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임재 서찬규 선생과 낙동정사 회화나무
아트코리아 | 조회 743


하류에 보(洑)가 설치되면서 ‘달성습지’가 망가졌다는 소문과 ‘상화대십경’(賞花臺十景)이라는 새로 세운 비를 확인하기 위해 화원동산에 갔다. 특히 상화대십경비는 본래 상화대로 불렸던 화원동산이 언제부턴가 배성(盃城)으로 잘못 불리는 것이 안타까워 ‘달구벌얼찾는모임’이 문제를 제기해 대구시시설관리공단(당시 이현희 이사장)이 건립한 것으로 화원동산의 유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조금은 엉뚱한 배성으로 부르게 된 까닭을 살펴보았더니, ‘성(城)이 있는 산’, 즉 성산(城山)을 이르는 우리말 ‘잣뫼’를 술잔을 일컫는 ‘잔뫼’로 해석하여 ‘잔’(盃)과 같이 생긴 ‘뫼’(山) 로 오해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동서남북 어디에서 성산을 보아도 술잔같이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을 뿐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잣뫼’라고 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잣’은 곧 성(城)을 말한다.

땅 이름은 그 지역의 지형, 역사, 문화 등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본래 이름을 되찾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정상에 오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강이 바다같이 넓어졌고, 맑은 낙동강과 탁한 금호강이 확연히 구분되던 것이 지금은 차이가 없어졌다. 달성습지도 지형만 다소 달라졌을 뿐 그대로였다.

내려오다가 문화관광해설사 강영옥 님을 만났다.

조선 후기 대구의 거유로 이곳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만년을 보내며 시 ‘주유낙강상화대’(舟遊洛江賞花臺)를 지은 임재 서찬규 선생의 유적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임재가 상화대를 노래한 시문은 다음과 같다.

同舟泛夜月烟水浩湯湯(같은 배로 달밤에 뜨고 보니 안개 피는 강물은 넘실넘실 넓구나)/ 逝者夫如斯萬折必東洋(흘러가는 것들은 무릇 이와 같아서 만 굽이 꺾인대도 동쪽 바다에 이르는 법)/ 湖山猶古今風物孰主張(호수와 산은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 이 경관 누가 주재했으랴)/ 伊洛接泗洙寤寐寓羹墻(이락과 사수 인접해 있어 자나깨나 잊을 수 없다네)/ 前修遊賞地千載姓名香(선현께서 놀이하고 감상하던 곳 천년토록 그 이름 향기롭구나)/我無勤力心田日就荒(부끄럽도다! 나에겐 부지런함이 없어, 마음 밭은 날마다 거칠어 가네)/ 賴有良朋在皓首共相將(다행히 좋은 벗이 있어, 흰머리 되도록 함께 도왔네)/ 芷蘭暎芳洲採採不盈筐(지란이 향기로운 섬에서 반짝이기에 캐고 캐지만 광주리에 차지는 않네)/ 望何所思美人天一方(쓸쓸히 바라보며 무슨 생각하는가, 미인께서는 하늘 저 쪽에 계시는 것을)/ 楚辭歌數悽悽空斷腸(초사를 몇 곡절 마침에 슬프디 슬퍼서 애간장만 저미네)/ 江村鷄欲唱回棹復引觴(강마을 닭이 울려 하기에 노를 돌리며 다시 술잔을 잡는다)

공은 본관이 달성으로 아호는 임재(臨齋). 아버지 홍렬(洪烈)과 어머니 흥해 배씨 사이에서 1825년에 태어나 홍직필(洪直弼)에게 글을 배웠다.

1846년(헌종 12) 생원시에 합격, 다섯 번이나 천거되고 암행어사의 추천도 여러 번 받았으며, 1883년(고종 20)에는 의금부 도사에도 천거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고 수동재를 지어 후진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익현 등과 경전에 대한 질의와 한말의 사회`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기도 했다.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경상도 일원에 성을 수축할 것을 제의하였으며, 이기설에 있어서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지지하였다. 1905년 나라가 어수선한 해 돌아가셨다. 저서로는 ‘임재집’이 있다.

화원동산 입구 다소 퇴락한 기와집이 있어 강 선생과 함께 들렀더니 임재가 제자를 가르치던 낙동정사(洛東精舍)였다.

유학자의 강학 공간답게 기둥에는 유려한 필체의 주련이 걸려 있고, 뒤꼍에는 선생이 심고 가꾸었을 학자를 상징하는 큰 회화나무가 있었다.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더니 7, 8년 전까지만 해도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경판이 있었는데 언젠가 타처로 이송되었다고도 했다. 선생은 남인의 고장에 살면서도 학문적으로는 기호학파의 입장을 지지했다. 더 이상 본디 이름 상화대가 배성으로 불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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