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    업데이트: 22-12-21 14:31

서예평론

불교방송 예술산책: 미술사학자 이인숙 박사 방송원고
관리자 | 조회 205
불교방송 예술산책: 미술사학자 이인숙 박사 방송원고

한학자 서예가 퇴산 심장환(1887-1940)과 모산학술재단을 설립한 국문학자이자 서예가 모산 심재완(1918-2011) 교수

 

심재완 선생은 우리나라의 고시조 3천 3백여 수를 집대성하여 1972년 『교본 역대 시조 전서』를 간행한 시조 연구의 대가인 국문학자입니다. 이 업적으로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1984년 『정본 시조 대전』으로 보완하였고, 타계하신 이듬해인 2012년 후학들에 의해 『고시조대전』으로 선생의 업적이 다시 확충되었습니다. 심재완 선생은 일찍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예술의 소중함을 자각해 방언, 가사, 시조 등 국학연구로 실천하였습니다.

연구는 많이 하셨지만 시조를 직접 짓지는 않았습니다. 심재완 선생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은 서예에서 발휘되었습니다. 선생의 서예가로서의 바탕은 글씨를 잘 쓴 한학자인 부친 심장환에게 어려서부터 서예를 배운데서 시작합니다. 부친 심장환은 1935년 건립한 <파계사사적비>의 비문 글씨를 쓸 정도로 당시 서예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부친의 서예 교육으로 심재완은 1930년대에 벌써 안진경, 하소기 등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서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글씨를 교양이나 수양이 아니라 서예가의 작품으로 일찍이 인식하며 예술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부친의 영향과 아울러 선생의 예술적 소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경성사범학교에 다니며 서예 법첩을 수집하던 19세 때인 1936년 당시 대가인 성재 김태석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심재완 선생은 서예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1980년 ‘광개토왕비 서체고’를 발표했고, 1989년 포항의 냉수리비를 발견하게 되면서 ‘냉수리 신라비의 발견경위와 서법고’라는 논문도 발표했습니다. 서예에 대한 관심이 연구 논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글씨공부를 하며 서예 법첩을 수집하고, 서예 전시를 즐겨 보러 다니며 많은 서예인들과 교유했습니다. 선생은 전람회나 도록의 서문을 쓰며 서예평론가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서예 공모전의 심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만년에 계명대학교에 서예과가 생기자 출강하며 서예이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선생이 평생 동안 관심을 가진 분야가 바로 서예입니다.

서예가로서 자신의 고유한 서풍을 이룬 심재완 선생은 “글씨는 기법과 학문과 정신이 융합되어 이루어지는 심오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학자 서예가로서 심재완 선생의 서예 중에서 특징적인 부분 중 하나가 책 제목 글씨인 제자(題字)입니다. 지금은 캘리 라고 하는 손 글씨로 책제목을 많이 쓰지만 당시에는 서예가에게 책의 제목 글씨를 부탁했습니다. 심재완 선생은 날아갈 듯 붓끝이 살아있는 운치 있는 필치로 책 제목을 많이 썼습니다. 이 밖에도 서예를 통해 지역사회 문화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1988년 선생의 가족, 지인, 제자들이 힘을 합해 사단법인 모산학술재단을 설립했고 이듬해 수성구 두산동에 모산학술회관을 건립했습니다. 2001년에는 재단 산하에 동아인문학회가 결성되어 국제학술대회와 학술지 발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심재완 선생의 막내 아들 심문필은 선생이 재직하던 영남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화가로 현재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3대로 이어진 예술가 집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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