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나무를 닮고자 한 선비 괴헌 곽재겸과 도동 회화나무
아트코리아 | 조회 1,914

대구 동구 도동은 자랑거리가 많은 동네다. 임진왜란의병장 한천(寒川) 최인(崔認),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 1578~1665),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 1547~1615) 등 조선 중기에 활동했던 세 사람이 이곳에 살았던 것도 그렇지만 재일교포로 일본 최고의 부자 손정의 씨의 윗대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문화유산도 많다. 측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호)을 비롯해 용암산성(대구시 기념물 제5호), 최치원 선생의 영정(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5호)과 영정을 보관하는 영당(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0호) 등 지정된 문화재 이외 향산구로회라 하여 아홉 분의 선비가 시회를 조직하여 자기수양과 문학의 열정을 꽃피우던 구로정과 고찰 관음사도 있다.

원래 이름은 도리동(道理洞)이었다. 괴헌의 손자 곽후창이 1696년(숙종 22)에 쓴 전귀당의 행장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도리(道理)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말하는 것이니 세 사람 모두 충`효를 실천하며 살아온 유학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마을 이름이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한복판 측백나무가 무성한 산이 향산(香山)이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향나무가 산을 뒤덮고 있을 것 같지만 측백나무가 많다. 향산으로 불린 것은 옛 사람들이 측백(側柏)이나 향나무를 같은 나무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구읍지 산천 조에는 나가산(羅伽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낙가산(洛迦山)의 오기이다.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발현(發現)하는 중국 4대 불교 성지의 한 곳인데 그런 의미를 빌려 쓴 것이다. 다행히 관음사에서는 낙가산으로 표기해 놓았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창의한 곽재겸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현풍으로 아호는 괴헌(槐軒)이다. 아버지 선무랑 초(超)와 어머니 임영대군(세종의 4자)의 아들 완(玩)의 따님 이 씨 사이에 1547년(명종 2) 솔례(달성군 현풍)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대암 박성과 재종숙 존재 곽준과 함께 낙천 배신(裵紳)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20세에 옥산인 계동 전경창 선생에게 나아가 배움을 청했는데 계동이 근사록(近思錄)을 주면서 ‘이 책은 진실로 그대가 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30세에 성주의 회연서원을 찾아가 한강을 뵈옵고 ‘중용’ ‘대학’을 강의하자 한강이 ‘나의 의로운 벗이다’라고 하였으나 공은 제자의 예를 다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수시로 한강을 찾아가 모시기를 법도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으며 공이 병약하여 힘들어 할 때 ‘우리 도(道)가 외롭다’ 하였다고 한다.

여헌 장현광`낙재 서사원 등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1573년(선조 6) 동강 김우옹의 추천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 김성일을 도와 병사를 모으는 일과 군인들이 먹을 군량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서사원과 협력하여 의병활동을 펼쳤다.

정유재란 때에는 사촌 동생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이끌고 창녕의 화왕산성 전투에 참전하여 그 공으로 부호군에 올랐다.

난이 끝난 뒤 향리에서 인재교육에 진력하다가 1615년(광해군 7) 돌아가시니 향년 69세였다. 1784년(정조 8) 대구의 유호서원(柳湖書院, 지금은 없어짐)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괴헌집’을 남겼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해안의 유계(柳溪, 불로천?) 위에 서사(書社)를 짓고 오로지 경전만 읽으며 후학들을 가르쳤다. 제자로 사월당 류시번과 동고 서사선이 있다.

아호 괴헌은 회화나무나 느티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진양인 정종로가 쓴 행장에 의하면 집 뒤에 괴목(槐木)이 있어 호로 삼았다고 한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천이 살던 곳은 유허비를, 전귀당은 백원서원이 세워져 그들을 기리고 있으나 괴헌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향산 서편 측백나무 숲 관람을 위해 새로 마련한 주차장 남쪽에 본래부터 자라던 수백 년 묵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공생하고 있다. 혹 이 나무가 공의 아호를 있게 한 그 나무가 아닐까 비정(比定)해 보았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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