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노순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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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    업데이트: 14-09-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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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로 드러낸 그리움의 미학 - 정태수
노순늠 | 조회 1,067

서화로 드러낸 그리움의 미학

-우정 노순늠 작가의 작품에 대한 단상-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1. 우정의 예술의 뜰[藝庭]에 들어가기

우정 노순늠 작가가 30년 동안 먹향과 더불어 온 길을 되새겨보는 첫 개인전을 펼친다. 1985년 봄날, 붓을 잡기 시작한 이래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지났다. 한문서예를 처음 접하면서 흰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는 것이 좋아 문인화를 공부했고, 뒤이어 우리의 정서를 쉽게 전하고자 한글서예를 연마했다. 그러던 중 더 높은 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바탕을 튼튼히 쌓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예술대 서예과에 입학하여 2001년 졸업했다. 작가는 늘 붓을 놓지 않고 자신의 감성을 담아내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기에 서단에서 중견작가로 이름을 높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까지 익힘으로써 예술의 뜰을 풍요롭게 가꿔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동안 사유해 온 자신의 조형세계를 문인화와 한글서예를 빌어서 내비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작가의 조형미감은 옛것에 대한 향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그리움, 고전과 현대시에서 음미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 옛것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과거에 대한 회한과 덧없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순(耳順)이 가까워지면 더욱 그러하다. 이미 떠나왔거나 보내버렸거나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부재만 남을 때 회한은 더욱 깊다. 때론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나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우리는 뭉뚱그려서 ‘그리움’이란 이름표를 붙인다. 그것은 덜어내려고 해도 가슴 속에 더 큰 응어리로 남고,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으며, 어떤 자로도 길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노순늠 작가의 경우, 그의 작품은 삶의 경험과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난 다양한 이야기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꿈을 지향한다. 그래서 작가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움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사물이 감각을 통해 우리의 느낌에 비쳤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그림자가 이미지다. 그 심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때 작품에서는 상상의 이미지로 바뀐다.

작가의 작품 <장독대>를 보면 눈이 내린 날의 설경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오른쪽에는 청매 몇 가지가 드리워져 운치를 더한다. 이른 봄날 한기가 남아있는 즈음에 매화가 피어날 때 시샘이라도 하듯이 눈 속의 설매(雪梅)를 통해 잊혀진 추억들이 스물스물 살아난다.

또한 작품 <운주사의 가을햇살>을 보자. 고즈넉한 기왓집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소리를 내며 적막을 깬다. 화제를 보면, 해가 저물어 찾아간 친구집에 친구는 없고 어머니가 말없이 이화주만 내어놓는다고 씌어있다. 작품의 중심부에는 해넘이를 상징하듯 넓은 여백에 황토색을 입혔고, 가장자리에는 몽당연필로 쓰듯이 붓가는대로 휘호한 화제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감상자에게도 여운을 던진다. 마치 동진시대 왕희지의 다섯 번째 아들 왕휘지가 눈이 내린 날 문인화가인 친구 대규가 보고 싶어 밤새 배를 저어 나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집 앞에 이르자 운이 다해 그냥 돌아왔다는 그 느낌과 같아 보인다. 보이는 것을 모두 그리지 않고도 충분히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우포늪>에서 보여지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사진(寫眞)과 사의(寫意)를 섞어서 수백 년을 쉼없이 흐르는 생명의 영속성을 표현하고 있고, <연꽃 한 송이>에서는 연꽃의 짧은 개화기가 지나고 이내 시들어 버리는 것이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넓은 연잎이 청년을 상징한다면 화려한 꽃잎이 떨어지고 남은 연밥은 노경의 삶이 아니겠는가. 시든 모습 또한 아름답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한 그림에서 눈을 떼어놓을 수 없다.

이렇듯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옛것과 주변의 물상을 통해 삶에 대해 통찰하고, 그러한 내면정서를 문인화와 서예작품으로 환치시킨 것으로 읽혀진다.

 

3.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

로마시대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가 조각할 대리석을 찾아 어느 석재상에 들렀는데 뒷마당에 쓸모없는 돌덩이가 방치되어 있었다. 석재상 주인은 조각용으로 쓸모없는 돌이라며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 돌로 만든 것이 유명한 <아기 안은 마리아 상>이란 작품이다. 훗날 석재상이 그 쓸모없는 돌로 어떻게 위대한 조각품을 만들었냐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의 천사가 나를 불러서 조각에 임했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예술가의 능력이고 시각이다. 남이 볼 때 별 것 아닌 하찮은 사물도 작가의 날카로운 감성으로 연역하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서예가의 경우엔 문장을 직접 짓든 다른 사람이 짓든 그 내용을 다양한 글씨체로 서자(書者)의 조형미감을 전달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작품 <구상시인의 ‘꽃자리’>를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자, 흘림, 반흘림, 진흘림, 여사서체 등 다양한 서체로 한글서예를 오랫동안 익힌 공력과 연륜이 묻어난다. 원래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말은 공초 오상순 시인이 지인들을 만나면 늘 하던 인사말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불우한 삶을 살았던 구상 시인이 시로 꾸민 것이다.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는 말은 삶의 긍정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기쁨이 듬뿍 배어있는 말이다. 살다보면 곳곳에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런 고비를 각각의 다른 서체로 휘호하여 현실은 어렵더라도 견뎌내면 바로 지금 처한 자리가 꽃자리라고 대변하는듯하다. 마지막에는 굳건한 여사서체로 마무리를 하면서 용기를 부여하는 듯이 보인다.

다른 작품을 보자. <조지훈시인의 ‘낙화’>에서는 전통궁체에서 일탈된 새로운 맛을 보여주고 있다. ‘촛불을 꺼야하리/꽃이 지는데’라는 구절을 중앙에 큰 글씨로 강조하고 좌우에 석줄씩 한문필의의 서간체로 배치함으로써 현대적 구성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운데 강조한 글자들은 옅은 황토색을 칠한 위에 도드라지게 휘호하여 장법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사실 자연의 꽃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서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준다. 꽃이 갖는 절대성은 한 번 피면 머지않아 진다는 데 있다. 이 시를 지은 조지훈도 꽃이 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대자연의 섭리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낙화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삶의 무상감과 비애감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런 무상함과 비애감이 작가의 거침없는 필의를 통해 서사된 것으로 대소, 강약, 윤갈의 묘미가 엿보인다.

또한, <마음다스리는 글> 6폭, <도산십이곡> 열두폭 병풍에서는 작가의 궁체필사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와 같이 작가는 표현하려는 문장이나 서체에 조형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어서 감상자의 가슴에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살펴진다.

 

4. 우정의 藝庭에서 나오기

30년 예도를 걸어온 우정 노순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 동안의 작업과정을 되돌아보면서 한 매듭을 묶으려고 한다. 그는 삶에 대한 그리움을 화두로 한 조형사유를 펼쳐보였다. 발표작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그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면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조형사유를 엿보게 했다.

처음 한문서예로 시작하여 한글서예와 문인화를 거쳐 최근에 사진까지 섭렵함으로써 작가의 예술의 뜰에는 다양한 꽃이 피어나려고 한다. 그는 “안되면 되게한다”는 굳센의지를 갖고 있는 작가로서 서예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사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길 바라며 예도에 행운이 있길 기원한다.

 

갑오년 여름날 도봉산이 보이는 관산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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