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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    업데이트: 22-11-23 09:04

언론 평론

천자문(千字文)다시 읽다 _ 심 향
아트코리아 | 조회 449
천자문(千字文)다시 읽다
심 향

근대 교육이 들어오기 전 <천자문>은 우리 선조들이 어려서 맨 처음 접하는 학문의 첫걸음이었다.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고 그 곳에서 텍스트로 사용한 교재는 <천자문>이었다. 아무리 구차하거나 한미한 집안이라도 낡은 <천자문> 한 권 정도는 중하게 보관 하였고 옛 어른들은 무식한 사람을 말할 때 ‘하늘 천(天) 따지(地)도 모르는 태무식쟁이라고 일컬어왔다.
 
그런 논리로 따지면 <천자문>을 모르고 사는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태무식쟁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대 젊은이들은 천자문을 모른다고 해서 자신을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천자문>이라는 화두 자체가 지금 시대의 사상과는 상관없는 옛날의 낡은 관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나는 요즘 어떤 계기로 안진경(顔眞卿)의 천자문 해서(楷書)를 연습하며 천자문의 깊은 뜻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옛날에 철 모르고 읽었던 내용을 다시 읽으며 <천자문>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정말 무식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자문은 단순히 천 글자를 모아놓은 습자용 한문책이 아니다. 중국 고전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재로 꼽혔던 이 책은 중국 고전의 요점과 핵심사상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주와 자연현상. 인륜과 인성고양을 위한 사람의 도리, 옛날 중국의 문물제도, 학문, 예악에 이르기까지 깊고 폭 넓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일종의 서사시이다.
따라서 이 책 한 권을 읽는다면 주옥같은 중국 고전의 지혜를 섭렵하는 셈이 된다. 사언고시(四言古詩)로 된 이백오십구(250)의 시어는 뜻이 무궁하며 문장이 아름답고 운율이 조화되어 학동들이 짧은 기간 내에 쉽게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교과서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와서는 위로 왕실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쓰인 중요한 책으로 사회적 교양이 되어 서적이나 문서의 편집에서 순서를 매길 때, 심지어는 상인들의 장부정리에 이르기까지 “天, 地, 玄, 黃........을”서수로 삼았다.
 
하늘 천(天), 땅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으로 시작되는 첫 구절은 <주역(周易)> 곤괘의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玄而地黃)”를 다시 쓴 것으로 천지만물의 시원이 무에서 파생되었음을 시사하는 주역의 도(道)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해서 이어지는 다음 구절은 자연의 순환과 이치를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日月盈昃)
별과 별자리는 고르게 펼쳐져 있다. (辰宿列張)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가니 (寒來暑往)
가을에는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갈무리 하여 둔다. (秋收冬臧)
윤달을 두어 세월을 조절하고 (閏餘成歲)
사시에는 계절에 상응하는 곡조로 음양이기를 조절한다.(律呂調陽)
 
물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어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雲騰致雨)
이슬이 엉키어 서리가 된다. (露結爲霜)
 
자연과학을 공부한 요즘 아이들이 읽으면 이런 뻔 한 얘기 누가 모르냐고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 아이들의 첫 학습을 우주와 만물의 이치와 존재의 근원부터 깨우쳐 가르쳤다는 세계관을 심어 주는 인식의 중요한 출발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세상에 눈 뜨면서 사람의 도리와 바른 윤리관을 익혀 간다.
 
 
처음을 도타이하면 진실로 아름답고 (篤初誠美)
마침에도 마땅히 삼가고 시종 훌륭해야한다.(愼終宜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罔談彼短)
자기의 장점을 믿지 말라. (靡恃己長)
 
덕이 서면 이름도 서고 (德建名立)
태도가 바르면 모습도 바르다. (形端表正)
 
재앙은 악이 쌓이는데서 비롯되고 (禍因惡積)
복은 선한 덕에서 말미암는다. (福緣善慶)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시대가 변한 오늘날에도 인성도야를 위해 누구나 명심하고 새겨 봐야 할 빛나는 명구라 아니할 수 없다.
 
<천자문>을 쓴 주흥사(周興嗣)는 남북조시대 양나라 무제 때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어쩌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죽을 입장이 되었는데 이에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신하들의 간곡한 청원으로 일단 사형은 보류하게 되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천개의 글자로 시를 지어낸다면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흥사는 천자문을 완성했다. 밤새 어찌나 고심을 했는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왕도 못 알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천자문의 내용은 웅혼하고 기백이 넘치는 서사적이지만 감성이 풍부한 시인의 글이라 곳곳에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도랑의 연꽃은 밝고 환하고 (渠荷的歷)
동산의무는 늦게까지 푸르고 (枇杷晩翠)
오동나무는 일찍 시든다. (梧桐早凋)
묵은 뿌리는 시들어 말라 죽고 (陳根委蘙)
떨어진 나무 잎은 바람에 나부낀다. (落葉飄謠)
풀은 가지를 벋는다. (園莽抽條)
 
이 구절은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은자의 맑고 심오한 정신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천,지,인의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출발하여 허사(虛辭)인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천자문의 마지막 부분은 순환의 상징인 허(虛)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처음의 혼돈으로 회귀하는 깊은 도(道)의 철학을 의미 한다.
 
천자문은 문헌 속의 고문(古文)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현대의 문명 속에 살고 있다 해도 우리는 동양적인 문화와 윤리규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천자문>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식 속에 숨쉬고 있는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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