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2-12-20 12:49

금문석 휘호

퇴석김인겸가비(退石金仁謙歌碑)
관리자 | 조회 133

“선생의 휘는 인겸이며 자는 사안(士安) 호는 퇴석이다. 안동 김씨 15세로 청음(淸陰) 상헌님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창복 어머니는 장씨시다. 단기 4040년(1707)에 나서 4105년(1772) 6월 16일에 졸했다. 47세에 진사, 57세에 계미통신사의 삼방서기로 일본을 다녀왔다. 뒤에 지평 현감을 지냈다. 저술로는 한문 동사록(東槎錄), 동사수창록(東槎酬唱錄), 가사 일동장유가가 있다. 성품이 곧고 깨끗했으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멋과 익살을 알며 의협심이 강하고 풍류를 즐긴 분이셨다. 한 하늘 아래서 같이 살 수 없는 일본인들에게 명문장으로 국위를 떨치고 국문학사상 불후의 명작 일동장유가를 지으신 지 225년이 되는 오늘, 선생의 인품과 유문(遺文)을 사모하는 후진들이 각자의 정성을 모아 생시에 선생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건너다니시던 이 오얏나루 언덕에 조그만 돌덩이를 세워 선생의 자취를 다음과 같이 명을 지어 기록한다.

 비단 가람 유유한데 물은 돌에 빛이 맑다. / 굳은 성품 밝은 행실 불의부정 못 보았네.
 아름다운 글재주는 동해 건너 드날리어  / 임진왜란 그 큰 죄를 한 붓으로 다스렸네.
 이국에서 만난 표민(漂民) 지친처럼 보살피고 / 문필보국 마친 뒤엔 원님 되어 제민했네.
 가는 세월 멀어지니 퇴석리가 무릉동(武陵洞)돼/ 아는 사람 없건마는 끼친 향낸 피고 피네
                  
  4322년(1989) 7월, 후학 희당 최강현이 가사체로 짓고 모산 심재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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