 년 전 별호로 칠곡(漆谷,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1640년(인조 8)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승격하면서 칠곡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여 왔으나 1914년 경상북도 칠곡군이 개청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교, 농협, 초등학교, 나들목 등은 ‘칠곡’을 그대로 쓰고 새로 생긴 경찰서는 ‘강북’으로, 지역 축제는 ‘옻골’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어 혼란스럽다.

특히 대구 편입 이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목가적인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졌다.

비유가 좀 비약되었지만 독립지사이자 소설가인 최고(崔杲) 선생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하겠다. 25년을 국우동에서 살았고 살던 집이 아직까지 남아있음에도 지역에서는 잊힌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본관이 전주로 1924년 최해윤의 4남 중 둘째로 서구 원대동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형은 최계였다. 아호는 추운(追雲)으로 왜관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의 명문 경복중학교를 다니던 중 반일 지하단체 흑백당(黑白黨)에 가입했다.

친일파와 일본 고관을 처단하기 위해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대전형무소 수감 생활 중 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그 뒤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영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1955년 ‘예술집단’에 ‘ㅅ 부인의 엉덩이’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화가인 주인공이 모리배 ‘ㅅ’씨의 애처(愛妻) ‘ㅅ’ 부인의 전신을 그려야 되는데 엉덩이만 그려 준 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작품이다. (대구문단 이야기, 이수남)

1964년 대구로 내려와 대구중, 대구상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상당한 재력을 가진 누이가 시내에 살고 있었으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최광렬과 친하게 지내며 때로는 그 집 단칸방에서 묵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선생이 국우동 끝자락 외딴집에 살고 있을 때 칠곡중학교에는 시인 전상렬 선생이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관사가 허름해 교장이 살지 않자 가족을 불러 관사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당시 칠곡중학교 2학년이었던 한영기 님에 의하면 주말이면 팔거천에서 천렵을 즐겼다고 한다. 청마 유치환, 목인 전상렬, 추운 최고 셋이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안주로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후에 도광의 시인과 자주 어울려 퇴근 무렵 대건고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내다’ 하면 ‘옥이 집에 있으소’ 했다고 한다.

선생은 독신으로 쌀 한 가마 집에 들일 줄 모를 만큼 가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977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고, 1984년 대구시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했으며 1988년 올림픽으로 전 국토가 흥분했던 그해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하고 신암선열공원에 안장되었다.

대표작으로 ‘두 친구’ ‘유치장’ ‘산다는 것’ ‘부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새야새야 파랑새야’ 등이 있다.

오늘의 칠곡은 덩치만 커졌지 문화적인 토양은 척박하다. 이런 면에서 최고 선생의 애국정신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지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1899년(고종 39)선생의 증조부가 지어 서당으로 사용했던 도남정사(道南精舍)는 독립지사이자 소설가가 살던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퇴락했다.

선생과 함께 술과 문학, 인생을 논했던 도광의 시인은 ‘--한로에 내린 아침 이슬/상강의 저녁 풀에 떨어지는/ 혼자 사는 적막한 마을/ 마른 가지 울리며 지나가는/ 짧은 하루가 지나가는 /개 짖는 소리/ 간간이 들릴 뿐/ 사람의 발길 뜸해진다.---’ 고 당시 ‘국우동’을 노래했다.

선생을 새롭게 현창할 필요가 있다.

이어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도(都) 시인의 시비도 국우동 어디쯤 하나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만년을 지켜보았을 옛 집의 감나무 한 그루 홀로 서서 올해도 어김없이 열매를 달고 있으니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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