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 비행/문수영 지음/가히/114쪽
문수영 시인의 다섯 번째 시조집 그림자 비행이 출간됐다. 김천 출생인 문 시인은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로 등단했으며, 200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왔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햇살 아래 윤슬이 반짝인다. 물 위에 얹힌 세상, 귀도 눈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풍경, 얼룩진 시간의 천 위에 수를 놓는다. 하늘, 바람, 새, 꽃……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와 시조의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시조집은 '터널 끝.숲속의 숲.그림자 비행' '그믐달' '공의 길' 등 다섯 부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71편의 시조를 수록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마주한 시대의 풍경,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 스포츠를 통해 성찰한 삶의 자세, 병마와 마주한 시간, 그리고 자연을 노래한 작품들이 고루 담겨 있다.
그림자 비행은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 앞에서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의문으로 시를 마무리하지만, 그 끝에는 관계의 회복과 '아름다운 사람들'을 향한 희망이 배어 있다.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 존재하듯, 그는 빛 속에서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림자 속에서 다시 빛을 찾는 순례자의 시선으로 삶과 사물을 응시한다. 그 따뜻한 성찰은 평범한 일상을 깊이 있는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문수영의 시(조)들은 일상과 나란히 간다. 짝을 이룬 신발처럼 일상이 한 발짝 가면 그의 시도 한 걸음 따라간다. 문수영에게 시는 곧 생활이고 생활은 곧 시이다. 그의 시는 생의 지도이며, 그의 일상은 다시 쓰이기를 기다리는 텍스트"라고 평했다.

[웃음이 파먹은 밥] 웃음이 파먹은 밥
◆웃음이 파먹은 밥/박숙이 지음/문학세계사/136쪽
대구에서 활동하는 박숙이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웃음이 파먹은 밥'(문학세계사)을 펴냈다. '세발낙지' '장물 종재기 같이' '겉절이 여자' 등 모두 67편을 수록한 이번 시집은 삶의 희로애락을 특유의 해학과 입담으로 길어 올리며,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서정을 선보인다.
표제작 '웃음이 파먹은 밥'은 봄나물과 따뜻한 밥상, 그리고 연인의 웃음이 어우러진 풍경을 통해 행복이 거창한 데 있지 않고 함께 밥을 먹으며 웃을 수 있는 일상의 순간에 있음을 보여준다. '밥 한 그릇을 웃음이 다 파먹도록'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소박한 일상을 삶의 축제로 바꾸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박숙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경상도 사투리와 구어체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언어 감각이다. '장물 종재기 같이'와 '그녀' 등에 등장하는 '찌짐' '택도 없는 소리제' '구시하다 카이' '불러쌌지럴' 등과 같은 토속어는 단순한 향토성을 넘어 인물의 정감과 삶의 결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그의 시는 유머에 머물지 않는다. 해학 속에는 고단한 삶을 견디는 생활인의 지혜가 스며 있고, 가족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연민이 잔잔한 울림을 만든다. 때로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더해 읽는 재미를 높이면서도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시인 이태수는 해설에서 "박숙이 시의 분방한 해학과 희화적 비유, 넘쳐나는 입담의 저류에는 삶의 파토스와 이를 뛰어넘는 지혜,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려는 질박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다"고 평했다.
경북 의성 출신인 박숙이 시인은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1999년 계간 '시안'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래도 다시 한 걸음
◆그래도 다시 한 걸음/김종성 지음/소소담담/424쪽
이 책은 대학 시절부터 이어온 일기를 바탕으로, 지나온 삶의 굴곡과 내면의 변화를 차분히 되짚어본 기록이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 행위가 아니라 마음속에 쌓인 감정과 고통을 흘려보내는 통로였다. 말로 다 풀어낼 수 없었던 불안과 좌절, 기대와 다짐은 일기장 위에서 문장이 되었고, 그 문장들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다.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생애의 중요한 장면들을 차례로 펼쳐 보인다. 그 중심에는 '기록을 통한 자기 이해'가 자리한다. 유년의 상처는 선택과 진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꿈을 접은 채 현실과 타협해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겪은 망설임과 좌절은 글쓰기를 통해 삶의 줄기로 이어지고, 오늘의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은 성공담이나 자기 과시의 글이 아니다. 오히려 흔들리며 살아온 시간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온 마음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문장들은 조용하지만 진실하다. 한 사람의 삶은 완전해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걸어온 시간이 있기에 기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걷는 만큼 존재한다고 한다. 삶을 돌아보고 싶은 독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 지나온 상처와 불안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따뜻한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지나온 삶을 향한 조용한 인사이자,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모든 시간에 바치는 진심 어린 화답이다.
경북 예천 출생인 저자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건축구조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2020년 2월 정년퇴임했다.
[주문] 주문

◆주문/오영희 지음/북랜드/167쪽
시인 오영희의 두 번째 시집 '주문'이 새 결을 지닌 언어로 독자를 찾았다. 이번 시집은 우리가 매일 무심히 건네는 '말'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되돌릴 수 없는 말, 시인은 그 말이 삶과 운명을 향해 던지는 조용한 주술이자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믿는다.
표제작 '주문'에서 시인은 '그 말이 보이지 않는 문 하나를 연다'고 적는다. 무형의 언어가 현실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지닌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새벽마다 몸을 일으켜 희망이라는 말을 되뇌는 일처럼, 작은 다짐과 끈질긴 소망이 삶을 조금씩 움직여 간다.
'용서는 물의 결로, 용기는 불씨의 숨으로, 사랑은 달빛을 오래 끓인 온기로 조용히 떠오른다'는 구절에는 시인의 깊은 내면 서원이 담겨 있다. 주문은 자기 마음을 다잡는 명상이자, 말로 세상을 다시 짓는 창조의 행위이며, 용서와 용기, 사랑으로 삶을 천천히 돌려 세우는 실천이다. 시인은 말이 세상을 바꾸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통로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김동원 시인·평론가는 "시의 행간이 서정의 무늬로 가득 채색되어 있다"며 "오영희 시인의 서정은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목소리이자 우주를 향해 나를 찾아가는 빛의 여정"이라고 평했다.
오영희 시인은 시 창작과 함께 인문학 강연과 낭독문화 운동에도 꾸준히 힘써왔다. 시집은 '던진 빛은 돌아오는 법을 잊지 않고 / 언젠가 내 삶의 문 앞에 다시 선다'는 마지막 연으로 처음의 질문에 응답하며 끝맺는다. 책장을 덮는 순간 시인은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오늘 어떤 주문을 하셨나요."
정리=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